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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31122][최명희문학관_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 ⑦나는 많은 작가를 짝사랑한 연애 대장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11-27 20:49
조회
47
수필집 『다시 가을에』를 읽고

여름 막바지에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에서 진행한 ‘걸어서 유교문화 속으로’를 통해 안동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2박 3일의 여정 동안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도산서원과 국학진흥원, 오천 군자리와 의성 김씨 종택, 제산 종택과 만휴정 등에 방문해 유교문화의 정수를 경험했다. 동행한 교수님들의 편액과 한시 등에 대한 품격있는 직독직해와 전문가의 강의, 수준 높은 향토 음식이 곁들어져 답사가 아니라,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그때의 여정 중 의성 김씨 종택을 회상해본다.

평소 한옥에 관심이 많아 보고 머무르기를 즐겼던 터라 답사 전부터 기대했다. 명불허전, 보물급 고택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종가의 손님맞이는 그 격이 매우 높았다. 종손의 안내를 받아 고택의 면모를 살핀 뒤 자리한 사랑채에는 말로만 들었던 육 칸 대청이 있었다. 정연한 공간이 선비의 내면을 보는 듯했다. 대청 상부에 제사를 진행하고 도왔던 제관들의 명단이 남아 있었다. 유서 깊은 가문이라 종손의 역할인 ‘초헌’부터 상을 드는 ‘봉반’까지 수십 명이 제사를 진행한 듯했다. 좌중이 정리되자 종손께서 좌정하며 며칠 전 ‘불천위 제사’가 있었다며 제관 명단을 가리켰다. 이내 각 제관의 역할과 제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찬찬히 설명해주셨다.

제사가 승계되면 윗대 신주를 치우는 ‘사대봉사’와 달리 ‘불천위’는 신주를 옮기거나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모셔 영구히 제사를 지낸다. ‘불천위 제사’는 종가(宗家)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로 안동지역에서는 불천위를 모시고 있는 종가를 ‘불천위 종가’라 하여 다른 종가와 그 격을 달리한다. 불천위 제사뿐만 아니라 기제사, 묘제, 차례 등 여러 제사는 가문의 위계를 확립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근간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동기간의 우애와 동질감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고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 이런 전통을 후손들이 잘 본받는다면 내가 죽은 후에 4대손까지, 적어도 80년 정도는 나를 기억해 주겠구나, 혹여 가문의 불천위가 된다면 멀고 먼 후손들까지 제사를 통해 나와 감응하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위안, 학문 수양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불기념사업회에서 매해 최명희 선생의 기일에 맞춰 진행하는 ‘작고문학인세미나’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전북 문단에 발자국을 남기셨거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작고 문인을 추모하고 그의 문학적 성과를 조명하는 일. 작고 문인이 남긴 저서를 읽어 서평을 작성하고 세미나를 통해 그네의 글을 논하고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일. 일회성 회고를 넘어 작고 문인의 글을 후배 문인들이 체화하고 그 과정에서 문학적 소양을 본받아 다시 독자와 후배 문인에게 전달하는 일이 제사와 닮은 것도 같다.

‘작고문학인세미나’가 매년 ‘최명희문학관’에서 최명희 작가의 기일에 맞춰 진행되므로 최명희 선생은 ‘불천위’쯤 되고, 서평을 작성하며 세미나에 참석해 견해를 밝히고 추모 행사를 진행하는 후배 작가들은 제관쯤 되며, 봄부터 작가들에게 책을 배정하고 서평 원고를 모아 자료집을 만들며 세미나 전체를 관장하는 최명희문학관 관장은 초헌관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미나의 의미를 따져 본다면 작가들은 작가들 나름대로 최명희 선생과 작고 문인을 기리며 ‘작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문우 간의 우애와 동질감을 확보하며, 작고 문인의 문기(文氣)를 이어받는 자리일 것이다.

더욱이 올해에 선정된 김순영 수필가는 ‘작고문학인세미나’의 취지에 더없이 부합하는 작가이시다. 김순영 작가는 “나는 많은 작가를 짝사랑한 연애 대장”이라는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할 정도로 동료 작가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전북 문단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실제로 문인과 문단에 대한 김순영 작가의 사랑과 관심은 오래 지속되었고, 그 내용도 추상적이고 관념적 차원을 넘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 차원에서 실천되었다.
 
