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황선우)백일홍 단상(斷想)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9-08-25 21:53
조회
1135

글쓴이: 황선우<전북서부보훈지청장>
출처: 전북도민일보 2019년 8월 26일자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9782

 

 


 

 요즈음, 함열읍에서 익산시내까지 대략 20여㎞의 23번 국도, 도로변에는 전라북도의 꽃인 백일홍(배롱나무)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백일동안 붉게 핀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백일홍은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끊임없이 선홍색의 붉은 꽃을 피워낸다.

 광복절 즈음에 피는 꽃이라 그런지 붉은 백일홍을 볼 때면 최명희 작가가 쓴 “혼불” 중, 독립운동가 연재 송병선 선생이 흰 옷 위로 붉은 선혈을 쏟으며 숨을 거두는 모습과 그 옆에 엎드려 있는 사노 복남이 오버랩(overlap)되어 떠오르곤 한다.

 ‘의관을 정제하고 임금 계신 곳을 향하여 북향 사배 무릎을 꿇은 채, 갈아입은 흰 옷 위로 선혈을 쏟으며 숨이지는 연재 송병선의 발치에는, 맨 처음 이 자결을 준비할 때부터 소리없이 시중을 들던 사노 복남이가 애절하게 엎드려 있었다……. (중략)…. 숨을 거둔 송병선의 머리를 내려놓고, 피에 물든 옷자락을 여미어 드린 뒤, 그는 상전이 미처 다 못 마신 약사발의 독약을 기울여 마셨다. 창자가 끊어지는 통곡으로 상전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릇에 묻은 약을 다 혀로 핥고 핥아 그는 상전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다.’

 실제, 연재 송병선 선생은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을사5적 처단, 을사늑약 파기 및 의로써 궐기하여 국권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겨놓고 음독자결하셨다. 또한, 시비로 있던 공임도 뒤를 이어 자결하셨다. 우리 지역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는 연재 송병선선생 묘지와 바로 그 옆에 조그마한 의비 공임의 묘가 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일제강점기 죽음으로써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고 총칼을 들고 항일 의병투쟁에 뛰어들었으며,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광복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하여, 마침내 나라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우리나라는 6.25전쟁 등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최근, 일본의 아베정권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해 우리나라를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등의 수출을 막는 등 경제 보복을 가하고 있다.

  이에 우리 국민은 자발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고,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일본 측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가 의류, 주류 등 소비재를 넘어 관광업계까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라는 문구들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 독립군 항쟁을 그린 영화 “봉오동 전투”는 개봉 2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21세기 경제전쟁 시대에서 또 다른 국난을 맞아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열들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는 것은 다시 한 번 국민에너지를 결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증명하듯이 우리 선열이 남긴 애국정신과 독립정신을 이어가고, 국가와 국민, 기업 모두가 단결한다면 오늘의 위기는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나라가 진정한 경제 강국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엊그제 광복절을 앞두고 방문했던 생존 애국지사님께서 분기탱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본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위안부 및 독도문제 등 반성도 없이 경제보복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과 기성세대, 젊은이들은 일본의 만행을 깊이 인식하고, 각자 주어진 일에 매진(邁進)해야 일본을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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