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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포스트 20230527][제6회혼불의메아리]우수상(4): 조남숙의 ‘고래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5-28 16:03
조회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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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래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

글쓴이: 조남숙(62·대전광역시 서구)

이 작품은 고래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고래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한 고래인간. 고래가 아니기도 하고 인간이 아니기도 한 인간고래. 경계선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어리둥절한 일이지만, 경계선을 수시로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할까, 뭐 그 비슷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일이 이루어질 가망이나 여지 같은 것. 그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지 않을 때,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며 당황한다. 이처럼,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로 다가온 작품, 『검푸른 고래 요나』는 고래의 삶과 인간의 삶을 넘나드는 생명체를 통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고래가 되었다가 인간이 되는 혼종생명체는 당최 인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분명하지 않은 모호함이 신기루 같은 현상이 되어 세상 도처에서 물음과 느낌의 신호를 보낸다.

고래인간인 최요나와 요나의 친구 미주. 상상임신으로 요나를 낳은 엄마 최구희. 마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떠올린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세상을 구원하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와 성모와 막달라 마리아. 예수는 신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와서 좋은 말과 행적을 남기며 사람들 마음에 사랑의 정의를 싹트게 한다. 힘들고 어려운 자를 돕고 악한 자에게 무섬증을 알게 하는 귀인이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너무나도 인간을 사랑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획. 그렇다면 요나는 누구의 계획으로 고래인간으로 나타났을까. 그 목적은 무엇일까.

고래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어떤 신묘한 힘으로 태어난 고래인간이라면, 고래가 사는 바다를, 인간이 사는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요나는 인간이기도 하고 고래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예수가 신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선이며 악이고 인간이며 동물이고 웃으며 동시에 우는 생명체.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절레절레 가로 짓은 마음을 소유한 생명체. 혹시 고래인간, 요나는 지구의 생명체로서 다양성을 지닌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공기놀이나 줄넘기 놀이할 때, 편을 나누기 애매한 사람은 ‘깍두기’가 되었다. 양편으로 나눌 때, 홀로 남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다. 그때, 아주 잘하거나 아주 못하는 사람이 깍두기가 된다.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역할이 주어지는 관계. 못하는 사람뿐 아니라 잘하는 사람도 깍두기가 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잘하는 사람이 이길 확률이 뻔한 놀이는 재미없다는 것을 놀이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잘하는 사람의 능력을 골고루 나누려는 마음이 놀이의 출발이었지 싶다. 못하는 사람도 배제하지 않았던 순연한 마음. 손이 불편했던 동네 언니나 나이 어린 옆집 동생은 이편저편도 아닌 중간에서 최선을 다했고 놀이는 즐거웠다.

비슷하지 않거나 다르다고 제외하지 않았던,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했던 나의 어린 날의 경험은 함께하는 삶의 출발이다. 규칙이란, 왠지, 따라야 할 것 같은 약속이기에, 그 규칙이 무례하다면, 무례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그러나 다르다고 구별 짓는 일 따위에 멍하게 동참하지 않았던 지극히 순수했던 아이들의 경쟁. 공정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함께 하는 것만으로 놀이의 정수를 즐겼던 지극히 인간적인 놀이.

포스트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시대. 유인원과 사람이 구별되던 시절에서부터 무엇으로 인간을 규정하느냐를 두고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호모사피엔스가 도달하게 되는 인간의 세계란 어떤 곳일까.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멸종했고 귀족 지위와 재산을 지닌 남성만이 인간이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인간과 동물 그 중간적 존재에 불과했었던 시대도 있었다.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 보편적인 가치를 갖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책『동물해방』을 쓴 피터 싱어는, 그 ‘범위’ 안에 동물이 들어온다고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 현상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의견이다. 이처럼, 어디까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고 있다.

기계인간, 즉,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이 있을까. 인간 몸에 장착된 기계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보청기나 렌즈, 인공관절이나 인공 신장 등등. 갈수록 세심하게 인간 생명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계 발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이 없을 듯하다. 더구나 AI의 등장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모든 현상은 관계의 지도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의 깊은 축은 생명의 논리, 인간다움의 가치에 의해 달라지고 있다. 로봇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로봇에게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의식이나 도덕적 감수성이 없는데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모인다.

