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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JB포스트  20230527][제6회혼불의메아리]우수상(3): 박상섭의 ‘경계 밖의 존재를 위해’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5-28 16:05
조회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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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경계 밖의 존재를 위해

글쓴이: 박상섭(42·전북 군산시)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아이돌 가수가 세상을 떠난 얼마 후 나는 기자 직함을 내려놓았다. 유명 아이돌이 목숨을 끊은 뉴스는 사건 기사로 분류되어 당시 사회부 소속이던 내가 발행하게 되었는데 그때 출고한 기사에 달린 댓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해당 가수는 평소 온라인상에서 숱한 성희롱을 당했는데 그녀의 부고를 전하는 기사에조차 모욕적인 댓글이 수없이 달려 있었다. 일방향적 정보 전달을 지양하고 양방향의 소통을 지향하며 마련된 댓글 창이 혐오의 장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조롱과 모욕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 일이 퇴사에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서 천천히 곪아가던 염증을 키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댓글 문화만을 탓할 수도 없었다. 기사의 조회 수가 많을수록 더 높은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언론은 선정성 경쟁에 빠져 있었고 기사가 혐오의 확대 재생산에 판을 깔아주는 양상이 지속됐다. 비단 연예 뉴스에서만이 아니었다. 어떠한 현안에서든 혐오와 배제가 들끓었다. 익명의 얼굴들이 어디서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닌 이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공격을 퍼부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 것은 소설 「검푸른 고래 요나」에 등장하는 아이돌 가수 주미의 인터뷰 기사에 ‘빨갱이년’이라는 댓글이 달린 장면을 마주했을 때였다. 거친 발언을 여과 없이 전하는 대목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하면 덜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실제 악성 댓글 수위를 떠올리니 이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소설은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던 소녀 주미와 보름달이 뜨면 고래로 변하는 소년 요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상적 요소가 가득하지만,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정서와 문제의식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사고로 죽은 동생의 꿈을 대신해 가수가 된 주미를 둘러싼 사람들의 입방아는 열애 의혹 등의 가십성 루머에 그치지 않았다. 가족의 내밀한 사생활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댓글이 남긴 상처에 어린 주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헤아려보게 된다. 지면을 가득 채운 주미의 인터뷰 기사가 포털 뉴스 메인에 올라오고 독자들이 이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따라붙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댓글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구조. 특정인에 대한 무차별적 신상털이와 근거 없는 모함, 모욕적 발언이 거리낌 없이 이어지고 그런 댓글이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아 베스트댓글에 오르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마주해 온 현실이다. 인기를 얻은 만큼의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대중의 입에 물려줄 먹잇감으로 선택되어 숱한 악성 댓글의 표적이 된 주미가 사고로 다리를 다쳐 연예계를 떠나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몸과 마음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깊은 상처가 새겨진 후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주미가 평범한 학생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던 과거와 달리 누구와도 진심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런 주미 앞에 나타난 요나 역시 어떤 친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아이였다. 고래면서 인간이지만 고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바다도 땅도 집이면서 바다도 땅도 내 집이 아닌 고래인간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믿고 마음을 닫은 채 살아왔다. 그런 요나가 음악을 매개로 주미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두 개의 고립된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인다.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 온 주미와 요나가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둘 사이에 음악 외에도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경계선 밖에 존재했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이쪽과 저쪽의 경계 사이를 끊임없이 부유하며 희미한 정체성 속에 방황했다. 주미와 요나는 인간성을 상실한 배금주의자들의 탐욕에 고통받은 경험 역시 공유하고 있었다. 주미는 자신을 철저히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소속사 사장 아래에서 끊임없이 상품성을 증명해야 했고, 요나는 값비싼 고래 고기를 노리는 이들에게 쫓기며 불안과 싸워야 했다.

