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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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을 쓰는 기쁨/최명희(정동칼럼)
[경향신문]1995-05-20 05면 정치,해설 칼럼,논단 2085자

필기도구 변화거듭 저 아득한 옛날 인류 최초의 필기도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깨어진 돌조각이나 뾰족한 나무 꼬챙이였을 것이다.
그 날카로운 자연물 촉으로 바위 암벽과 부드러운 흙바닥 위에다 무엇인가 새기고 그리던 원시시대로부터, 손가락 끝 느낌도 경쾌한 컴퓨터 자판에 이르기까지, 길고도 긴 세월 동안 이 필기 도구는 오만 가지 변화를 거듭했을 터인데. 새의 깃을 깎아서 만들어 쓰던 서양의 깃펜이나, 동양의 선비들이 문방사보로 아끼며 애지중지하던 붓들이 그 중 최근의 고전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는 만연필까지도 아주 고색창연한 필기구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아직도 만년필로 쓰세요?』
시인들조차 워드 프로세서를 두드려 작업하는 마당에 이게 웬 일이냐고 놀라며 묻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 나는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를 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만년필을 쓸 것 같다. 나는 만년필을 좋아한다.
먼 길을 떠나는 말에게 물을 먹이듯 일을 시작하려고 만년필에 잉크를 가득 넣을 때. 그 원기둥의 혈관에 차오르는 해갈의 신선함.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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