인간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확대되고 있는 인간의 영역은 점점 자라나는 도덕적 관념의 영역과 생명 존중의 개념이 궤를 함께한다. 개와 고양이도 인간과 함께 살고 있지만,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길고양이를 죽여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전히 개를 식용으로 잡기도 한다. 고래 고기를 파는 식당이 존재하는 지역이 있고 그 존재가 그 지역 문화 특성이 되기도 하니….

주인공, 요나는 고래가 되어 고래의 삶을 살고 인간이 되어 인간의 삶을 산다. 고래의 삶이나 인간의 삶을 경험하게 되는 요나의 이야기는 관계와 힘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명체 이야기다. 바다 세계의 치열한 먹이사슬 관계에서 범고래는 혹등고래의 생명권을 집단으로 무참하게 해제한다. 혹등고래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어냄으로써 먹잇감으로 만든다. 피를 토하는 범고래의 잔인성은 바다 생명에게 상당히 위협적이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생과 사의 자연스러운 이치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깊은 바다에서도 일어난다. 더구나 인간의 잔혹한 욕망이 한몫한다면…. 멈추지 않는 불법 포경행위나 바다에 버리는 쓰레기 등등.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일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자꾸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만든 인간의 범주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확대된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타오르는 불꽃이 화마가 되는 상황처럼 주변으로 번질 때, 인간은 후회한다. 후회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도모하지만,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을 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새로운 계획조차도 인간 삶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라면 멈추어야 하지만, 그 사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할까. 힘과 권력의 구도와 한 길 물속보다 더 깊고 어두운 사람의 마음.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그림자를 만들듯, 잘못된 규칙이 많은 사람을 어둠의 그림자로 만든다.

- 요나는 맹수로 변하는 특이체질자야. (p336)

극악무도한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인간들. 그 아래에 있는 인간은 악마가 된다. 잘못된 규칙이라 해도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의 체계, 악의 평범성은 그렇게 형성된다. 악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는 이유다. 요나를 생포하려는 사람들은 주미의 이모와 아버지와 정치세력의 수호자들이다. 극비사항을 다루는 사람들.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 경찰의 개입이나 법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 요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도망 다녀야 한다. 요나는 다를 뿐인데, 그 다름 때문에 변고를 겪는다.

인간은 인간을 속이고, 인간을 폭행(성폭행)하고, 인간을 개나 돼지 취급을 하고, 인간의 노동을 착취하고, 인간을 고문하고, 인간을 죽이는 사람들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증명서, 각자의 주민등록증이 있다. 그 외에도 인간을 증명할 수 있는 증서는 다양하다. 공무원증, 학생증, 자격증, 여권 등등. 인간 증명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인간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인간의 범주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요나와 주미를 괴롭혔던 주변 인물처럼, 괴물이라 부르기에 민망해서 만들어 낸 증명서라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 존재할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이 괴물이거나.

특이체질의 요나를 인간으로 규정해야 하나, 고래의 특성을 가진 요나를 고래로 규정해야 하나, 이 애매모호한 특성을 명확하게 하려고 괴물이 된다. 그것을 분석하고 연구하기 위해 인간의 생명권과 존중을 함부로 파헤친다. 어떤 폭력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특이한 인간의, 아니 특이한 고래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한다. 호기심은 살인도 할 수 있는 궁금증이 된다. 구별 짓는 마음에서 시작된 폭력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위협받고 공포심으로 불안해하는 생명체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궁금증이 공격의 뿌리가 된다면, 궁금증이 올가미가 된다면, 비극의 시간은 꼭 다가온다. 희망이 절망이 되는, 열렸던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는 문이 되는, 선명한 시각이 갈쌍갈쌍한 시선이 되는 잘못된 논리의 끝은 죽음이다. 죽이고 죽이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힘만이 가능할 뿐, 인간에게 내재한 생명의 가치는 허물어진다. 인간이 괴물이 되는 순간이다. 괴물인간이 아니라 괴물.

