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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작성자
몽순
작성일
2019-06-17 11:04
조회
989
앵두의 길  /  이경림
 
 
그 때 나도 터질 듯 붉었을까
온 몸에 빽빽이 그걸 매달고
미친 듯 역류하고 있었을까
 
생각날 듯, 생각날 듯 앵두꽃 떨어지고
어디 꽃자리만한 영혼이 문득 앵두로 익어갈 때
누군가 간절히
 
-얘들아, 그만 내려와, 너희들은 지금 너무 빨갛구나
 
타이르는 저편 하나 없이 막무가내
땡볕인 척 타올랐을까
부지불식의
속을 짓물리고 있었을까
 
가지마다 아이들을 다닥다닥 매단 그 나무는
왜 어째서 어떻게
그렇게 한 자리를 전속력으로 달아났을까
 
달아나면서, 갈피마다 빨갛게 죽은 아이를 숨긴 채
마침내 가장 여린 가지에 깊이 찔린 것일까
 
그것이 앵두일까
앵두의 꿈일까
 
가령, 천지간에 가득한 앵두 하나 있어
희고도 붉고 깊고도 휘둥그런 앵두 하나 있어
아득하고 모호하고 번개 같고 굼벵이 같은 앵두 하나 있어
아침 보다 자욱하고 저녁 보다 텅 빈 앵두 하나가 있어
 
마침내, 수미산보다 크고 눈곱보다 작은
새빨간 장롱 같은 앵두 하나
까무러칠 듯 익는 동안
 
나는 피비린내를 과육향으로 읽으며
무슨 유구한 영혼처럼 어른거리던 그 나비들을 다 버려야 했을까
 
그러나 나무 위로 올라간 앵두들은 끝내 내려오지 않고
볼이 터져라 달아나기만 하는데
어쩌자고 참
 
앵두는 앵두
앵두나무는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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