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고창 기행 5 …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지장보살님

작성자
Oz
작성일
2007-11-15 10:48
조회
2559

…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지장보살님

선운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동백꽃과 상사화도 있겠지만 실상은 도솔암의 마애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선운사에 왔으면 도솔암은 반드시 가야한다는 말이 있으니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도솔암 가는 길에 진흥굴과 장사송도 있다니 더 잘된 일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햇살 좋은 곳에 상사화가 수줍게 피어있다. 이제야 토라진 마음 풀렸는가 싶다.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몸이 좀 무겁지만 그래도 마냥 좋기만 하다.

한참 오르다 보니 오른편으로 진흥굴이 있다. 길이 10m, 높이 4m의 자연석굴이다. 신라24대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도솔왕비, 중애공주와 함께 출가해 수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선운사 창건의 또 다른 설이기도 하지만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 신라의 최대 적국은 백제였다. 그런데 신라의 왕이 이곳까지 들어와 출가를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검단선사의 설보다 이 진흥왕 설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다. 양국 간의 전쟁으로 인해 죽어버린 인명을 위해 적이라는 이유로 죄책감 없이 살생을 저지른 것에 대한 때늦은 뉘우침으로 적국까지와 출가를 한다. 일국의 왕답지 않은가.

진흥굴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345호 수령이 600여년이 넘었다는 장사송 한 그루가 우아하게 서있다. 여덟 개의 가지가 우산을 활짝 펼친 모양으로 아름답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다. 이 소나무 역시 전설이 있다. 한 여인이 자신의 정인을 기다리다 숨진 넋이 극락왕생했다고 하는 전설이다. 정말 소원도 많고 전설도 많은 도솔산(선운산)이다.

또 한참을 올라가자 도솔암의 요사채를 짓는다고 공사가 한창이다. 산이나 사찰을 찾는 이들은 모두 조용히 생각하고 자신과 대화하고 싶어서 오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산중턱에서도 공사 중이다. 선운사 입구에도 복분자진흥관을 짓는다고 난리더니 결국 여기도 공사판이라니 울컥 짜증이 밀려온다. 공사장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자 거대 암벽인 칠송대가 나오고 그곳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17m 키의 마애불 그것도 좌부 좌를 하고 앉아있어 17m 이지 일어서 있다면 20m는 넘었을 부처님이다.

한 가운데에는 사각형으로 시멘트로 땜질한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원래 그 안에는 검단선사가 비결서를 넣고 숨겨놓았다고 전해진다.

그 소문이 전라도에 횡행하기 시작한다. 전라감찰사 이서구는 이같은 유언비어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감지하고 손수 그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병사들응 이끌고 와서 미륵의 배꼽을 열어보려고 했다. 드디어 배꼽을 연 순간, 거기 놓인 책 한권을 발견했다. 헌데. 그 표지에 ‘이서구 개탁’이란 글시가 선명하지 않은가, 쫙-!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찰나, 이번에 갑자기 뇌성벽력까지 쳤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혼비백산한 이서구는 책은 .... 손화중 접주는 이 비결서를 자신이 꺼내기로 한다. 물론 그 비결서를 손화중이 실제로 입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땅은 바다를 안고』 中)

비결은 그 후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손화중이 그 비결을 가지고 갔다면 동학이 일본에게서 연승을 해야 했고 일본을 몰아내야 맞을 것인데 아쉽기도 하다.

마애불 옆으로 바위계단을 100여개 올라가면 내원궁이 암벽 위에 날아갈 듯 걸쳐있다. 내원궁은 불교에서 도설천 한가운데 있는 궁전이라 한다. 내원궁에는 한 가지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 준다는 지장보살 좌상이 모셔있다.

나 역시 소원 한 가지 마음으로 빌어본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비밀이다. 궁금하다면 내원궁 뒤편 돌 틈을 잘 살펴보시라 검단선사가 마애불에 비결을 감춰놓은 것처럼 감춰 놓고 김 아무개 개탁(開坼)이라 써놓았으니 말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불과하고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불법의 나라에서 다시 사바세계로 가려하니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동백꽃을 보지 못했고 만발한 상사화도 보지 못했다. 작가 최명희처럼 동백나무 아래에서 이끼 꽃을 발견해 그 안의 우주를 생각할 틈도 없었지만 방그작작 웃는 모습들은 많이 봤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선운사 동백꽃은 눈 내리는 한 겨울철에도 붉은 꽃을 활짝 피운다고 하니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가는 길에 송창식의 선운사라도 불러 제끼련다.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떠나실 거예요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 만개하니…

전체 908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08
필록57_존재/ 자각과 자긍
최명희문학관 | 2010.07.03 | 추천 0 | 조회 2223
최명희문학관 2010.07.03 0 2223
107
필록56_세상의 이치/ 귀천 (3)
최명희문학관 | 2010.07.01 | 추천 0 | 조회 2261
최명희문학관 2010.07.01 0 2261
106
필록55_삶/ 공부
최명희문학관 | 2010.06.29 | 추천 0 | 조회 2238
최명희문학관 2010.06.29 0 2238
105
필록54_인생/ 갖추어야 할 것과 빈 것
최명희문학관 | 2010.06.26 | 추천 0 | 조회 2262
최명희문학관 2010.06.26 0 2262
104
필록53_인생/ 참다운 혈
최명희문학관 | 2010.06.24 | 추천 0 | 조회 2260
최명희문학관 2010.06.24 0 2260
103
필록52_정신/ 어른
최명희문학관 | 2010.06.22 | 추천 0 | 조회 2161
최명희문학관 2010.06.22 0 2161
102
필록(筆錄)51_사람/ 근원
최명희문학관 | 2010.06.17 | 추천 0 | 조회 2213
최명희문학관 2010.06.17 0 2213
101
필록50_나/ 모국과 조국
최명희문학관 | 2010.06.15 | 추천 0 | 조회 2239
최명희문학관 2010.06.15 0 2239
100
필록49_사람/ 뿌리
최명희문학관 | 2010.06.11 | 추천 0 | 조회 2299
최명희문학관 2010.06.11 0 2299
99
필록48_부부/ 삼생연분
최명희문학관 | 2010.06.09 | 추천 0 | 조회 2369
최명희문학관 2010.06.09 0 2369
메뉴
error: 콘텐츠가 보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