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데일리전북 2011-06-08] 이태영의 "소설가 최명희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1-06-09 11:07
조회
2094




매체: 데일리전북
날짜: 2011년 6월 8일
제목: 이태영의 "소설가 최명희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소설가 최명희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 주는
씨앗”이라고
설파한 소설가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데 8권에 <27. 어느 봄날의 꽃놀이,
화전가>란 작은 제목이 나
왔다.

자세히 읽어보니 조선시대에 많이 유행하던 가사와 같은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이 내용 중에는 ≪춘향전≫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형식은 가사를 빌렸지
만 내용은 고전소설
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말쌈 들어 보소.
부유浮游 같은 천지간에 초로草露 같은 인생이라.(중략)
일장춘몽 우리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놀음 중에 좋은 것은 화전花煎밖에 또 있는가.

≪혼불≫ 4권 102쪽에서 106쪽까지의 내용은 한글고전소설 중 <흥부전>의 이야기 형식으
로 이끌어가
고 있어 작가 최명희가 한글고전소설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감물 바랜 것 같은 낯색으로 공배네도 한 마디 옆에서 거들었다.
“그 착허디착헌 흥부도, 박 속으서 나온 천하 일색 양구비를 첩으로 삼었다등만, 금은보화 다 좋지만
흥부한테는 그거이 일등 선물이라.”

동네 사람들은 오례 잡아 서리쌀·풋돔부·풋콩 까서, 밥을 짓네, 송편 하네, 창 앞에 대추 따
고, 뒤안에
알밤 줍고, 논귀에서 붕어 잡고, 두엄에 집장 띄워 먹을 것 많건마는, 가련한 우
리 신세 먹을 것 바이 없
네. 세상에 죽는 목숨 밥 한 덩이 누가 주며, 찬 부엌에 굶은 아내
조강이들 볼 수 있나. 철 모르고 우는
자식, 배를 달라 밥을 달라, 무엇으로 달래 볼까. 우
리는 저 박을 타서 박 속은 지져 머고, 박적은 팔어
다가 한 끼 구급하여 보세.

≪혼불≫ 5권 205쪽, 5권 303쪽, 8권 241쪽(가난허디가난헌-), 9권 15쪽(옛날 옛적 어느
시절에)에서는
옛날이야기 형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이처럼 작가 최명희가 옛날이야기
형식을 자주 쓰는 이유는
바로 소설의 근원을 우리의 설화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화
는 곧 현대소설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 한글고전소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고 최명
희는 한글고전소설을 자기 소설의 근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전에 어뜬 부잣집에 머심이 하나 있었는디. 생김새도 밉잖허고 허는 짓도 담쑥담쑥 보기 싫
잖헌 떠꺼
머리 총각이였드리야. 나이 한 이십이나 되얐등가, 그보다는 조께 더 먹었등가, 하
이간에 그런 머심이
하나 있었어. 그 사람 성이 머이냐 허먼 김가여. 그렁게 김도령이제. 이
김도령이 에레서 그만 조실부
모를 해 부리고는, 일가 친척도 벤벤찮어서 기양 이집 저집을
떠돌아 댕김서 얻어먹고 지내다가, 어찌
어찌 하루는 그 부잣집이로 들으가게 되얐당만. (최명희, 혼불, 1996, 5, 205.)

대부분의 작가처럼 설화나 한글고전소설에 관심이 좀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혼불≫을 발행
한 한길사
에서 나오는 잡지 ≪리브로≫(1996년 겨울 27호)에 실린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
란 글을 보니 ‘가장 한국
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 심청전’과 같은 우리의 한글 고대소설
의 문체를 들고 있었고, 그래서 ‘우
리 식의 고유한 이야기 형태’를 살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
다.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우리 식 고유의 이야기 형태를 살리
면서 서구
전래품이 아닌 이 땅의 서술방식을 소설로 형상화하여, 기승전결의 줄거리 위주
가 아니라, 낱낱이 단
위 자체로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각 장章, 각 문장,
각 낱말을 나는 쓰고 싶었다.