주위의 시기와 견제, 악의적 소문에 시달린 아픔도 둘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다. 같은 그룹 멤버들에게 견제받고 악플에 괴로워하던 주미와,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이자 시험지를 훔쳤다는 악의적 소문과 미혼모인 엄마가 교사를 꼬드겼다는 허위 사실에 시달리며 따돌림을 당하던 요나는 또래 아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었다. 주미는 유명 아이돌과 평범한 학생, 요나는 고래와 인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어떤 무리에도 편입되지 못했다. 편견과 혐오, 배제의 대상이었던 두 아이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이 작품의 백미다.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순간에는 경계선 밖에 놓인다. 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는 주변부를 맴돌거나 아예 선 밖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어느 쪽인지를 묻는 말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 없이 마주한다. 그 질문은 정치적 성향에서부터 경제적 지위,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너의 정체와 성향과 소속을 밝히라는, 사상검증에 비견될만한 집요하고 폭력적이며 경직된 요구는 개인을 주류와 비주류로, 내 편과 네 편으로 분류하고 이분법적으로 규정한다. 이쪽이면서 저쪽이고 저쪽이었다가 이쪽일 수 있는 유연성과 가변성, 다양성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리 짓기와 선 긋기 속에 개별성은 존중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는 양쪽 모두에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내가 속한 집단 밖의 존재에게 우리가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작품은 인간과 고래인간의 대립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설은 뒤틀린 우월감에 젖은 인간이 다른 대상을 손쉽게 평가하며 자신의 편익을 위한 불순한 의도로 이용하고 합리화하는 행태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라 규정한 영역의 테두리를 벗어난 존재에게 거리낌 없이 비인간적 폭력을 가하는 세태에 우리가 그토록 강조해 온 인간성이란 과연 무엇이며, 인간이 다른 존재를 짓밟으며 스스로 인간성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이 작품은 묻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상대를 만날 때 우리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고래와 인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요나는 무리에서 배척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특별한 능력과 정체를 숨기지만 그럼에도 따돌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비밀을 지켜주고 한결같은 믿음을 주는 주미를 통해 요나는 상대와 진솔하게 소통하고 깊이 있게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다. 언젠가 하얀 혹등고래가 요나에게 전해 준 이야기-네가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고래를 위해 싸우듯 그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요나는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이 주미라고, 주미의 손이 고래피부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줬을 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요나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주미를 만나 유대감과 소속감을 배우고 한층 단단하고 성숙한 고래인간으로 거듭난다. 고래와 인간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요나가 정체성을 자각하고 자신만의 사명을 찾아가는 여정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긴다. 생태계에서 포식자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유일한 피식자 혹등고래의 성정을 닮아 천성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품성을 타고난 요나는 해양 생태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래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바다로 떠난다. 고래인간으로 변한 요나는 커진 몸집과 강해진 힘으로, 다른 고래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물을 모조리 끊어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조한다. 고래이면서 인간이고, 고래가 아니면서 인간이 아닌 요나는 그 과정에서 바다와 땅의 두 세계를 자신만의 습성대로 정렬시키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고래를 대하듯 인간을 대하고, 인간을 대하듯 고래를 대하며, 땅의 습성으로 바다를 살아가고, 바다의 습성으로 땅을 살아가는 고래인간이 된 요나는 더 이상 이쪽과 저쪽 사이에 표류하지 않고 확고한 개별성을 자각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요나가 진정한 자아를 되찾는 순간이다.

「검푸른 고래 요나」는 판타지적 요소가 작품 전체에 흩뿌려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는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가볍지 않다. 잉태와 탄생부터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요나의 이야기와 아이돌 가수 출신 주미의 사연이 오묘하게 뒤섞여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환적 분위기가 작품 내내 이어지고, 불법 포경과 강제노역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민간인 사찰과 스토킹, 악성 댓글 등 최근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발생했거나 발생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환상적 소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실적 문제를 드러내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전한다.

작품에 묘사된 고래 생태계는 인간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종 고래에게도 이유 없이 공격성을 드러내며 잔인한 살육을 일삼는 최상위 포식자 범고래와 그에 대항해 위험에 처한 다른 동물들을 보호하며 바다의 수호자로 불리는 혹등고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연상케 한다. 무리를 이루어 다른 고래를 사냥하면서 연약한 새끼를 고통스럽게 죽이는 범고래의 습성을 지닌 사람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이들은 합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괴롭히고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짓밟는다. 반면 무리의 표적이 된 고래들을 구조하고 본인보다 몸집이 큰 범고래 수십 마리와 싸우면서 특히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적극적으로 맞서는 요나처럼 의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강한 자 앞에 약하고 약한 자 앞에 강한 비굴한 면모를 보이며 부당하게 타인을 짓밟고 괴롭히는 데서 존재감을 찾는 부류가 득세하는 현 세태에, 현실의 모순에 부딪히고 부조리에 저항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요나와 같은 고결한 성정을 지닌 이들이 어둡고 혼탁한 사회를 비추는 빛이 되어 주기에 우리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작가는 혹등고래의 모습을 한 요나가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우리가 직면한 어두운 현실인 환경 파괴의 심각성과 인간의 이기심을 세밀히 짚어낸다. 한반도 바다에 서식하는 대표적 수염고래 중 하나였지만 일제의 잔재인 포경 사업으로 남획되어 멸종된 혹등고래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후로도 불법 포경과 유통이 이어지는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작가는 인간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물질이 용도 폐기 된 후 해양생물의 체내에 유입되어 생명을 위협하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과정을 소설에 담아냈다. 미세플라스틱이 누적되고 중금속에 오염된 고기를 섭취한 인간이 각종 질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의 편익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각종 환경 문제가 다시 인간을 위협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며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뒤틀린 욕망과 이기심으로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메시지가 작품 너머로 전해진다.

