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JB포스트  20230527][제6회혼불의메아리]우수상(2): 김소영의 ‘만남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5-28 16:07
조회
482
  • 매체: JB포스트 
  • 날짜: 2023년05월27일
  • 제목: [제6회혼불의메아리]우수상(2): 김소영의 ‘만남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41
  • 쓴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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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만남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글쓴이: 김소영(38·전북 익산시)

○ 들어가며

내가 혼불의 메아리(혼불문학상 수장작 감상문 공모전) 소식을 접한 건 병실에서였다. 병실을 함께 쓰는 70대 어르신께서 ‘불타는 트롯맨’ 재방송을 보시느라 TV가 틀어져 있었다. 나는 발목 골절 수술 환자로 병실에서 나흘을 보낸 상황이었다. 지루한 병실 살이 중 한 줄기 도전 의식이 생기는 광고였다. ‘아, 저거다. 나의 열정을 불태울 그 무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직 「검푸른 고래 요나」를 만나지도 않았지만 느낌이 좋았다.

주미와 구희, 요나를 모두 만난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백지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내 안의 많은 이야기를 주미에게, 구희에게, 요나에게 또는 모두에게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지 말을 고르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안에 무언가가 움직인 것처럼 나도, 나와 다르면서도 닮은 주인공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싶다.

○ 가정에 닥친 슬픔에 충분히 애도할 수 있었다면, 또는 애도할 힘이 있는 가정이었다면…….

주미는 혜미를 잃은 슬픔에 힘들어했다. 그런 주미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시가 붙는다. 독자인 나도 불안감과 긴장감에 숨이 막혔다.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그들이 왜 일개 연예인인 디셈, 주미를 감시하는 걸까? 이유를 모르기에 답답하고 무서웠다. 만약 나 역시 알게 모르게 감시를 받는 중이라면? 감시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감시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동생 혜미 몫을 대신해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은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주미는 지쳤다. 대중들의 댓글 속에 담긴 시기와 질투, 한 팀인 동료들의 경쟁과 몰이해는 주미의 섬세한 마음이 쉴 자리를 주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진 감시는 주미의 정신을 갉아먹는 벌레가 되어 주미를 괴롭혔을 것이다. 차라리 오른 다리를 다쳐 더는 아이돌로서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것이, 강제지만 멈추어 선 것이 후련하다는 주미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로, 장애 없는 몸으로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주미도 나도 그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더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가 아니므로 감시도 끝난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주미와 비슷한 점이 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발목 골절로 다리를 다쳤다. 또 주미를 알기 6개월 전 자신의 선택이긴 했지만, 직장을 휴직함으로써 멈추어 섰다. 나는 부안이라는 시골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딸로 자랐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셨다. 논 가장자리까지 고추와 콩을 심어 한 뙈기의 땅도 놀리지 않는데도 우리는 학원 하나 다닐 수 없게 늘 가난했다. 농사일에는 어린 나의 일손까지도 필요했다. 학교 보충 수업을 빠지고 고추를 따는 게 우선되는 가정이었다. 그런 내가 학교 공부만으로 교육대학교에 턱 하니 붙어 교사가 된 지 벌써 12년째였다. 교사라는 직업을 밑천으로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저출산 시대에 아이도 낳아 기르며 나 나름으로는 잘 나가고 있었음에도 나는 휴직계를 제출했다. 직장 동료들, 교대 동기들이 나의 선택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1학기보다 수업 일수가 짧은 2학기를 버티면 겨울 방학인데, 추석 명절 보너스, 설 명절 보너스, 1월 정근 수당 등 월급 외의 수당이 많은 시기에 왜 쉬냐고 질문했다. 교단을 잠시 떠나 있는 것은 나에게도 내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서는 것 같아, 사실 나 자신도 괴로웠다. 스스로 철로를 벗어난 기차에 비유했다. 휴직계를 낸 것은 나이지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교육 현장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로서는 직장 근무로 인해 몸과 마음 어딘가가 망가졌다는 생각이었다.

