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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60804][책@21세기.고전읽기]"제 앞길, 제 혼불로 밝히라"말한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08-06-13 12:29
조회
2957
  • 매체: 경향신문
  • 날짜: 2006년08월04일
  • 제목: [책@21세기.고전읽기]"제 앞길, 제 혼불로 밝히라"말한다
  • 출처: https://www.khan.co.kr/article/200608041510001
  • 쓴이: 김병용|소설가·전주교대 겸임교수

[책@21세기. 고전읽기]“제 앞길, 제 혼불로 밝히라” 말한다

일제 강점기, 종부(宗婦) 3대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다양한 사랑과 욕망의 드라마를 담고 있는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은 여러모로 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 성망은 낮지 않으나 완독한 독자를 만나기 쉽지 않고, 문장의 호흡이 독자로 하여금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반면 서사의 진행은 한없이 지루하다. 그런 면에서 ‘혼불’은 처음부터 ‘사랑’의 대상이었다기보다 ‘경외 어린 소문’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일평생 작가가 독신으로 혼불 집필에만 매달렸다는 사실, 혼불 10권 발간 직후 안타깝게 들려온 투병 소식으로부터 사몰(死沒)에 이르기까지…. ‘혼불’은 책의 제목인 동시에 한 예술가의 목숨의 불로 여겨졌다.

‘혼불’은 이미 25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하지만 ‘혼불’이 각광을 받은 것은 길게 잡아야 10년 남짓이다. 이를 부박한 독서 풍토 탓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데에도, 새삼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19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 혹은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18과 6·10 등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 사이의 간극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시기, 즉 격심한 이행기에 비로소 ‘혼불’은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원인을 단순히 ‘현재는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니 과거를 돌아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이 같은 평가는 ‘장길산’이나 ‘토지’ 같은 역동적인 서사 작품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작가 최명희는 만년필로 원고지에 ‘혼불’을 써내려갔다. 그의 글쓰기는 “원고지에 글씨를 써넣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끌로 피를 묻혀가며 새겨넣는 작업”(시인 고은)이었다.

10권 작품의 말미까지 끊임없이 언급되는 청암부인은 3권 초입에 이미 널길에 들어섰는데도 다시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혼불’ 마니아층에게마저 악명 높은(?) ‘사천왕’ 대목은 또 어떤가. 마치 전향적(前向的) 시간관에 역행하려는 사명이라도 타고 난 것처럼, ‘혼불’은 반복과 지연의 서사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남원에서 시작된 강모의 방황은 전주에서도, 만주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작품 초기에 효원이 보여줬던 역동성은 청암부인의 ‘혼불’을 흡습(吸襲)하는 순간부터 마치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둔중해진다. 강실이는 그야말로 동구 밖으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춘복이의 ‘변동천하’ 역시 당시 시대상을 표상할 뿐, 작품 내의 서사 동력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불’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이 되었을까?

그동안 많이 지적된 원인으로는 ‘혼불’에서 보여주는 유려한 문체나 심도 있고 다채로운 민속학적 고증을 들 수 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했던 생전 작가의 말처럼, 최명희는 ‘아슴찬’ 모국어 사랑을 실천한 작가였다. 일부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던 단어 ‘혼불’을 국어사전에 등재하게끔 만든 일이나, 밤과 새벽 사이 그 희뿌연 시간을 표현할 만한 단어 ‘삭연하다’를 찾기 위해 사흘 밤낮 꼼짝도 않고 먼 산바래기만 했다는 일화, 그리고 전주 ‘최명희 문학관’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는 그 꼼꼼한 수공(手工)의 흔적들…. 민속학적 고증 또한 마찬가지이다. ‘혼불’을 텍스트로 하여 조선의 복식을 연구한 박사 논문이 나올 만큼 작가 최명희는 고증에 철두철미했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혼불’이 감동을 이끈 요인은 다른 데 있다. “나 홀로 내 뼈를 일으켜 세우리라.” 이는 작품 속에서 청암부인이 몇 번씩이고 되뇌는 말이다. 종부로서의 의무감만으로 청암부인이 어찌 청상의 재 같은 세월을 견딜 수 있었겠는가. 같은 처지인 인월댁과 옹구네를 보면 이는 보다 확연해진다. 무위와 자기 소모, 어두운 열정이 불러오는 파괴성….

결국 ‘나’는 내가 만든다. 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내동댕이치는 것도 바로 ‘나’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삶은 어렵다. 누군가 얼만큼 내 몫의 짐을 대신 부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허망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이다. 독자들이 ‘혼불’을 통해 읽는 것은 바로 청암부인, 인월댁, 강모, 강실, 강호, 강태, 오유끼, 옹구네, 춘복, 비오리, 백단이의 ‘삶’이다. 그 사람의 욕망이, 사랑이 자신을 수렁에 빠트리기도 하고, 자신을 도약시키기도 한다. 그야말로 내가 내 뼈를 세우고 내 살을 깎는다.

결국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남의 생이 궁금하다. ‘혼불’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대개의 소설에서는 인물의 성격이 선조(線條)적으로 변화한다. 이를테면 인물의 변화와 사건의 진행이 일치되는 경우다. ‘혼불’은 이와 같은 소설 공식에 반한다. 오직 각 개인의 ‘혼불’에만 무섭도록 집중한다. 자신의 불을 다스리는 사람, 휘황한 불기에 그만 넋이 빠진 사람, 자신의 심화로 자신을 태우는 사람….

나는 지금 어디 있고, 어디로 가는가. “앞길이 어둡거든 내 안의 불을 보라.” ‘혼불’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충고란 것이 대개는 가장 평범한 원칙을 재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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