요나는 고래가 되어 바다로 가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게 희생되는 바다 생명체를 구할 수 있다. 요나를 바다로 보내기 위해 가족은 고군분투한다. 괴물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비밀이어야 한다. 범고래로 희생되는 혹등고래와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 범고래는 마구잡이식 사냥으로 바다의 무법자다.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요나는 범고래와 투쟁해야 한다. 예수는 바다를 걸었지만, 요나는 바다에 들어간다. 신이면서 인간이었던 예수처럼, 고래면서 인간인 요나는 뭇매를 맞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한다면 고래인간으로 태어난 의미가 없다. 죽음을 각오한 고래인간, 요나는 고래의 삶과 인간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 우리나라는 고래를 잡지 않았다. 그러니 고래 고기를 먹지 않았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고래를 잡고 활용한 일이 전혀 없었다. 흑산도에는 고래고기를 거부하는 집성촌도 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포경사업을 벌이고 품삯으로 고래고기를 주었기에 할 수 없이 먹기는 했지만….- p181

고래잡이는 불법이기에 고래고기를 먹는 것도 불법이다. 그러나 일부러 잡은 고래가 아닌, 그냥 죽은 고래는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먹지 않는다. 중금속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죽어서 떠내려오는 고래는 쓰레기장으로 간다. 해변에 떠밀려 온 고래의 내장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서 죽으러 온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쓰레기 같은 삶을 대변한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와 인간이 방출한 중금속으로 바다는 오염되었다. 쓰레기를 만드는 존재가 인간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왕에게 진상하려고 일회성으로 고래를 잡기는 했다는 것. 왕이라는 절대 권력에는 예외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 권력 관계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힘이 있는 포식자에 의해 요나는 피식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요나를 찾는 이들에게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특이체질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보내기 위해 요나를 생포하려 방탄복을 입고 실탄을 쏜다.

- 브이아이피가 먹을 몫을 떼어주면 나머지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 보낼 거야. (p346)

언제나 예외는 윗선이다.

아이돌이었던 요나의 친구 주미. 특별함을 강조하는 연예인의 삶. 외모도 능력이라는 말이 경전이 된 연예인의 특성. 인간이라면 가능하지 않을 외모를 찾고 만들고 다듬는다.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로봇과 견주어도 탄성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예쁘고 날씬한 인간에게 환호하는 상황은 이 시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로봇과 다르지 않은 인간에게 환호는 사회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그 너머의 중요한 것, 인간이기에 씀벅거리며 보게 되는 인간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일까.

고래인간인 요나와 고래인간 친구인 주미는 인간이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인간이 품고 살아야 하는 희로애락에 대해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어쩌면 지루한 말이 될지도 모를 생로병사에 관한 이야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고래이기도 하지만 인간이기도 한 요나처럼, 인형처럼 보이지만 인간인 주미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인간다움을 간직한 인간이면서 고래다움을 간직한 고래이기에 요나는 고래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서로 있는 그대로 기다려 주는 존재. 있는 그대로 마주 보는 존재.

지난날, 공기놀이를 잘 못 하는 친구를 놀이에 끼워주었던 아이들은 놀이를 함께 하는 인간이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나눌 줄 아는 인간이다. 있는 그대로 있어 주어서 좋은 사람들. 인간의 요건을 규정짓고, 구별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어떤 감각 지도를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성스럽고 감상적인, 아름답고 경쾌한, 슬프고 애달픈, 조용하지만 원대한 희망의 읊조림이 얼크러져 있는 삶의 지도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들 중 몇 명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인간이 죽으면 새가 되고 별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이 달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바다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인간이 고래로 태어나고 고래가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하는 윤회사상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주의 이치는 오묘한 것.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지 않을까. 갑자기 벌레로 변신하는 일이 소설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

인간다운 삶은 예술이다. 앞으로 인간의 정의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을 잃은 인간은 인간다움을 잃는 것이다. 고래인간과 인간고래의 시너지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새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권력에 의해 형성된 관계의 먹이사슬의 조합보다 더 이기적이며 이타적인 집합체의 주체적인 DNA, 악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간이라면 이미 괴물일 것이고 괴물이기를 거부한다면 이미 인간일 것이다.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고래들의 노래 / 다이안 샐든 글, 개리 블라이드 그림 / 비룡소) 가 생각난다. 고래를 소통의 대상으로 보는 할머니와 먹잇감으로 보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손녀는 고래를 상상한다. 고래를 본 적이 없는 손녀는 바닷가에서 고래를 기다린다. 드디어 나타난 고래와 그들의 노래. 고래의 움직임은 춤이 되고 고래 소리는 노래가 된다. 감동이다. 감동은 침묵의 시간을 허락한다. 동물을 기계로 보았던, 동물의 양심이나 영혼을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물음이고 동물이 실제로 아프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진 자들도 말을 삼킬 수밖에 없는 바다의 풍경. 손녀의 감동은 타자로서 생명체의 인격적 접근이 점점 넓어지면서 인간의 사고가 확장되는 의식의 등불이다.

