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5권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3-08 16:53
조회
442
1930년대는 일본의 제국주의 열망이 가속화되던 때다. 더불어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군비 증강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일본은 조선을 병참기지로 삼아 온갖 것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어린애 밥숟가락부터 사람까지 안 가져가는 것 없이 다 가져가는 일본의 수탈을 피해 수많은 조선인이 만주로 떠났다. 그러나 만주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이방인은 길 잃은 아이와 같았다. 정착을 위해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육체와 정신을 만주 땅에 부려 놓아야 했다. 조선과 다른 풍토와 날씨는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었으리라. 견딜 수 없었던 건 이방인을 향한 뾰족한 시선과 차별이었을 것이다.

이들을 더 힘들게 했던 건 그곳에 거주하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의 수탈과 억압을 피해 도망 왔지만, 또다시 그들과 맞닥뜨리고 살아야 하는 현실. 일본은 만주에서도 조선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강모와 강태는 서탑 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중국인 거리와 일본인 거리를 보며 헤어 나올 수 없는 현실에 막막하다. 작가는 이곳 봉천을 묘사하기 위해 1993년 7월과 1995년에 중국의 북경과 연변, 요녕성의 봉천(심양)과 흑룡강성의 목단강까지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혼불 5권에 녹여냈다.
  • 이야기
이기채는 강태와 만주로 떠난 강모를 몹쓸 자식이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행여 강모가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올까 싶어 대문 밖을 기웃거린다. 율촌댁과 효원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강모를 위해 등불을 밝히고 아침 일찍 정화수와 갓 지은 밥을 한 그릇 올려 기도를 드린다.

이들 못지않게 강모를 기다리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강실이다. 사촌지간에 상피가 붙었다는 소문이 거멍굴과 고릿배미에 도는 줄도 모른 채 강실이는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에도 강모의 흔적인가 싶어 사립문으로 뛰쳐나간다. 심지어 대들보에 놓인 아버지 신발을 강모 구두로 착각할 정도다. 강실은 나날이 야위어 가고 시름시름 시들어간다. 집안에서는 스물이 된 강실이가 시집가기를 소망하지만, 딱히 선이 들어오지 않아 오류골댁은 애가 탄다.

강모는 그런 강실이의 마음도 모른 채 강태와 함께 봉천에 자리를 잡는다. 기차를 타고 강모를 따라온 오유끼와 함께 김성직 집에 세 든 것이다. 강태는 서탑거리 끝 시칸방에 살게 된다. 이 둘은 사촌지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 강모는 매안 이 씨 종손으로 청암부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야말로 고귀한 도련님이었고 강태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강태는 청암부인의 차별로 인해 남모르게 부르주아를 경멸하게 된다. 강모에게 청암부인의 고리대금업을 비판하고 재산 축적 과정을 비난하기도 한다.

강모는 그런 강태가 불편하다. 그런데도 강태는 누가 쉽게 따지고 들 수 없는 삼엄함 힘과 골수를 찌르는 준절함이 있다. 그런 탓에 강모는 강태를 멀리하지 못한다. 강태의 뜻밖의 면모를 발견하고 강모는 놀란다. 자상했던 것이다. 처음 만난 이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의외의 모습에 강모는 강태에게 더욱 의지하게 된다.

한편 춘복은 강실이가 강모의 의해 정절을 잃은 걸 알고 강실을 아내로 맞으려 한다. 정월 대보름에 흡월정을 하며 달을 향해 애절한 소원을 빈다.

“달 봤다아.”

춘복이는 거멍굴 동산의 꼭대기 바위 날망에 올라, 두 다리를 장승마냥 뻗치고 선 채로 두 팔을 공중으로 번쩍 치켜 올리며 부르짖었다. 그 소리는 사나운 산짐승이 달을 보고 잡아먹을 듯이 응그리며 무서운 용틀임으로 으르렁거리는 것같이 들렸다.∥ 「혼불」 5권 172쪽

만동이와 백단이가 청암부인 묘에 자기 아비 뼈를 투장하던 날, 춘복은 강실이가 집 마당에 서서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먼 달을 보는 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의 소원대로 강실은 춘복의 여자가 될 것인가?
  • 인물 들여다보기: 강태
강태는 강모의 사촌 형이다. 강태는 어릴 적부터 기질이 당차고 거침없었다. 강실과 마주 앉아 소꿉놀이하는 강모와 달리 강태는 친구들과 이산 저산을 다니며 뛰어놀고 칼부림 놀이를 했다. 그는 어릴 적 청암부인이 자신과 강모를 다르게 대하는 것에 묘한 비굴함을 느꼈다. 같은 손자지만 매안 이 씨 종손인 강모는 청암부인에게 남다른 손자임이 틀림없었다. 청암부인이 강모를 자신과 놀지 못하게 하자 자신과 강모가 태생부터 다른 계층임을 인식한다. 그것이 그에게 흉터였다. 그는 강모에게 나약한 성품에 개념 없는 경제개념을 가진 부르주아라며 끊임없이 힐난한다.

