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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2008-09-04 전북일보]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게 하는 책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08-09-07 11:26
조회
2977

최명희 '혼불'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게 하는 책

작성 : 2008-09-04 오후 6:06:11 / 수정 : 2008-09-04 오후 8:28:01

전북일보(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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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을 완독하면서 한마디로 혼났다. 첫째는 작가의 놀라운 필력을 보며, 왜 진작 읽어보지 않았을까 내 자신을 꾸짖었다. 둘째는 한여름에 근 보름을 가부좌 틀고 앉아, 당대를 살아가는 비운들의 쓰라린 삶의 역정에 휘말려 진땀을 흘렸다.

작가 최명희가 17년 동안 집필한 「혼불」을 나는 고시 준비생처럼 종일 책상을 끌어안고 읽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혼불」을 쓰게 했는지, 쓰면서 그는 왜 때때로 엎드려 울어야 했는지, 어떻게 썼기에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았는지…. 그의 온 생을 불사른 「혼불」의 뼈마디마디를 탐독했다. 그것은 내게 즐거운 고통이었다. 「혼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의 조우, 그들의 삶을 당시의 풍속을 통해 아주 세세하게 묘사한 희로애락에 내 삶을 접붙여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줄달음치기도 했다.

「혼불」은 매안 이씨 종부 3대의 숨 막히는 삶의 질곡과 그 억압 속에서 태어난 종손 강모의 상피와 방랑, 질긴 인연의 업을 안고 살아가는 강실의 가슴애피, 상민과 팔천의 생을 치열하게 부지해 가며 변동천하를 꿈꾸는 거멍굴 사람들, 우유부단한 강모만을 해바라기하는 가련한 오유끼, 뼈아픈 역사의 뒤안길에서 민족혼을 깨우쳐주는 역사 선생 심진학, 가늠할 수 없는 시대의 맥을 따라 흘러가는 지성인 강태와 강모, 사천왕을 통해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인도하는 호성암의 도환스님, 내 나라에 삽 한 자루 꽂을 땅 없어 만주벌판 얼음 강을 건넌 부서방네, 양반세력에 저항하며 종가의 마루를 찍는 상민 쇠여울네, 이씨 문중의 노비로 상전의 씨를 낳은 침모 우례 등등 하나 같이 생의 올가미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마치 아름다운 조각품이 태어나기 위해 떨어져 나간 돌이나 쇳조각으로 보았다. 뉘라서 그 비운의 세월을 비껴갈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동백꽃만큼 그 둥치에 낀 이끼의 생명력을 소중히 여겼다. 많이 듣고, 널리 듣고, 두루 들어 중생을 살피는 다문천왕처럼 작가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의 넋이 들려, 그들이 시키는 대로 가라는 대로 내달리며 「혼불」을 썼다.

「혼불」은 작가가 자신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에서 썼다고 했다. 그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나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혼불」을 읽은 후, '나의 뿌리'를 다시 한 번 짚어보았다. 나는 1964년, 물 좋고 공기 좋은 청정지역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임실읍 정월리 태생인 아버지와 임실읍 대곡리 태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그야말로 임실 토종이다. 임실(任實)은 백제 때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내려온 취음이다. 임실의 '임'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실'은 마을을 말한다. 즉, 임실은 그리운 임이 사는 마을이요, 타향살이하는 임실 출신들에게 고향은 바로 '임'인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여섯 살 때 전주로 나왔다. 지금도 고향 정월리에는 정감 있는 작은아버지가 선산을 지키며 살고 있고, 대곡리에는 마음 따뜻한 외숙모 두 분이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나 온 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마한과 백제의 마지막 땅,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全州)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과 전주팔경을 배경으로, 인후동 기린봉에 떠오르는 '기린토월'의 기를 받아 숨을 고르고, 정다운 사람들과 좋은 기운을 나누고자 마음을 다하며, 안골 한 자락 자리 잡고 앉아 그날이 그날처럼 그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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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당신과 삶을 함께 하는 주위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생을 조각하고 있는가? 혹시라도 당신만의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떨어져나간 돌이나 쇳조각들의 아픔이 있었는가? 누군가의 조각품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얼마나 나누었는가?

/박예분(여성객원기자·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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