주미가 혜미를 잃고 아이돌 산업에 뛰어들었듯, 나도 언니를 잃은 채 교육산업에 뛰어들었다. 내가 교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당시, 2학기 기말고사를 한주 앞두고 언니가 출산 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언니가 죽기 일주일 전, 나는 맹장염으로 대학교 앞 병원에서 수술했었다. 퇴원한 지 하루 이틀 만에 언니의 시신이 안치된 포항의 한 장례식장을 찾아가야 했다. 가는 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장례식이 끝난 뒤 부안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이모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집으로 가지 않을 거냐고 물었었다. 다음 주면 기말고사였고 맹장으로 일주일, 장례식으로 일주일을 보낸 상황에서 지금부터 가서 시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4학년 마치고 바로 임용에 합격할 수 있도록, 언니의 빈자리만큼 내가 우뚝 서서 가정에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헤어진 후 일주일쯤 지나 받은 것은, 엄마가 아빠를 상대로 신청한 이혼 소송장이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휴직 후 전주의 한 상담센터에 치료차 다니는 중에 이모의 말이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대학이 아닌 부안을 선택했다면,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막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결혼 전 언니가 입던 옷과 쓰던 물건들을 소각 하러 간 사이에 엄마를 위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엄마도 상실감에 집을 떠나지 않으셨었겠지. 아빠 역시 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들을 보면 마음 아파서 그렇다고, 어머니 못지않게 언니와 ‘피가 섞이지 않은 우리’도 슬프다고 얘기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과거는 이미 쏟아버린 물이었다. 의붓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제 살길 찾겠다고 대학으로 가버리는 의붓딸로부터, 친딸을 잃은 슬픔을 위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자신의 노후를 살펴줄 자식은 이제 없고 스스로 지금부터 노력해서 자신의 원 가족끼리 힘을 모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느끼신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일곱 살 겨울부터 어머니의 자식으로 커왔어도,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언니와 수년을 친언니만큼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애정을 느꼈어도 다 끝나버렸다. 새어머니의 의지로 나의 친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기를 선언한 이후부터는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 아니었고, 언니의 동생이 아니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 만나는 인연들에 나에게 돌아가신 언니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면 너무나 복잡해져 버렸다. 언니와 나는 가족관계증명서에 단 한 줄도 남지 않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반면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친어머니는 여전히 기록에 있다.

장례식 직후의 생각과 달리 대학교 4학년은 방황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임용고시 앞에서 위축되었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가난은 대학생 신분을 잃은 나에게 막막한 불안으로 다가왔다. 학원가의 강사로, 임고 재수생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할 새가 없이 바쁘게 만들었다. 어머님이 청구한 위자료 삼천만 원을 낼 수 없어서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에서 판사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나의 아버지가 죽은 의붓언니에게 경제적으로 부족한 아빠이긴 했다. 하지만 막노동판에서 간식으로 받은 단팥빵을 드시지 않고 딸들 주겠다고 챙겨오시는 아버지셨다.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나와 언니는 그 등에 매달려 애교를 부렸고, 어머님의 주장처럼 편애하거나 학대를 한 적은 없다.”라고 말이다. (IMF 이후 시골에도 경제부흥을 위한 공사들이 진행되어 아버지는 농사와 막노동을 병행하셨다.)

주미 역시 혜미의 죽음을 계기로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겪는다. 깊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혜미가 죽어서가 아니다. 주미의 아빠 강진호씨는 외도를 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었다. 이는 이혼 사유로 충분한 가정 파괴 행동이다. 혜미의 죽음은 그저 방아쇠였을 뿐이다. 내 가족 역시 언제든 이혼할 수 있는 구조에 놓여있었다. 한 부모의 힘으로 아이를 기르기 힘들어서 재혼으로 힘을 모았던 가정이기에, 재혼 가정으로 살면서 생기는 ‘삶의 한’을 엄마가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언니의 죽음이 없었다면 조금 늦게 일어났을 일이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15년 넘는 세월 동안 통장 관리는 어머니 몫이었는데 이혼 직후 아버지 통장에는 한 푼의 돈이 없었던 걸 미루어 볼 때 어머님은 늘 미래를 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 6학년쯤이었을까? 이모 갖다 주라며 손에 쥐여 주셨던 ‘열어보지 말라는 봉투’에 무엇이 들어 있었을지 사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이제는 나 역시 어른이 되었기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며 불안한 마음 없이 얘기할 수 있다.

