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데일리전북 2011-06-08] 이태영의 "소설가 최명희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매체: 데일리전북
날짜: 2011년 6월 8일
제목: 이태영의 "소설가 최명희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소설가 최명희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 주는 씨앗”이라고
설파한 소설가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데 8권에 <27. 어느 봄날의 꽃놀이, 화전가>란 작은 제목이 나
왔다.
자세히 읽어보니 조선시대에 많이 유행하던 가사와 같은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이 내용 중에는 ≪춘향전≫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형식은 가사를 빌렸지만 내용은 고전소설
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말쌈 들어 보소.
부유浮游 같은 천지간에 초로草露 같은 인생이라.(중략)
일장춘몽 우리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놀음 중에 좋은 것은 화전花煎밖에 또 있는가.
≪혼불≫ 4권 102쪽에서 106쪽까지의 내용은 한글고전소설 중 <흥부전>의 이야기 형식으로 이끌어가
고 있어 작가 최명희가 한글고전소설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감물 바랜 것 같은 낯색으로 공배네도 한 마디 옆에서 거들었다.
“그 착허디착헌 흥부도, 박 속으서 나온 천하 일색 양구비를 첩으로 삼었다등만, 금은보화 다 좋지만
흥부한테는 그거이 일등 선물이라.”
동네 사람들은 오례 잡아 서리쌀·풋돔부·풋콩 까서, 밥을 짓네, 송편 하네, 창 앞에 대추 따고, 뒤안에
알밤 줍고, 논귀에서 붕어 잡고, 두엄에 집장 띄워 먹을 것 많건마는, 가련한 우리 신세 먹을 것 바이 없
네. 세상에 죽는 목숨 밥 한 덩이 누가 주며, 찬 부엌에 굶은 아내 조강이들 볼 수 있나. 철 모르고 우는
자식, 배를 달라 밥을 달라, 무엇으로 달래 볼까. 우리는 저 박을 타서 박 속은 지져 머고, 박적은 팔어
다가 한 끼 구급하여 보세.
≪혼불≫ 5권 205쪽, 5권 303쪽, 8권 241쪽(가난허디가난헌-), 9권 15쪽(옛날 옛적 어느 시절에)에서는
옛날이야기 형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이처럼 작가 최명희가 옛날이야기 형식을 자주 쓰는 이유는
바로 소설의 근원을 우리의 설화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화는 곧 현대소설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 한글고전소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고 최명희는 한글고전소설을 자기 소설의 근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전에 어뜬 부잣집에 머심이 하나 있었는디. 생김새도 밉잖허고 허는 짓도 담쑥담쑥 보기 싫잖헌 떠꺼
머리 총각이였드리야. 나이 한 이십이나 되얐등가, 그보다는 조께 더 먹었등가, 하이간에 그런 머심이
하나 있었어. 그 사람 성이 머이냐 허먼 김가여. 그렁게 김도령이제. 이 김도령이 에레서 그만 조실부
모를 해 부리고는, 일가 친척도 벤벤찮어서 기양 이집 저집을 떠돌아 댕김서 얻어먹고 지내다가, 어찌
어찌 하루는 그 부잣집이로 들으가게 되얐당만. (최명희, 혼불, 1996, 5, 205.)
대부분의 작가처럼 설화나 한글고전소설에 관심이 좀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혼불≫을 발행한 한길사
에서 나오는 잡지 ≪리브로≫(1996년 겨울 27호)에 실린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란 글을 보니 ‘가장 한국
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 심청전’과 같은 우리의 한글 고대소설의 문체를 들고 있었고, 그래서 ‘우
리 식의 고유한 이야기 형태’를 살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우리 식 고유의 이야기 형태를 살리면서 서구
전래품이 아닌 이 땅의 서술방식을 소설로 형상화하여, 기승전결의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낱낱이 단
위 자체로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각 장章, 각 문장, 각 낱말을 나는 쓰고 싶었다.
‘춘향전, 심청전’ 등의 한글고대소설을 예로 들어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
일까?
전주에서 발간된 완판본 ≪열여춘향수절가≫나 ≪심청전≫ 등은 판소리계 소설이기 때문에 청자와 화
자가 함께하는 공연 예술로서의 판소리 대본과 같은 것이다. 지문에 어려운 한자어들이 나오지만, 전
통적인 민요조에 맞춘 4·4 조의 리듬감, 다양하게 나오는 토착 방언의 사용 등이 어우러져 읽기 쉽게 되
어 있다. 대화에 나오는 말은 토착 방언의 말투가 그대로 쓰여서, 읽는 사람이 소설 속의 사건에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이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최명희는 판소리 사설에서 유래된 완판본 한글고대소설의 이야기 유형이 ‘우리 식 고유의 이야기 형
태’임을 깨닫고 있었다. 최명희는 전주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이 보여주는 전통적인 문체, 판소리
식 문체에 매료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혼불≫에서도 완판본 소설에 관심을 보이는 대목이 나온다.
옛날에 이야기책 그 재미난 춘향전의 완산판 목판본을 찍어내던 자리 또한 곧 여기 아니면 저기일 것
이라고, 나이 자신 노인들은 손가락을 들어, 즐비한 교동 기왓골 지붕 위를 가리키며 짚어 보곤 하였
다. (최명희, 혼불, 1996, 8, 119.)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우리의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의 서술 구조를 가짐과 동시에, 판소리와 관련된
이야기 형식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당시의 시민들이 요구하는 개화 의식을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
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이야기 형식을 최명희는 다른 작가와 마
찬가지로 느끼고 개인적인 글에서 한글고전소설을 언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년·소년 적에는 춘향전, 구운몽, 추월색, 장한몽 등 신구 소설과 삼국지, 수호지, 동한연의, 서한연
의 등 안 읽은 게 별로 없고”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채만식의 작품 속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
행된 고전소설과 신소설이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채만식의 여러 작품에서 고전소설과 신
소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야야, 책을 얻어올라거던 <유충렬전>이나 <심청전>을 얻어오려무나.”(채만식, 인형의집, 1987, 53.)
저녁을 마친 뒤에는 시급히 <춘향전>을 사디려 그애더러 읽으라고 하고는 (채만식, 천하태평춘, 193
8, 6, 164.)
조정래의 ≪아리랑≫에서도 한글고전소설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아동들의 교육용으로 사용되
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글고전소설은 문자를 익히는 교재로 사용되었다. 아이들은 춘향전
은 물론이고 심청전, 흥부와 놀부 ,콩쥐팥쥐, 나무꾼과 선녀 같은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열 살을 먹
기 전에 벌써 여기저기서 다들은 것이었다. 모두 고달프고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아동교육을 얼마나
철저하게 시키고 있는지 송중원은 새삼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조정래, 아리랑, 1995, 11, 212.)
최명희는 ≪혼불≫을 쓰면서 한자어도 다듬고, 우리말도 새롭게 만들고, 전라 방언도 조사를 많이 하
여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 전통의 이야기 양식을 살리고 거기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실어 ≪혼
불≫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을 대표하는 완판본 한글 고전소설은 194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채만식과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
가 최명희에게 큰 영향을 주어 한국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을 낳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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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프로필]
전주 출생. ≪순수문학≫으로 등단.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글학회 전북지회장. 문
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위원, <한국어 지식 대사전> 편찬위원. 저서로는 ≪역주 첩해신어≫, ≪채만식
문학 연구(공저)≫, ≪국어 동사의 문법화 연구≫, ≪언어와 대중매체≫, ≪한국어와 정보화(공저)≫,
≪문학 속의 전라 방언≫ 외 다수. / 신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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