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중앙일보] 불볕더위도 쉬었다 갈 『혼불』 명당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0-07-31 18:24
조회
1006
[중앙일보] 불볕더위도 쉬었다 갈 『혼불』 명당



행복농촌 ② 남원 노봉마을

전북 남원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고장이다. 숱한 우리 고전이 이 땅에서 잉태했다. 시내 한복판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무대, 동북쪽 아영면 상성마을은 ‘흥부전’의 발생지로 통한다. 서북쪽 사매면 노봉마을 역시 그러하다.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로, 곡진한 이야기와 느긋한 풍경을 품고 있다.
  
‘천추락만세향’
 
『혼불』은 최명희(1947~98)가 17년에 걸쳐 쓴 대하소설이다. 일제강점기 종갓집 며느리들의 인생 역정과 당대의 풍속사가 생생하다. 주 무대였던 ‘매안마을’이 실제 남원 노적봉(568m) 북쪽 기슭에 들어앉은 노봉마을이다.
 
외지인 하나만 들어도 개 짖는 소리로 동네가 울리는 한적한 시골. 46가구 85명이 노봉마을에서 살아간다.  『혼불』의 터전에 왔음을 알아채는 건 쉽다. 식당·카페·민박 등등 곳곳이 ‘혼불OO’하는 식의 간판을 달고 있다.  『혼불』의 흔적을 찾으면 “우린 전래동화가 아니라  『혼불』을 들으며 자랐다”며 밭일하던 할매도 해설사를 자처한다. 소설의 부제 ‘꽃심을 지닌 땅’을 새긴 정승이 마을 입구에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

마을 들머리의 옛 서도역은 소설에서 주인공 효원과 강모가 드나들던 장소다. 2001년 폐역이 됐지만, 1932년 개설 당시 모습이 남아 있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꼽힌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도 익숙하다.
 
청호지도 실재한다. 소설에서 종갓집 맏며느리 청암부인은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라고 이 저수지를 묘사했다. 풍수지리에 대한 안목은 없지만, ‘만세의 복을 누린다’는 명당임이 대번 느껴진다. 청호지 뒤편 언덕에 혼불문학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마을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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