주미 가정이 혜미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할 수 있었다면 아빠 역시 요나를 잡겠다는 권력에 부역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 물론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아빠가 ‘그런’ 사람이었기에 애도할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주미가 혜미의 꿈을 대신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혜미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는 마치 내가 장례식 직후 ‘가정을 책임질 그릇’이 되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일처럼 다른 선택이 불가능한 일이다. 주미는 그 밤바다에 함께 나가지 않은 것을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혜미의 죽음에 대해 가족 모두가 그 슬픈 마음을 서로 이야기 나누고 혜미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가족의 힘을 충분히 모을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특히 권력자(인왕산의 브이아이피) 곁에서 다른 정보를 손에 쥐었던 고모가 혜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숨기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말이다. 나 역시 해내지 못한 일이지만, 독자이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구선을 잃은 구희는 요나를 통해 구선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구희처럼 ‘언니가 남긴 두 살배기 조카, 세란이를 기를 수 있는 이모의 권리가 있었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구희는 요나를 키움으로써 삶의 굴레를 살아낸다. 요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바다로 보내고 싶은 마음과 보내지 못하겠다며 갈등하는 마음’을 넘어 요나의 엄마로 사는 기쁨을 누렸다. 요나를 기르기 위해 살았고, 살아남았다.

나 역시 주어진 삶의 굴레에 따랐고, 순리처럼 나에게도 요나처럼 세란이처럼 소중한 나의 아이를 기르는 시간이 주어졌다. 제힘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어느 하나의 행동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자라나 초등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구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결과 요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컸다. 심지어 먼 바다로 탐험을 떠났다가 돌아오고 외부의 악들로부터 구희와 할아버지를 보호하기도 한다.

가슴 속에 풀리지 않는 채로 있는 것에 인내심을 가져라. 그 질문을 잠긴 방이나 외국어로 쓰인 책처럼 여기고 그 자체로 사랑하려고 애써라.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 그 답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게 관건이다. 지금은 그 질문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먼 날에 점차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답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

릴케의 이 구절을 좋아한다. 가정에 닥친 슬픔에 충분히 애도할 수 있었다면, 또는 애도할 힘이 있는 가정이었다면 좋았겠지만 해체된 가족 속의 사람도 남은 삶을 살아간다. 언니의 소천(召天) 이후, 벌어진 많은 일의 의미를 그때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20대를 살아내기에 급급했었다.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진 외로움과 고독의 이유도 모른 채 또는 이유는 알지언정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삶에 던져져 허우적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었다. 교사로서 주어진 직무를 수행했다. 근원의 문제는 저 뒤에 던져둔 채 ‘나는 괜찮다’라는 주문을 무의식적으로 외우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아이는 어느새 내 인생에서 새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나보다 훌쩍 큰 아이가 되었다. 다행히도 나에게도 어머님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더군다나 발목을 수술해 일시적이지만 장애를 겪으며, 평생을 등이 굽은 채 ‘꼽추’로 불리며 살아온 어머님의 설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겐 늘 위대하고 마녀 같았던 어머님이지만 사실 어머니에게 세상은 어렵고 두렵고 불친절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 이상으로 어머님도 가난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근처도 가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초혼한 남편을 잃고 어린 딸과 함께 재혼해야 했을 때도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한다. 불안과 걱정이 많으셨기에 학교 마치고 돌아와 보면 자주 동네 사람들을 붙잡고 재혼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언니를 붙잡고 집 뒤쪽에서 울고 계셨다. 내가 중학생 때쯤 자살하실 생각으로 농약을 입에 머금기도 하셨다. 예수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서 먹물 같은 물로 입안의 화기를 다스리던 모습도 기억난다. 지금의 나는 심리학책, 육아서 등을 많이 읽으며 나를 이해하고 내 주변의 삶을 이해하는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데, 당시의 어머니는 그럴 수 없으셨을 테니 삶은 계속 마음속에서 악순환하고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 가족 너머 수많은 만남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살아간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간이 선하기를, 그리고 우리에게 만남이 구원이길.

《휴먼카인드》라는 책에서 작가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고 다양한 근거를 들어 주장한다. 다만 머리(전두엽_도덕성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를 다치거나 권력을 가진 자는 ‘타자에 대한 공감력’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욕망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고모 강문정 소령이 모시던 권력자 역시 고래의 지느러미 요리를 먹기 위해 선량한 다수시민들을 협박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권력을 휘두른다. 범고래가 장난으로 새끼 고래들을 괴롭히고 해치듯이 말이다.

권력자에는 교실 속 교사도 들어간다. 교사로서 교단에 서면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선으로 보게 된다. 관리자로서의 생각이 아이들과 교사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장애가 있는 새어머니 아래에서, 가난한 가정 형편을 겪고 또다시 이혼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며 교사가 되었음에 ‘내가 이해하지 못할 학생은 없다.’라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또 학교 교육을 통해 직업을 성취했기에 내 교실 속 아이들에게도 과거의 나처럼 ‘교사를 의지하고’, ‘교사를 따르기를’ 당연하게 바랐다. 아이들이 바르게 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열정은 아이들에게 가서 닿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속에 마음조차 감추고 살아서인지 아이들의 서툰 감정들은 교사인 나를 공격했다. 아이들의 예의 없는 언행에 똑같이 대응한다면 아동학대 교사가 될 것 같았다. 나의 교육 활동은 위축되어 갔다. 더는 존경 받지 못하는 교사로서 교단에 서 있기가 너무 어려웠다. 작은 권력자로서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수업 시간은 늘 사고만 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졌다.

