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고창기행 4 … 웃음의 시왕

작성자
Oz
작성일
2007-11-03 08:57
조회
2326

… 웃음의 시왕

동백나무를 구경하며 시왕전으로 가는 길에 영산전 뒤쪽 옆으로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았다. 뒤쪽 그림은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자와 흰 코끼리인데 생긴 것이 우스꽝스럽다. 사자는 머리에 붉은 뿔이 나있고 목에 방울이 달려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사자 목에 방울 달기는 처음이다. 화공의 장난질, 아니면 악인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 일지도. 방울 소리를 듣고 도망가라고 알리는 소리 말이다. 흰 코끼리는 모습은 더 희귀하다. 코끼리인지 호랑이인지 구분 할 수 있는 것은 얼굴모양뿐이다. 코끼리의 얼굴은 흰 수염이 달린 할아버지 같았고 눈은 웃음을 참느라 힘들다는 표정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는 흰 코끼리가 우스운 것은 마주보고 있는 사자의 방울 덕일지 모른다.

영산전 측면에는 불교에서 칭하는 보구가 홀로 하늘을 날고 있다. 법종, 목탁, 비파, 나발, 구름을 끼고 하늘을 날며 스스로 연주하는 보구들, 그 아래 연꽃 위에서 춤을 추는 선동들이 있다. 그리고 영산전 안에는 1장 6척이나 되는 부처님이 계신다.

영산전을 지나 시왕전으로 향한다. 시왕전 이름이 명부전으로 돼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十王)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후에 두 전각을 결합했다고 한다.

명부전(冥府殿)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나타낸 전각으로 시왕과 지장보살을 모시는 곳이다. 사람이 죽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명부인데 이곳에서 선행과 죄악을 따져서 극락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정한다고 한다. 시왕 중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염라대왕이다. 그래서 염라대왕이 무서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10번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 심판을 맡는 이들이 시왕이다. 그중 염라대왕은 마지막 심판장의 역할인데 마음이 여리고 측은함이 많아 모든 사람을 극락으로 보내줬다. 이에 극락은 넘쳐나고 지옥이 한가해지니 세상에 죄짓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 모습을 본 부처님이 염라대왕에게 다섯 번째 심판을 맡기고 전륜대왕을 마지막으로 보냈다고 한다. 염라대왕의 변화신이 지장보살이라는 것을 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18세 소녀의 몸으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 보살의 신분으로 지옥에 있다는 지장보살, 그리고 지옥을 한산하게 만들었다는 염라대왕,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명부전 안 시왕이 웃고 있다. 진광.. 초강.. 평등.. 한 명도 빠짐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진광대왕은 이까지 보이며 웃고 있다. 인간을 심판하는 대왕들이 웃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왕들은 무엇 때문에 웃고 있을까? 지옥을 관장하는 시왕들의 미소는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을 것 같다.

지장보살 이야기가 나왔으니 선운사의 지장보살 중 유명한 설화를 가지고 있는 지장보살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지장보살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한 적이 있는데, 이때 영험함을 보인 사실로 인해 더욱 널리 추앙받고 있다. 1936년 어느 여름에 일본인 2명과 우리나라 사람 1명이 공모하여 보살상을 훔쳐간 뒤, 거금을 받고 매매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상이 영이(靈異)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소장자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하였다. 소장자는 다소 이상한 꿈으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후로 병이 들고 가세(家勢)가 점점 기울게 되자 꺼림칙한 마음에 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겨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났으나 그 역시 이를 무시하였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자 다시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 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이 겪은 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모셔갈 것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모셔오게 되었는데, 이때가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이었다. 당시 잃어버린 보살상을 다시 모시고 온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도 사건에 대한 개요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주지는 '이우운(李雨雲)'으로 기재되어 있다. (『전통사찰총서, 선운사 편』)

… 불법 제도(濟度)하는 네 가지 사물(四物)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에 천왕문만 보고 옆에 있는 사물은 마지막 여운을 위해 일부러 보지 않았다. 사물(四物) 중 운판에 얕은 지식이 있고『혼불』에서 그 표현이 잘 나타나 있기에 보고 싶은 마음에도 아끼고 아껴둔 것이다.

범종(梵鐘)은 이 험난한 사바 예토에, 생로병사 고통을 겪으며 나와 남에 집착하여 허덕이는 사람들과, 태산 같은 업이 쌓여 지옥에 간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자비와 진리의 소리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둥그런 하늘을 그대로 담아 안은 것 같은 북, 커다란 홍고(弘鼓)는 네 발 가진 털 있는 짐승들이 듣고서 깨치라고

두둥 둥 둥 두리 둥둥

치는 것이며, 홍고보다 좀 작은 북 법고(法鼓) 또한 마찬가지다.

판판 납작한 금속판에다 구름의 모양을 만들어 당초 문양 아로새긴 운판(雲版)은 청천 하늘 복판에인 양 높다랗게 매달아

챙 챙 챙 채앵

허공 가운데 날아다니는 새와 날것들의 영혼을 위하여 친다.

어른 팔을 활짝 벌리어 한 발이 넘는 잉어 모양의 속빈 나무 물고기 목어(木魚)가 납닥납닥 붙은 비늘을 달고 높이 걸리어 있다. 이는 물 속에 있는 수류중생(水流衆生)들을 위하여

또독 딱 또드락 딱 (『혼불』 9권 中)

예전부터 사물(四物)을 동시에 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사치스러운 일인지 기회가 없다.

여의주를 손에 쥐고 있는 용이 범종을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저 용은 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까? 선운사의 용들은 다들 고생이 많다. 약수 한 모금을 막걸리 마시듯 하고는 소매로 입을 닦아낸다. 캬아~! 할 것 다 했으니 다시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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