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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포스트  20230527][제6회혼불의메아리]우수상(1): 김세나의 ‘경계선에서 피어나는 오로라를 마주하기’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5-28 16:08
조회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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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경계선에서 피어나는 오로라를 마주하기

글쓴이: 김세나(38·전북 군산시)

1. 경계에 선 사람들

요즘 ‘고래’ 이미지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민물에서도 살았던 양쯔강 돌고래처럼 소멸하지 않을 존재로 친구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자 많은 대중은 각자의 고래를 가슴 속에 품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래된 소설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영국의 부커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에 다시금 이야기와 입담의 힘이 고래의 등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서사문학에 대한 향수가 상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더 웨일>의 주인공인 ‘브렌든 프레이저’를 떠올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끝내 그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 한 마리 고래가 되어 저 깊은 바다와 같은 심연에서 물 밖으로 솟구쳐 일어서는 자신을 증명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고래는 사람들에게 신화적이고도 숭고한 힘을 지닌 동물로 늘 우리의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래가 갖는 이미지를 포용하면서도 또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김명주의 「검푸른 고래 요나」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그는 모두가 공감하는 고래의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전제하면서 누구도 알고 싶지 않은 고래의 현실과 속성에 대해서까지 파헤치는 집요한 직조술을 보여준다. 이때 작가는 현실 세계에서 고래가 인간으로부터 겪는 고난과 멸종 위험의 사회 고발적 요소만을 덧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문제가 있는 사회 현실에 주목하면서도 영겁회귀처럼 반복되는 과거와 단절되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을 주제로 삼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 경계에 선 사람들이 있다. 아이돌이었지만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온 주미. 고래이기도 하며 인간이기도 한 고래인간 최요나. 상상임신으로 백일 만에 아기를 낳고 미혼모의 길을 걷고 있는 구희. 명령불복종으로 소속된 군대에서 퇴출되고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할아버지. 이처럼 순탄치 않은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경계선은 넘어서야만 하는 ‘하얀’ 울타리인가? 혹은 유지되어야만 평온한 현실을 지탱해주는 ‘검은’ 울타리인가?

2. 대행자의 삶 속에서 진짜 나를 찾기

한국기원 연구생이었으며 아이돌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평범한 학생인 주미는 부지불식간에 바둑돌처럼 놓인 자신의 생의 지표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삶의 주인이 ‘나’가 아니라 ‘누군가’였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과거를 복기해보는 것이다. 검은 그림자의 남성들로부터 미행과 감시를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은 일상을 지배한 지 오래다. 차근차근 현재의 자리로, 곧 평범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오기까지 행했던 자신의 ‘선택’들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함께하며 어울리고 싶었던 주미는 그의 취미인 바둑을 배우고,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다. 그랬던 그녀가 ‘아빠를 빼닮았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좋아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이제는 후회를 넘어 저주스러운 생각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부녀 사이가 틀어진 것일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밖에서는 어린 제자와 바람이 났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대학교수이자 진보지식인으로 매체에 떠들썩하게 이름을 알리지만 실상은 무엇 하나 잃지 않으려 하는 위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였을까.

주미는 처음부터 아이돌은 하고 싶은 직업이 아니었다. 동생 혜미의 꿈과 희망을 자주 보고 접하면서 이해해 주고 응원했을 뿐 기원 연구생이 갑작스레 아이돌 생활로 생의 방향을 트는 데에는 큰 사건이 자리한다. 사고사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혜미의 환영은 주미의 일상을 헤집어놓는 악몽으로 반복된다. 기원 연구생의 생활은 자연스레 마감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경로로 아이돌로서의 새 삶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죽은 동생이 이루고 싶었던 꿈을 내가 대신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라 여기며 주미는 인터뷰에도 응하고 제 마음을 다잡는 노력을 펼친다.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도 강렬해지고 같은 소속사의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마치 상대가 수를 놓기를 기다리는 수비수처럼 방어적인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인기가 상승할수록 비례적인 현상으로 가십 대상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결국, 죽은 혜미의 꿈을 대신 이룬 것 같다는 한마디 말에, 생각지도 못한 천안함 피격 사건이 꼬리가 되어 들러붙는다.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강렬히 느낀다. 이제 나의 말과 표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입맛대로 해석하기 좋은 먹잇감이 되어 함부로 사람들의 눈과 입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내가 짊어진 대행자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벗어던지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유일하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고 의지하는 사람인 디셈 오빠와의 일탈적인 바다행에서 주미는 환영처럼 ‘사막의 끝에서 바다를 바라볼’ 희망을 그려보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바둑돌’에 지나지 않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정확히 구획된 바둑판 위에서 움직이는 바둑돌처럼 정해진 패턴대로 주미의 삶은 기획된 틀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하다. 결국, 디셈과 예측 불가한 일탈적 행동을 보여주다 보니 큰 판을 짠 ‘누군가’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목표를 위해 급작스러운 조처를 하는 과정에서 그만 주미는 다리 하나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사고 역시 정형화된 패턴 안으로 재진입시키기 위해 스스로 좌절감을 느끼고 수동적인 존재임을 자각시키기 위한 ‘누군가’의 자연스러운 의도였을지도.