‘춘향전, 심청전’ 등의 한글고대소설을 예로 들어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
일까?

전주에서 발간된 완판본 ≪열여춘향수절가≫나 ≪심청전≫ 등은 판소리계 소설이기 때문에
청자와 화
자가 함께하는 공연 예술로서의 판소리 대본과 같은 것이다. 지문에 어려운 한자
어들이 나오지만, 전
통적인 민요조에 맞춘 4·4 조의 리듬감, 다양하게 나오는 토착 방언의
사용 등이 어우러져 읽기 쉽게 되
어 있다. 대화에 나오는 말은 토착 방언의 말투가 그대로
쓰여서, 읽는 사람이 소설 속의 사건에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이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최명희는 판소리 사설에서 유래된 완판본 한글고대소설의 이야기 유형이 ‘우리 식 고유의
이야기 형
태’임을 깨닫고 있었다. 최명희는 전주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이 보여주는 전통
적인 문체, 판소리
식 문체에 매료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혼불≫에서도 완판본 소설에 관심을 보이는 대목이 나온다.

옛날에 이야기책 그 재미난 춘향전의 완산판 목판본을 찍어내던 자리 또한 곧 여기 아니면
저기일 것
이라고, 나이 자신 노인들은 손가락을 들어, 즐비한 교동 기왓골 지붕 위를 가리
키며 짚어 보곤 하였
다. (최명희, 혼불, 1996, 8, 119.)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우리의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의 서술 구조를 가짐과 동시에, 판소리
와 관련된
이야기 형식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당시의 시민들이 요구하는 개화 의식을 함
께 가지고 있었기 때
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이야기
형식을 최명희는 다른 작가와 마
찬가지로 느끼고 개인적인 글에서 한글고전소설을 언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년·소년 적에는 춘향전, 구운몽, 추월색, 장한몽 등 신구 소설과 삼국지, 수호지, 동한연
의, 서한연
의 등 안 읽은 게 별로 없고”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채만식의 작품 속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
행된 고전소설과 신소설이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채만식
의 여러 작품에서 고전소설과 신
소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
이다.

“야야, 책을 얻어올라거던 <유충렬전>이나 <심청전>을 얻어오려무나.”(채만식, 인형의집,
1987, 53.)
저녁을 마친 뒤에는 시급히 <춘향전>을 사디려 그애더러 읽으라고 하고는 (채만식, 천하태평춘, 193
8, 6, 164.)

조정래의 ≪아리랑≫에서도 한글고전소설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아동들의 교육용으
로 사용되
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글고전소설은 문자를 익히는 교재로 사용되었
다. 아이들은 춘향전
은 물론이고 심청전, 흥부와 놀부 ,콩쥐팥쥐, 나무꾼과 선녀 같은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열 살을 먹
기 전에 벌써 여기저기서 다들은 것이었다. 모두 고달프고 힘겨
운 생활 속에서도 아동교육을 얼마나
철저하게 시키고 있는지 송중원은 새삼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조정래, 아리랑, 1995, 11, 212.)

최명희는 ≪혼불≫을 쓰면서 한자어도 다듬고, 우리말도 새롭게 만들고, 전라 방언도 조사
를 많이 하
여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 전통의 이야기 양식을 살리고 거기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실어 ≪혼
불≫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을 대표하는 완판본 한글 고전소설은 194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채만식과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
가 최명희에게 큰 영향을 주어 한국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을 낳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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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프로필]

전주 출생. ≪순수문학≫으로 등단.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글학회 전북
지회장. 문
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위원, <한국어 지식 대사전> 편찬위원. 저서로는 ≪역주
첩해신어≫, ≪채만식
문학 연구(공저)≫, ≪국어 동사의 문법화 연구≫, ≪언어와 대중매체
≫, ≪한국어와 정보화(공저)≫,
≪문학 속의 전라 방언≫ 외 다수. / 신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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