우정과 사랑, 좌절과 성장, 환경과 역사 등 많은 소재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관계의 소중함이다. 요나와 주미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잃고 이른 나이에 상실을 배운다. 사고로 동생을 잃은 주미는 동생의 꿈을 대신해 아이돌로 활동하다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가수의 삶마저 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 요나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혹등고래 친구가 그물에 걸려 죽고, 마음을 나누고 긴밀히 소통해 온 하얀 혹등고래가 범고래 무리의 공격을 받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깊은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요나는 오랜 시간 커다란 고통에 짓눌렸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상실을 견뎌내야 했던 주미와 요나는 서로를 만나 진심으로 소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다 성숙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가슴 아픈 상실 속에서도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고 절망 속에서 빛을 찾는 법을 배운다.

이들의 발걸음은 더 큰 세상으로 향한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관계에서 멀어졌던 주미와 요나는 한층 확고해진 정체성과 서로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동력으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타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명을 다하고 때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상대를 돕는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의 동심원이 점점 확장되고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면서 주미와 요나는 사랑과 희생, 용기의 가치를 배운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순수하고 진실한 관계였다. 그 관계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을 긍정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캐릭터에서 커다란 울림이 전해지는 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주미이고 요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본의 아니게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세상의 변두리로, 경계선 밖으로 밀려날 때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고 소외감에 휩싸일 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마저 잃기 쉽다. 무리에 속해 있어도 무리의 색채에 맞춰 자신을 물들이며 자신만의 빛을 잃거나 경계선 너머의 상대와는 소통을 기회를 원천 차단한 채 벽을 쌓고 살아가기도 한다.

「검푸른 고래 요나」는 이쪽과 저쪽, 경계의 안과 밖을 아우르는 시각으로 우리가 맺고 끊는 모든 관계를 조망한다. 요나가 그랬듯 세상과 소통하면서도 자신만의 개별적 정체성을 발견하고 지켜나갈 때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사회를 향한 긍정적 기여 또한 가능해질 것이다. 저마다 고유의 빛을 지켜가면서 상대가 지닌 빛을 존중하며 진실하게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건강한 관계의 양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이 그리는 관계의 이상적 시작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주미와 요나가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데 필요한 것은 대단한 언어나 논리, 거창한 형식이 아니다. 사람이 고래 울음소리를 경이로워하듯 고래도 사람의 노랫소리를 황홀하게 들으니 고래들이 주미의 목소리를 들으면 분명 좋아할 거라는 요나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진심이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주파수로 노래하더라도, 상대를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려 하기보다 존중과 포용의 자세로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편견과 배제, 혐오를 넘어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이 열릴 것이다.

작품 말미에 주미가 러시아로 여행을 떠나 만나게 된 할머니 율리아의 이야기는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낸다. 러시아로 강제 징용된 남편을 찾아 사할린에 왔던 율리아의 어머니는 남편이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후 소련 중앙당 간부의 집에서 살다가 딸 율리아를 낳는다. 딸이 소련인도 한인도 아닌 취급을 받을 것이 두려웠던 그녀는 딸을 모스코바로 보내 권력가인 아버지가 돌보게 하고 자신은 홀로 사할린에 남아 오랫동안 딸 앞에 나타나지 않고 외로이 삶을 마감한다. 소련과 편을 먹었다고 낙인찍힌 율리아의 어머니는 한인 사회에 융화될 수 없었고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자녀만큼은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바랐던 그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지독한 외로움과 깊은 향수를 홀로 견디다 눈을 감았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경계선 밖의 존재를 배척하며 어떠한 소통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소설은 말한다. 당신도 언젠가 경계 밖으로 내몰릴 때가 있지 않느냐고. 타인에게 편견을 덧씌워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고 무리에서 몰아내는 것이 인간답고 정당한 일이냐고. 주미와 요나, 율리아의 어머니가 겪었던 설움과 아픔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많은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가변적 상황 속에 때로 관계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가장자리로 밀려나기도 한다. 언제든 경계 밖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우리는 타인을 소외시키기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소통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는 있다. 편견과 적대심을 걷어낸 자리에 소통과 존중이 깃들 때 서로 다른 존재의 평화로운 공존과 유대가 싹틀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신비한 이야기를 머금은 깊은 바다에서 검푸른 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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