오래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수필집 모두를 소장할 목적에서 집중적으로 수필집을 사 모았었다. 몇 군데 유명서점에서는 외상장부를 마련해 놓았었고 헌책방 순례를 취미로 삼아 돌아다녔으니까 웬만큼 수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이르러 수필집 출간이 활발해지면서 봉급쟁이 형편으로 빠짐없이 신간을 구입하는데 경제적 부담이 생겼다. 그래저래 꽤 많은 수필집이 서가를 채워 주고 있는데 수에 관계 없이 내게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스승님의 저서거나 혹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문우의 작품집이나 또는 나름대로 깊은 감명을 받은 작품이거나 하여 각각 소홀할 수 없는 까닭이 있는 때문이다. ∥수필 「탕자의 변」 중에서

봉급쟁이 형편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수필집을 소장할 포부를 세운 배포도 대단하지만, 서가를 채운 수많은 수필집 중 그 인연으로 인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마음 씀은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까지 들 정도이다. 이 존경심은 수필집 『다시 가을에』 중 「전라수필문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글을 읽을 때쯤이면 경외감으로 치환된다.

「전라수필문학의 어제와 오늘」은 25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논문에 가까운 글이다. 1945년 광복 직후 신석정 시인의 수필 「신호림으로 날아간 백공작」부터 1995년 「전주문학」(회장 윤이현) 제6집에 실린 9인의 수필까지, 50년 동안 발간된 단행본, 문학 계간지, 동인지, 소식지에 실린 수필을 망라하고 있다. 나아가 공간적, 장르적으로 작가의 경계를 짓지 않아 전북 문단의 외연을 크게 확장하였다.

본고는 전북수필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밝힘으로 현재 전북에 거주하지 않거나 전북문협에서 활동을 하지 않은 작가들과 수필이 아닌 분야의 문인들의 작품과 또 수필에 관한 전문서와 논문은 물론 문인이 아닌 분들의 작품집도 언급하여 전북수필문학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수필 「전라수필문학의 어제와 오늘」 중에서

그리하여 무슨 문중의 족보를 만들 듯 50년간의 전북 문단 수필사를 정리했다. 또한, 당해년도 문단에 있었던 중요 사건을 기록하고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는데 문학사적 측면에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랫글은 그 내용의 일부이다.
 
89년 가장 뜻깊은 일은 김해성, 이기반, 허소라, 박옥구의 ‘백양촌선생수필전집간행위원회’에서 ‘백양촌수필전집’을 출간하여 선생께 봉헌한 일이다. 선생은 오랫동안 와병 중으로 기동이 불편하고 언어장애를 겪고 계시는데 봉헌식에서 떨리는 손으로 봉헌하는 시집과 수필집을 어루만지시는 것으로 감격을 표시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아울러 참으로 옳은 일을 했다는 안도감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셨다. ∥수필 「전라수필문학의 어제와 오늘」 중에서

더없이 놀라운 점은 김순영 작가는 주로 활동했던 전주 지역 문예지뿐만 아니라 전북 전역에서 발간된 문예지와 동인지, 소식지를 탐독하고 지면에 실린 모든 작품을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수필집 『다시 가을에』를 비롯해 김순영 작가의 다른 수필집에도 전북에서 활동한 문인들과 ‘전라북도’라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그러므로 ‘작고문학인세미나’에 더 없이 어울리고 적합한 작가가 김순영 선생인 것이다.

김순영 작가에 대한 추모 세미나는 최명희 소설가 추모일(12월 11일) 즈음인 12월 10일(일)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다. 유명하고 겸손하며 실력 있는 작가들이 봄부터 각자의 소임에 맞게 세미나를 준비했다. 많은 문인과 도민 여러분들도 세미나에 참석하여 김순영 작가를 추모하고 그녀의 문장과 삶에 감응하셨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수필 문학의 종가(宗家)인 전라북도 문단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김순영 작가를 매개로 하여 우애와 친목, 동질감을 느끼시기를 바란다.

 글_ 황지호 소설가
※황지호 작가는 나와 내 아이를 변화시킨 인문학 편지를 부제로 한 『잠수함 속 토끼』와 『산전수전 겪지 않고 시골집 고치기』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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