쌀을 빻아 떡을 만드려는 아낙네들이 방앗간에 즐비하니 서서 떠들썩하던 그 시절. 설탕과 밀가루 한 포대면 지금의 갈비세트나 양주, 와인이 부럽지 않았다.

“엄마, 몇 밤만 자면 추석이야?”. 푸짐한 차례상에 손꼽아 명절을 기다리는 천진난만 아이들의 모습에 잠을 설쳐가며 새벽 시장에서 흥정하던 어머니에게서 넉넉함마저 느껴졌었다.

흩어져 있던 가족, 친지와 오랜 만에 마주하며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추석은 가슴을 설레이게까지 했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은 가족끼리 모여 한해동안 농사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정성들여 차례를 지내고 조상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가족의 개념이 약화되고 시대가 변하면서 명절의 의미도 퇴색됐다. 고향을 향하던 명절 귀향길은 지친 현대 생활에서 벗어난 휴가길로 바뀌고, 마음을 담은 추석 선물도 그 의미를 살리기 보다는 가식으로 변질돼 푸진 인심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예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 음식과 마음이 풍성한 추석을 비유한 말이다. 오랜만에 햅쌀로 지은 쌀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어 마냥 좋았던 추석, 그야말로 가난하던 시절에는 축복 받은 날로 여길 만 했다.

마음은 예전 같지 않지만, 올 추석만큼은 한가위의 달처럼 여유롭고 푸근하게 온 가족이 함께하면 어떨까. 추석 연휴 동안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온종일 비디오 게임기와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더욱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전통 도시의 이미지에 걸맞게 유난히 절기를 타는 전주한옥마을 일대는 한가위를 끼고 생기가 넘쳐나고 있다. 명절때마다 마련해온 놀이마당이지만 올해는 전통세시풍속 체험행사를 늘렸다. 송편도 만들고 차례상도 차려보고 제기차기·굴렁쇠놀이 등 옛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벌써부터 관객맞이를 위한 채비가 한창이다.

전주전통문화센터는 5일부터 8일까지 전주시민을 위한 한가위 특별행사를 마련했다. 가족들이 참여해 송편을 빚을 수 있는 음식마당을 준비하고, 차례상도 진설하며 한가위 유래 등도 알아본다. 민속놀이체험마당은 연휴기간 내내 놀이마당에 펼쳐놓으며, 한벽극장에서는 가족영화도 상영한다. ‘가위손’ ‘비틀쥬스’ ‘찰리와 초콜릿공장’ ‘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의 작품이 준비돼 있다. 남원농악과 정읍농악의 흥겨운 풍물마당이 이어지고, 한벽예술단이 7일과 8일 오후 3시 놀이마당에서 무대를 갖는다.

지난 1일 부터 민속놀이마당을 연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8일까지 송편만들기와 향음주례 등 추석 행사가 이어진다. 독립영화 ‘호박전’과 가족영화 ‘빅피쉬’의 영화도 상영한다.

한옥생활체험관가 5일 외국인노동자와 이주여성 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전통놀이 행사도 볼거리다. 참가자들은 차례상 차리기, 팔씨름, 기마전, 재기차기, 투호 등을 체험하며 장기자랑도 갖는다.

최명희문학관에서는 작가 최명희의 흔적을 되짚는 문학테마체험을 준비했다. 최명희 서체 따라쓰기, 엽서쓰기, 나만의 이야기책 만들기, 혼불로 읽는 한가위 걸개그림전, 연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5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다.

지난달 25일부터 한가위 선물로 추천할만한 공예품 선물전을 열고 있는 전주공예품전시관은 8일까지 한지과반과 한지제기, 계란꾸러미만들기 체험행사를 진행하며, 이 기간동안 매일 오후 2시에는 놀이패우리마당 풍물공연이 열린다. 손 새끼 꼬기 경연도 볼거리다.

박물관도 확 트인 뜨락에 민속놀이마당을 차려놓고, 나들이객들을 반기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5일부터 8일까지 박물관 뜨락에 씨름, 윷놀이, 팽이치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굴렁쇠놀이 등 민속놀이 여섯종목 놀이마당을 선사한다. 징 북 꽹과리 장구 등 사물놀이가 펼쳐지고, 누구나 체험이 가능하다. 연휴기간에는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영화 ‘인크레더블’ ‘웰컴투 동막골’ ‘아홉살인생’ ‘어린신부’가 상영된다.

전주역사박물관도 8일까지 민속놀이마당을 연다. 허리줄다리기와 윷놀이 투호놀이 제기차기 등이 박물관 마당에서 펼쳐지며, 녹두관에서는 매일 오후 2시 ‘호로비츠를 위하여’ ‘밤비2’ ‘판타스틱4’ 등의 영화 상영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연휴기간 역사박물관을 찾는 가족들에는 기념으로 폴라로이드 즉석사진도 촬영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