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어디선가 먼지를 이불삼아 고이 잠들어 있을법한 누런 책 한권. 화려한 색으로 치창한 빳빳한 코팅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누런 서적에서는 작가들의 혼이 살아 숨쉰다.

역대 작고문인 문집과 기관·동인지를 한자리에 펼쳐놓은 '전북문학 도서전시'가 전북예술회관 2전시실에서 오는 10일까지 마련된다.

이번 전시는 전북문학연구원장인 허소라 시인의 희생으로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5년 그 당시 대학을 막 입학한 허소라 시인은 길가에 펼쳐놓고 파는 헌 서점을 고군분투하며 보물을 찾기위한 끝없는 방황을 했다고 한다.

"수동보다 자동에 익숙해져 있는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 누런책의 진면목을 모른다. 한국문학의 탯줄과도 같은 전북문학이 소략하게 다뤄지는 것을 지켜보며 더 이상은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느껴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부터 본격적인 전시 준비에 돌입하게 됐다"

그렇다. 요즘은 다들 '짝퉁'에 무척이나 관대해 졌다. 최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 '해운대'는 불법유포로 인해 이미 짝퉁 영상이 쫙 퍼진 상태이고 옷, 신발, 전자기기 그리고 먹거리까지도 여전히 '짝퉁'이 판 치고있다. 하지만 전시된 이 책들만큼은 의기양양하다. 흘러온 역사와 시간 그리고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있기 때문이다.

허소라 원장은 "가람 이병기, 미당 서정주, 신석정, 이광웅, 박정만, 김해강, 최명희 선생 등 이들의 작품을 재판본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압축된 야릇한 종이 향에서 주는 의미와 숨결은 분명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에서는 처절한 작가정신을 만날 수 있다"며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숨쉬고 있는 당시의 작가정신과의 해후는 그 감동이 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가 수집의 결과물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는 허 원장은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다음번엔 전북문학이 아닌 한국근대문학 전시를 구상해 보고 있다"며 "나아가 암울한 일제와 유신에도 굴하지 않고 주옥 같은 민족어로 발표한 이들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문학 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북문학연구원에서는 내년도부터 전북문학을 학술적으로 체계화시킨 연간집을 발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