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작성자
Oz
작성일
2007-07-21 15:29
조회
2356




해가 쨍쨍하더니, 비가 쏟아진다. 한번 시작하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내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가 마치 사람의 마음 같다.

엷게 내리던 빗방울이 조금씩 두터워진다. 바람까지 가세해 문학관의 외부 행사장을 엉망으로 만든다. 천둥이 질러대는 비명에 놀라 몸을 흠칙거린다. 우선 지하 강연장으로 뛰어 내려간다. 지하 강연장은 습기와 곰팡이가 제일 큰 문제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넘쳐서 낭패를 보기 일쑤다. 다행히도 물이 잘 빠지고 있었다. 안도하고는 사무실로 올라가보니 후문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이 빠지지 않아 빗물이 가즉 고여있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빗물이 빠질 수 있게 길을 만든다. 조금씩이지만 그래도 빠져나가는 듯 했다. 윗옷이 다 젖어서 여벌로 남아있던 개량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머리가 짧아서 그런지 스님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썩 잘 어울린다.

다시 한차례 천둥이 비명을 질러댄다. 무슨 성질을 저리도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타닥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깨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땅으로 떨어져 빗방울이 깨지는 소리. 「타닥」그 소리가 경쾌하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다. 수천, 수억 만개의 빗방울이 동시에 「타닥」 하고 소리를 낸다. 결코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빗방울이 땅에 떨어져 깨지면서 파편이 떨어져 나가고 산산조각이 난다.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 빗방울을 만들어 다시 하늘로 올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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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역시 빗방울처럼 땅에 떨어지면「타닥」하고 소리를 낸다. 그리고 깨진 마음은 본디 모양으로 만들 수 없다. 빗방울은 수증기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 자신의 모양새를 갖추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지구가 생기고 지금까지 반복해 왔다. 사람 마음 역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깨지는 소리를 내고 파편을 다시 찾아 모양새를 갖춘다. 다만 빗방울처럼 같은 모양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양을 만들어 떨어지고 다시 다른 모양을 만든다.

오늘은 눈을 감고 그 사람의 마음을 예전에 내가 알던 모양으로 바꾸어본다.

억수같이 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멈춘다. 이 역시 사람 마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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