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2권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3-08 16:45
조회
578
「혼불」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그중 1부 흔들리는 바람은 혼불 1권-2권에 해당한다. 주요 인물 간의 얽히고설킨 감정에 포인트를 주고 읽으면 쉽고 재미있다. 강모와 효원, 강모와 강실이, 청암부인과 강모의 슬프고도 답답하고 처연한 가슴애피를 들여다보자.
  • 이야기
여기 청암부인과 닮은 여인이 있다. 바로 인월댁이다. 인월댁은 남편 기서가 결혼과 동시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자 열아홉에 청상과부가 아닌 과부가 된다. 청호 저수지에 빠져 죽으려는 인월댁을 구한 것은 청암부인이었다. 청암부인에게 인월댁은 열아홉 시절의 자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청암부인은 인월댁에게 베틀을 하나 내주며 마음 다잡기를 당부한다. 인월댁은 베틀에 앉아 한 많은 세월을 좀 먹는 듯 보낸다.

세월이 흘러 손자인 강모는 전주 고보를 졸업하고 세무서에서 일한다. 그러나 공금 횡령으로 직장에서 실직한다. 그 돈을 오유끼라는 여자를 사는데 쓴 것이다. 오유끼와 살림까지 차린 걸 알게 된 청암부인은 강모를 혼 내기는커녕 이불 밑에서 삼백 원을 꺼내 준다. 철없는 강모는 이것마저 오유끼에게 주고 만다. 그리고 상사병으로 죽은 강수의 영혼결혼식 날, 마음에 두고 있던 강실이를 범하고 만다. 이성을 잃은 강모는 효원을 강간하듯 덮치는 일을 연이어 저지르고 도망치듯 전주로 떠난다.

그날 이후로 강실은 넋이 나가 버리고 효원이도 뭔지 모를 참담함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나마 효원은 나은 편이었다. 그네에게는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는 청암부인이 버팀목처럼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실은 기댈 곳이 없었다. 혼자 힘으로 버틸 수밖에. 그러나 강실은 강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네는 점점 병들고 무너지고 부스러져 갔다.
  • 인물 들여다보기: 강모
「혼불」 2권에서는 1권보다 인물들이 맞닥뜨린 상황이 훨씬 극한으로 치닫는다. 무책임한 강모, 강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강실,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분을 못 이기는 효원. 그리고 변동천하를 꿈꾸는 거멍굴의 춘복과 지독한 모략가 옹구네 까지. 각각의 인물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소설의 재미를 한층 끌어 올린다.

매안 마을 이씨 가문의 종손이 강모는 사촌 여동생 강실이를 사모한다. 신혼 첫날 밤에도 강모는 효원이를 덩그러니 앉혀놓고 꿈에서 강실이를 만난다. 꿈도 사랑도 집안이란 커다란 벽에 막혀 좌절된 강모는 오유끼를 잠깐의 탈출구로 삼지만, 그것 또한 족쇄가 된다. 1권-2권을 읽다 보면 강모의 철부지 같은 행동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저질러 놓고 도망치고 마는 태도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한없이 무기력한 사람…… 나는 삶의 왜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을까. 그저 나는 키우는 대로 자라났다. 그리고 만드는 대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나는 없다. ∥ 「혼불」 2권 88쪽

그물, 저 그물에 걸려 꼼짝없이 나포(拿捕)되어 버린 불쌍한 사람.내가 저 치밀한 그물코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속절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날마다 저 그물을 머리에 쓰고, 자고, 깨고, 먹고······저 속에서 숨진다.∥ 「혼불」 2권 89쪽

인간의 성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타고난 기질이 있다면 강모의 기질은 한없이 순하고 우유부단하며 강한 것 앞에 저절로 기가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강모에게 종가의 종손은 버거운 짐일 수밖에 없다. 강모에게 주어진 삶은 오직 집안을 일으키고 지키는 것. 강모의 할머니 청암부인도 아버지 이기채도 오직 그것만을 위해 강모를 낳고 기른 것이다.

