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보행속도에 맞춰 살 때 가장 안정되고 알맞다고 한다. 그것을 넘어서면 몸이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편리하다는 미명아래 누구나 속도전에 뛰어들고,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연필을 버리고 컴퓨터를 택한 것도 어쩌면 속도전 때문이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작가 최명희는 무려 1만2000장의 원고지를 육필로 메웠다. 원로시인 최승범도 여전히 펜을 고집하고 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새기고, 되읽기를 반복하며 글을 완성해 간다.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이 4월부터 작가들의 친필원고를 모아 전시한다. 또 관람객들과 이들 원고를 따라 써보는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국 문학관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수공의 힘’을 새기는 ‘빨간 날…’’사업을 통해서다.

이 사업은 전북 작가들의 친필원고를 모으는 일부터 시작된다. 원로작가들로부터 현재 활발한 창작활동을 보이는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우선 50여명의 작가들의 친필원고를 받을 계획이다. 이병훈 최형 최승범 홍석영 허소라 김남곤 이운룡 소재호 김학 정양 등 원로작가들과 김용택 이병천 정도상 박남준 등 시인과 소설가, 동화, 동시, 수필, 희곡작가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친필을 받는다. 내년에는 대상작가를 보다 확대할 방침이다.

작가들의 친필원고는 문학관에 전시하고, 이들 원고를 계기로 관람객들과는 작가의 서체 따라쓰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4월부터 8월까지 공휴일과 일요일 등 ‘빨간 날’에 진행하는 작가 서체 따라쓰기는 단순한 글씨쓰기의 체험이 아니라 언어와 문학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는, 또 글씨를 매개로 작가와 만나는 색다른 체험행사로 마련된다.

문학관 최기우실장은 “문학관에서 상설프로그램으로 운영중인 ‘최명희 서체 따라쓰기’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아 이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며 “모아지는 작가들의 친필은 모음집으로 묶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성수 관장은 “지역 문학관은 지역 문학인들의 집필·창작의 공간이자 지역주민의 문화공간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며 “이 프로그램이 지역주민들에게 언어와 문자, 문학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