6개월 이상의 휴직 기간에 걷고 또 걸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엔 뇌 발달 이론상 ‘감정의 뇌’만 발달하고 ‘이성의 뇌’, ‘도덕성의 뇌’가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을 원망했었다. 지금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행동을 ‘문제 행동’이 아닌 ‘낯선 행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등 교육공무원, 관리자로서 교사가 아닌 ‘아이이기에 부족함을 지닌 것은 당연하고 잘하는 부분을 격려해서 크게 키워주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만큼 이 답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의 토대를 마련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나는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치며 교육을 통해 가족이 줄 수 없었던 지혜와 세상을 보는 눈을 받았다. 상담사님, 책 속의 선인들, 남편, 내 아이를 통해 내 가족이 주지 못했던 따스함과 존중을 받을 수 있었다. 주미도 요나를 만남으로써 삶을 구원받는다. 다시는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부르는 것 이상으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잘하는 것과 즐기는 것이 다르듯이, 애린 언니 생각에 ‘다 가진’ 주미가 ‘모든 것을 다 가져서 지루한’ 주미가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을 요나 덕분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요나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에도 가고 그곳에서 율리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의 다른 한편도 이해하며 살아간다. 주미의 세상이 넓어져 간다.

삶은 이어진다. 감히 내가 만나고 만났던 사람들의 총체가 나라고 얘기해볼 수도 있다.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내 곁의 소중한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것이 내 몸이 조금 힘든 일일지라도. 일을 사람 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말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어찌 보면 가난으로 인해, 삶을 잘 살고 싶은 내 욕심으로 인한 불안에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고 살아왔었다. 그 덕에 지금 멈추어 서 있나 보다 한다. 이렇게 멈추어 서니 비로소 보인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내 교실 속 아이들의 마음, 자식을 잃고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물론 22학년도가 끝났기에, 이혼이 성립되었기에 우리의 교차로는 끝나버렸지만, 아직 내 교차로에는 많은 사람이 오간다. 나는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 새롭게 만날 학생들과 내 아이, 내 남편, 내 친구들, 사회와 지구의 생명에게. 쇠파이프로 때려 물범을 잡는 밀렵꾼을 혼내주는 요나처럼은 못 하겠지만, 교실 속 아이들에게 환경과 함께 사는 삶을 가르치고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기업과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를 지지하려고 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거듭거듭 흙의 은혜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려고 한다. 물에 대해서, 따뜻한 햇볕에 대해서, 그리고 공기에 고마워하며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자연의 은덕으로 숨을 쉬며 살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 나가며

언젠가 나 역시 바다 아래 바다로 내려가리라 생각한다. 생명이기에 주어진 수명에는 끝이 있음에 감사한다. 플라스틱도 500년 후에는 꼭 썩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치고는 너무 긴 시간이기에 썩기 전에 지구를 뒤덮을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다수의 자리를 차지했기에 지구를 남용하고 파괴하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주고 있는데 인간은 자꾸만 그것을 돈으로 바꾸고 지옥으로 가는 바벨탑을 쌓고 있다. 함께 경계해야 할 일이다.

책 속에 같이 이야기되는 노래를 찾아 듣는 즐거움을 누렸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우리의 직계 조상 호모 사피엔스의 남다른 능력이 ‘대화’, ‘이야기’였다고 한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우리의 미래를 밝게 이끌어 줄 수 있다. 「검푸른 고래 요나」는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가 되어주고 있다.

또한, 나는 요나를 만나면서 내 안의 이야기 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다시금 꺼낼 좋은 기회를 얻었다. 나의 만남의 기쁨이 또 다른 누군가의 기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의 지인들에게, 소셜 미디어에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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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문학관 | 2023.12.01 | 추천 0 | 조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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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전북 20231115]2023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최명희청년문학상 시상
최명희문학관 | 2023.11.30 | 추천 0 | 조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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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전북닷컴 20231115]2023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최명희청년문학상 시상
최명희문학관 | 2023.11.30 | 추천 0 | 조회 129
최명희문학관 2023.11.30 0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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