누구에게나 인간이 버리지 못하는 불안과 상실, 어찌할 수 없는 부조리, 보이지 않는 배면의 우울을 직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루한 인간의 삶이 더욱 비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고래 고기와 뼈와 살에서 나오는 기름 때문에 고래를 잡는 것도 인간이고 고래의 춤이 바다의 언어가 되고 고래의 움직임이 노래로 들리는 것도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포스트휴먼의 염려와 걱정이다.

이 책은 질문한다. 앞으로 인간은 무엇이 달라질까. 인간의 정의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작가는 현대가 품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대중문화의 허와 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세밀한 기관의 존재, 환경오염이 부메랑이 되어 빚어지는 인간의 명과 암. 상상과 허구로 힘차게 서사를 이어간 작가의 필력이 질문의 힘이며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힘이다. 그 힘은 고래 이야기와 인간 이야기의 공통점을 탐구하게 하며 고래인간에 대한 애정이 화수분처럼 솟아나게 한다. 그것은 변치 않는, 생득적으로 감지되는 사랑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예수를 사랑했던 성모처럼, 요나를 사랑하는 요나의 엄마처럼, 가족과 친구와 지인과 존경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을 주고받는 이들이다. 지극히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들.

요나는 보름달이 뜨면, 고래가 되어 깊은 바다로 들어간다. 다시 인간이 되어 바다에서 돌아올 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고래인간 요나, 인간고래 요나는 특이체질을 지닌 자연인이다. 바다처럼 넓고 풍성한 사랑을 소유한 고래이며 인간이다. 그 사랑을 마음껏 나누는 요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은 궁금함이 걱정으로, 걱정이 불안으로 번질 무렵, 이런저런 생각이 빙글빙글 돌면서 연락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 마음이 아득해서 안부를 묻는다. 전화 이상의 통신 수단이 많은 시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면 알 수 있는 매체가 많이 있지만, 민얼굴을 마주 보며 행복한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큼, 좋은 소식이 있을까. 요나는 그렇게 바다에서 돌아오고 바다로 다시 간다. 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게 한다. 그리고 돌아온다.

어린 시절 공기놀이에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깍두기로 끼워주었던 친구들. 세상에서 편을 가른다는 것이, 이기는 싸움을 한다는 것이, 승부를 가르는 일원이 된다는 것이, 특이한 것을 찾는 것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과연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묻는다. 죽으면 바다 아래 바다로 가는 삶의 여정. 그곳에 가면 어떤 증명서를 가지고 무엇으로 살았는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의 여정이 죽어서 어울렁더울렁 어울려 있을 것만 같은 곳의 풍경을 만든다. 그곳이 높은 하늘이기도 하고 깊은 바다이기도 하고 허공 어디쯤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 모습은 거짓 없이 투명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개입 영역이 확대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은 인간의 정의로 이어진다. 아마도, 인간은 기술의 도움으로 다양한 생명체와 넓은 관계를 맺으며 존재 방식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과거보다 편리할 수 있겠지만,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살아온 인간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고래 요나의 이야기는 상상의 인물이지만, 새로운 기술 진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를 추상해야 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드는 포스트휴머니즘의 문제의식으로 지혜를 나눌 때이기에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요나와 그 주위의 인물들은 새로움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보내는 미래에 대한 안부는 삶을 지나는 무수한 사고와 감성의 변화를 공유하는 일이다. 이미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예고가 고래인간이다. 이 작품의 고래인간은 인간 삶의 방식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포스트휴먼의 미래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 작품이 질문하는 것,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능력은 최후까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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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전북닷컴 20231115]2023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최명희청년문학상 시상
최명희문학관 | 2023.11.30 | 추천 0 | 조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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