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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31110][최명희문학관_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 ④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큰 그림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11-11 12:41
조회
70
 

김순영(1937∼2019) 수필가는 평소 “저는 쉬운 수필이 좋아요. 여운이 남는 수필.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수필. 내가 제시하고 해결하고 답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답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의 글은 이처럼 꾸밈없이 진솔하다. 어쩌면 사소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시간이 지나온 흔적이나 시간을 앞선 흔적을 느낄 수 없게 지금도 있을 법한 글이었다. 작가의 수필은 주로 체험 수필이다. 현재 익히 있을 일이어서 친숙함에 공감백배하며 읽혔다.

때는 곳과 어울려서 하나로 태어난다. 소요자적하는 산책을 취미로 가진 적이 없건만, 어느 아침은 절망이고, 어느 아침은 기쁨이고 어느 아침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단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다.∥수필 「어느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다」 중에서

‘때는 곳과 어울려서 하나’로 태어나는 하루. 하루의 결은 서로가 다르다. 절망, 기쁨, 고요, 무의미, 설렘, 분주, 느긋함 등등 어느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었다. 어제는 청명한 하늘에 바람이 차가웠고,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다소 어두우면서 후덥지근한 기운을 느꼈다.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네의 손에 쥔 홍시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푸근했다. 어제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오늘은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무의미하게 밖을 바라보고 싶었던 아침이었다.

그냥 지나칠 법한 다른 아침,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준다. 날마다 변화무쌍한 아침을 잔잔하게 잘 그려낸 그의 글로 인해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소설 같은 것을 소설로 만드는 것이 문학이다. 소설이 되려면 소설 같은 내용이 소설의 형식을 입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데 내용과 형식이 집합하는 방법이란 오직 한 가지 바로 작가의 작품쓰기 뿐이다. 컴퓨터가 온갖 일을 다 해 내지만 자료를 입력시켜도 문학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현재까지는).

사건이나 대상이나 감정은 작가가 쓰지 않은 한 다만 존재하는 사건이고 자연이고 변화하는 감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목수의 눈에 뜨이는 굴러다니는 기왓장이나 서까래나 주춧돌과 같다.

∥수필 「나의 문학관」 중에서

김순영 작가는 글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의 수필은 읽는 내내 똑 부러지는 깔끔한 문장과 감정에 젖어들게 했다. 또한, 글 속의 진솔함에 푸근해진다.

글을 쓰려면 어느 때나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생긴다. 글에 대한 나의 책임감을 저버릴 수 없음이다. 글쓴이와 독자가 공감되는 글이어야 하는데 글쓴이의 만족에만 그친다면? 시시콜콜한 신변잡사만 쏟아져 내릴 건 불 보듯 뻔한 현실이다. 그가 강조한 글에 대한 책임감은 경고이고, 중요한 일깨움이다. 사건이나 대상이나 감정은 작가가 쓰지 않은 한 다만 그저 사건이고, 감정에 불과하다는 말은 글을 써야 하는 완결을 뚜렷이 알려주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안성맞춤이다.

그런데도 나의 버리지 못하는 버릇은 여전했고 나는 이 버릇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당연한 일을 한다는 의식이었는데 그것은 다만 버리는 것이 죄짓는 것 같아서였다. 내게 직접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이라 하여 함부로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윗대의 엄한 가르침이었다.

수챗구멍에 밥알이 나가는 날에는 당신이 식사를 거르신 선친이셨다.

그 밥알에 담겨있는 여러 사람들의 골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였다.(중략)

분명한 것은 나는 종이를 모은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엄마! 요즘은 잘 버리는 주부가 살림 잘사는 주부래요.”

딸은 어이없는 표정도 기막힌 표정도 가신 그만의 싱그런 표정으로 무안을 숨기는 나를 달래며 누렇게 빛바랜 종이들을 휴지통에 버렸다.

왜 그때 선친이 보고 싶었을까…. ∥수필 「습관 이야기」 중에서

선친의 행동으로 길러진 습관 이야기가 참 수긍이 간다. 세대 간의 사고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정점을 잘 표현했다. 문장에 군더더기 없음 또한 돋보인다. 요즘은 더더욱 길러진 습관으로 충돌할 일이 많아졌다. 저렴한 것보단 가성비 높은 것,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세대별 지혜의 절충이 간절하다.

데이비에게 훌륭한 사람이란 곧 부자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엄마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이모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에 의심이 생겼던 것이다. 제 엄마의 옷을 얻어(?)입고 다니는 가난한 이모가 아무리 생각해도 훌륭한 사람이 아니기에 데이비는 제 엄마의 말이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본래 수수께끼란 답이 정해져 있는 법인데 나는 데이비의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주지 못하고 헤어졌다. ∥수필 「데이비의 수수께끼」 중에서

우문현답이라고 해야 하나? 문화적 차이를 해학적으로 전하는 글이다. 겉모습만 보고 남을 판단하는 고정관념으로 자신의 작품까지 평가절하 될까 염려하는 작가의 우려가 우습고 슬프다. 미완결로 끝난 수수께끼는 완전 수수께끼가 됐다. 작가는 여백을 남기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생활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재, 익히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잘 읽히는 장점이 있다. 수필이 참 쓰기 힘든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김순영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살아 있게 표현해 삶을 생생하게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넘치지 않게 고이는 맑은 샘물 같은 글이다.
 
김영주 수필가·동화작가
※김영주 작가는 2018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동화)과 전북일보 신춘문예(수필)로 등단했다.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청소년소설 『가족이 되다』, 오디오북 『구멍난 영주씨의 알바보고서』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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