이러한 강모가 강실을 좋아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강실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정갈한 아이다. 사촌 여동생으로 어릴 때는 함께 소꿉놀이하며 정을 쌓아 왔고 커서는 아찔하게 정신을 놓을 만큼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뿜어 강모를 흔들어 놓았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는 게 여리디 여린 꽃잎 같은 강실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무슨 생손 아리듯이 손가락 끄트머리 손톱 밑에서도 네 이름이 앓고 있다.∥ 「혼불」 2권 139쪽

결국 강모는 강실이를 탐하고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을 효원에게 쏟아붓는다. 그리고 홀연 만주로 떠나버린다. 강모는 도망치고 만 것이다. 자신을 옥죄는 모든 것으로부터. 남은 사람들은 상처와 오욕을 안고 만다. 강모가 남긴 건 그것이었다.
  • 인물 들여다보기: 강실
강실이 강모의 아버지와 형제는 기응의 고명딸이다. 강실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참한 아이다.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마땅한 혼처 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다. 사실 강실은 강모의 오랜 연정의 대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실이는 상사병으로 죽은 강수의 영혼결혼식 날 강모에게 겁탈을 당하고 만다.

강모는 강실이의 어깨를 쓸어안고 무너진다.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이.∥ 「혼불」 2권 148쪽

강실은 왜 그렇게 무력하게 강모에게 당한 것일까? 강실이도 강모를 흠모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라면 강모의 뜻하지 않는 행동에 대응할 기지를 발휘하지 못해서일까?

강모와 강실이처럼 상피 붙은 예가 또 있다. 진예와 강수가 그렇다. 강수가 상사병으로 죽은 뒤 일파만파 퍼진 소문으로 진예는 시댁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런 진예가 정신줄을 놓고 여기저기 떠도는 걸 본 강실이는 모골이 송연하다. 자신이 곧 겪게 될 미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이게 누구 탓이란 말인가? 청암부인은 진예와 강수의 사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문중의 오라비 따라 언덕에서 쑥도 캐고, 그러다 넘어지면 일으켜도 주고,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나누어 먹다 보면, 어찌 정인들 들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바깥에는 일도 없이, 우물속같이 고여 사는 젊은 것들이 제 속에서 넘치는 심정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칡뿌리든지 소나무 뿌리든지 하찮은 풀뿌리든지 간에 한 그릇 속, 한 자리에 붙박혀 있으면, 제 뿌리끼리 엉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네.∥ 「혼불」 2권 125쪽


  • 인물 들여다보기: 효원
효원은 또 어떠한가? 그네는 친정인 대실 마을을 떠나 매안 마을로 온 청암부인의 손부다. 그네는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그릇도 자못 크다. 시어머니인 율촌댁과의 언쟁에서도 결코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다. 버릇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소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똑 부러진 사람이다. 그런 효원을 청암부인은 퍽 마음에 들어 한다. 효원 또한 시할머니의 지극한 마음과 속 깊은 말씀에 정 둘 데 없는 시댁에서 작은 위로를 받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아들인 철재를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할머니인 청암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의지가 되어준 유일한 사람, 오르막길에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떠났을 때 효원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청암부인과 자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맥이 서로 따뜻하게 흘러드는 것을 느낀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았으나, 자신이 집안의 줄기를 잇는 한 마디라고 하는 것이 실감되었다.∥ 「혼불」 2권 222쪽

효원은 강모만 생각하면 뼈가 시리다. 그럼에도 그네는 시할머니의 뒤를 이어 꿋꿋하게 살아보려 한다. 다만 책임감만은 아니었다. 강모에 대한 묘한 복수심과 대실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기 암시의 실현이었을 것이다.

※ 글쓴이: 김근혜(동화작가)_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로 등단, 『제롬랜드의 비밀』『나는 나야!』『유령이 된 소년』『봉주르 요리교실 실종사전』『다짜고짜 맹탐정』등을 냈다. 최명희문학관 상주작가(2021년∼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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