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2011-05-12] 세월 가고 시대 바뀌어도… 더 짙어지는 전통의 향기

얼마 전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을 보고 부러웠다. 고집스러운 전통, 이런 게 갈수록 좋아진다. 여
행을 떠나면 이런 걸 만나고 싶다. 우리는 전통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 천년의 역사를 자
랑하는 오래된 도시 전주가 생각났다. 조선 왕조의 발상지 전주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전주 한옥마
을을 찾아가기로 했다. 실은 '맛의 도시' 전주가 궁금하기도 했다.

전주 한옥마을 여행

기와를 얹은 일주문(一柱門) 아래 호방한 붓글씨로 '전주'라고 새긴 전주 톨게이트가 우리를 맞이했
다. '예향 전주'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번 전주 여행은 한옥마을을 위주로 돌아보기로 했다. 한옥마
을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 풍남동 일대 25만여㎡에 700여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졌다. 도심 한복판에 한
옥마을이 존재하는 곳은 전주가 유일하다. 오목대, 경기전, 한벽당, 풍남문 등 보물 같은 문화재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마침 전주한지 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라 마을이 잔칫집처럼 떠들썩하다.

한옥마을 입구의 전동성당은 아름답다. 얼핏 서울의 명동성당이 떠오르지만 규모가 조금 작아 보인
다. 명동성당은 고딕 양식, 전동성당은 비잔틴 풍의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 차이도 있다. 명동성당은
아버지 성당, 전동성당은 어머니 성당이라고 부른단다. 마침 성당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
부부가 있다. 신부는 늘 그렇듯이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포즈를 취한다. 1914년에 지어진 100년 역사
의 전동성당. 어머니의 따뜻한 눈길로 얼마나 많은 커플을 지켜봤을까.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태조 어진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동학농
민운동 등등 난리 때마다 피란가는 수난을 겪었다. 이 결과 전국에 있던 26점의 태조 어진이 모두 사라
지고 전주 경기전 어진만이 조선시대에 그려진 진본으로 남았다. 우리는 참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전주한지는 역사와 함께했다. 중요한 역사적 기록은 언제나 전주한지의 몫이었다. 한지공예, 닥종이
의 쉼터가 현대적인 분위기의 교동아트센터이다. 그 바로 옆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념하는 최명희문학관이다. 그가 남긴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
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
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 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
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