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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20231108][최명희문학관_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 ③세상 밖으로 드러난 김순영의 이야기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11-09 10:19
조회
73
수필집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수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수필은 상황의 단순한 기록이나 객관적 진리의 서술이 아니라는 것. 서정의 감미로움과 입가에 스치는 미소와 벽을 뚫는 비평 정신이 함께 하며 활짝 웃게 하는 해학이 넘친다는 것. 놀라 기겁하면서도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기지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론 얼음장처럼 냉철한 비평 정신으로 오늘의 인식과 내일의 지표를 드러내기도 한다. 김순영(1937∼2019)의 글에서도 이러한 수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김순영은 수필에 대한 신념이 남달랐다.

“수필은 인생의 걸어온 자취라 하고, 또는 인생 체험으로 찾아낸 정의의 뿌리라고 한다. 그리고 수필은 재주로 쓰는 글이 아니고 애정으로 쓰는 글이라고 배워 왔다. 불분명한 단어의 나열로, 말의 낭비가 아닌, 언어의 표피가 아닌 본질이 만져지는 수필을 쓰는 것이 남은 내 운명이다.”

김순영의 말이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선배 김순영의 말에 화들짝 놀라 스스로 돌아보게 했다. 혹여 글을 써나가며 본질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김순영은 글을 쓰는 것과 운명을 하나로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글 속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글을 쓰는 것에 마음을 다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원고지 10매를 쓰기 위해 실사를 다니고,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수십 장의 참고 메모를 준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는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문학의 기본수칙이라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김순영을 통해 글을 쓰는 일은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순영이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의 태도를 드러낸 부분이 있어서 옮겨와 본다.

“글 쓰는 일을 너무 가볍게 여겨, 심지어는 명함을 찍기 위한 자기 현시용으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느끼게도 됩니다. 자기 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작가라 할 수 있으며, 적어도 작가라는 것이 출세의 발판이 되는 일만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직업 없이 글만을 쓰며 사는 작가를 가장 존경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작가가 되려면 어떤 일에도 왕도가 없듯 꾸준히 많이 쓰는 길밖에 다른 지름길이 없습니다. 늘 낱말 하나하나를 정선 하는 노력과 여러 번 추고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해요.”

마음에 새기게 되는 말이다. 이처럼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기 때문이리라. 또한, 문학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활동 또한 남달랐다. 문단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여류문학회 등의 창립에 헌신하여 전북 문학사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김순영은 25세인 1961년에 삼남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외투」가 당선되고, 30년 만인 1991년에서야 첫 수필집인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낸다. 그동안 여기저기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아서 100편이 넘는 수필을 하나로 모아 출간했을 당시의 감회는 무척 벅찼으리라. 작가로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전하고 싶었을지 작품의 제목에서도 느껴졌다.

첫 수필집인 『꼭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김순영과 대한민국의 굴곡진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독재정권하에서 4·19와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이라는 시대의 아픔은 김순영 개인의 역사이기도 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섯 개로 범주화해 나누어져 있다.

첫째, ‘아! 옛날이여’는 1980년대의 시대상을 짐작하게 하고, 둘째,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계절의 흐름과 고향, 주변 사람들,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다뤘다. 셋째,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사회 변화의 물결을 보며, 직장 내에서 맞이하는 수많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이나, 지금은 볼 수 없는 국기 하기식 등 1970년대의 모습을, 넷째, ‘대문을 열라’에서는 다양한 소재를 배열하여 김순영의 철학을 녹여냈다. 다섯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에는 다른 범주와 달리 계절에 따른 추억과 시간에 얽힌 이야기로 채웠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탓일까? 등단 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출간한 책이어서 일까? 의식하지 못한 채 스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소재로 마음껏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중 김순영의 글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조기에 대한 조리법과 보관하는 방법까지 촘촘하게 써 내려간 「참조기」를 인용해 본다.

조기 상자는 트럭에 실려 와 멍석 위에 마구 쏟아져 내렸다. 트럭이 돌아가고 조용하던 집 안팎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소금 가마니가 부산스레 옮겨지고 독과 자배기에는 소금을 뒤집어쓴 조기들이 켜켜로 쌓인다. 아무리 분주한 속에서도 굴비 거리와 젓조기는 영락없이 나뉘었다. 젓조기는 막바로 젓 독에 절여서 뚜껑이 봉해지고 굴비 거리는 간이 배이면 새끼줄에 열 마리씩 얼기설기 맞추어 여러 가닥으로 어긋나게 매어 묶은 꾸러미가 되어 평소보다 훨씬 높이 장대 받친 빨랫줄에 곶감 널리듯 매달렸다. 삽시간에 넓은 마당은 덕대가 줄지어 늘어선 덕장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간수된 조기젓과 굴비는 이듬해 햇것이 나오기까지 우리 집 밥상의 단골 식단이 되었던 것이다. ∥수필 「참조기」 중에서

필자도 항구 도시인 군산에서 살았던 탓에 어릴 때부터 해산물을 가까이 접하고 밥상 위에 생선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지금도 겨울이 되면 ‘물매기’라는 생선이 아직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후루룩 입안으로 들어오면 씹기도 전에 목으로 넘어가는 시원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오래 두고 먹을 것은 아가미에 줄을 넣어 바람이 들이치는 곳에 매달아 두고 꿉꿉하게 마르면 한 마리씩 국을 끓여 먹었다.

집집이 고유의 음식 비법이 하나쯤은 있을 거다. 조기는 여러 가지 요리가 가능하다. 젓갈로도 쓰이고, 생 구이나 찌개, 말려서 먹는 굴비까지 다양하다. 김순영은 얼마나 많은 조기를 먹었던지 조기 젓갈 담그는 것도 눈에 선하게 그려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침이 넘어갈 것처럼 짭조름한 맛이 배어난다.

이처럼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자존감이 남달리 강했던 김순영은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쓰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읽는 내내 자신의 글에 책임져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경옥 동화작가

※이경옥 작가는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 선정 작품인 『달려라, 달구!』와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나눔 선정 작품인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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