꽤 날카로운 시선과 언변을 가진 그지만 또 다른 성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만주에서 만난 초면의 이들에게 더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말투와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타인을 애정으로 대하는 인물이다. 차별을 당해 본 자이기에 차별로 인한 흉터를 남기지 않겠노라는 의지였다.

“전에도 내가 말한 일이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거래라면, 어느 한쪽이 그처럼 폭리를 얻을 수는 없는 법이야. 반드시 공정치 못한 이윤의 편중이 있기에 거래를 통해서 이익을 보는 쪽이 생기는 것이다. 그 이익의 폭이 크면 클수록 손해를 보는 쪽의 폭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고, ‘손해’ 정도를 넘어서면 ‘착취’를 당한 것이 분명해지지”∥ 「혼불」 5권 67쪽

이에 ‘정당한 가격이라 여기는 어떤 사정이 있겠지’라고 말하는 강모에게 ‘가진 자의 논리’로 맞선다. 강태와 강모는 그만큼 부의 논리와 경제 논리에서만큼은 거리가 멀다.

강태가 서탑 거리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인물 들여다보기: 청암부인
청암부인이 죽고 그의 영연(靈筵)에 자주와 절을 하고 우는 부서방을 두고 집안사람들은 그의 사연이 궁금하다. 그를 붙잡고 연유를 물으니 참으로 마음 아프고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다.

청암부인은 살아생전 자신이 쌓은 재산이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 쌓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돕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청암부인의 공덕은 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조용히 마당을 쓰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빛난다. 누구라도 청암부인 댁 마당을 쓸면 청암부인은 그 값을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당에 풀 날 일이 없었다.

부서방은 타성바지로 다른 사람보다 무엇이든 하나가 부족한 인물이다. 부쳐 먹을 땅도 없는 데다 자식은 많고 융통성은 더 없다. 부지런하지도 못해 항상 식구들이 내일을 걱정할 정도로 배를 곯는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부서방은 이씨 집 광에 몰래 숨어들어 갔다. 그런 큰 가문의 광이 열려 있을 리 만무하다는 걸 몰랐을까? 원체 계획성도 없고 간이 콩알만 한 그는 굳게 닫힌 광 앞에서 망연자실해 한다. 그러던 차에 마주친 청암부인을 보고 부서방은 사시나무 떨리듯 떤다. 이제 곧 목이 떨어지겠구나 하는 데 청암부인이 광을 열어 쌀가마 하나 지고 가라 한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비밀로 하라 당부한다. 부서방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다.

부서방은 청암부인이 내준 쌀가마를 이고 한달음에 집으로 와 한동안 손을 대지 못한다. 청암부인이 베푼 은혜가 너무 커 그대로 먹어 없앨 수 없어 쌀을 돈으로 바꿔 만주로 떠나려 마음먹는다. 이야기가 이러하니 가족도 아닌 부서방이 청암부인 영면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것이다.

생전 청암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랬다고, 재물이 비록 비루하고 독하게 번 것이라 할지라도 쓸 데를 제대로 알아 선하게 써야 한다. 그래야 누에가 고치 벗고, 매미가 허물 벗듯이, 치부할 때의 누추한 부끄러움도 다 벗을 수가 이는 게야. 그러고는 나비 되고 매미 되어서 훨훨 날아가는 것이지.가볍게. 홀가분허게. 빚 다 갚고. 이게 다 빚이니라. 내가 세상에 진 빚.”∥ 「혼불」 5권 244-245쪽

 

※ 글쓴이: 김근혜(동화작가)_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로 등단, 『제롬랜드의 비밀』『나는 나야!』『유령이 된 소년』『봉주르 요리교실 실종사전』『다짜고짜 맹탐정』등을 냈다. 최명희문학관 상주작가(2021년∼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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