이렇게 주미는 자신의 현재적 위치를 완전히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강렬히 의식할 수밖에 없는 닫힌 마음 상태에 빠져 있다. 돌이켜보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너무도 아귀가 잘 맞아떨어져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이다. 고모가 재직하는 학교에 등록절차를 밟고 부족한 수업 일수를 맞춰 제 학년에 다닐 수 있도록 큰 힘이 보태졌다는 아버지의 말에 감사함을 강요받아야 하는 부당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거대한 기획의 한 조각 퍼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대행자의 삶에서 다시 한번 진짜 나를 찾을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최요나가 말을 건넨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봐 주고’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분신처럼, 혹은 잃었던 쌍둥이를 만난 것과도 같은 설렘이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난다.

3. 낯설고 기이하지만 강한 힘을 뿜어내는 모성 신화

요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밴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쉽게 주미와 친해질 수 있었다. 누구와도 친하지 않은 그이지만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를 못 보는 성격으로 조용히 잘못된 분위기를 바로잡을 줄도 아는 친구이다. 주미는 점차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가 범상치 않은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그의 가족들 역시 내 가족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들임을 알고 깊게 매료되어 간다.

요나의 엄마이자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최구희는 지금 요나의 나이인 17살에 아기를 상상 임신하여 낳고 키워온 인물이다. 아니, 상상임신으로 실제 아기를 낳다니? 해괴하고 기이한 그녀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이는 어느새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기이한 모성 신화를 구축하고 있다는 인상을 자아낸다. 최구희의 이야기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의 어머니이자 요나의 외할머니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짧은 회상으로 등장하지만, 요나의 외할머니는 신혼 시절, 인연을 맺은 남자와 남편으로부터 동시에 구선과 구희를 한 뱃속에 품었던 인물이다. 이때 이복형제는 익히 들어왔던 가족 관계인데 이부형제는 낯설고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데 이부형제 역시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구희와 구선의 관계처럼 이란성 쌍둥이로도 태어날 수 있다. 결국 요나의 외할머니는 아이들을 낳자마자 산송장처럼 죽은 사람으로 ‘위장’되어 철저히 숨어서 살아야만 했다. 자연스레 아버지가 아이들을 키우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크고 작은 보살핌으로 자식에게 도움을 주어 헌신적인 아버지상을 구현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산죽음 상태로 살아온 외할머니의 부재 덕분에 가능하다는 판단 또한 동시적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오히려 철저히 감춰지고 사라진 존재가 되었음에도 요나의 외할머니는 부재를 통해 강력히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는 효과를 지닌다. 바로 자신의 아이들, 즉 구선과 구희의 기이한 삶과 그들의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이와 같은 이력을 지닌 최구희는 남들과는 다른 쌍둥이 형제에 대한 비밀에 자신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인 희경과 구선의 관계를 알지만 자신 역시 구선에 대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심정에 괴로워한다. 남매간의 사랑은 통념상 용인될 수 없고 죄악인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쌍둥이이기 때문에 남과 같은 사이가 아니냐는 합리화로서 사랑의 감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불행히 여객선 침몰사고로 자기만 살아남고, 두 사람을 잃게 되는데 생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물 쪽으로 더 가까이 가던 구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가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선택한 자살이라고 굳게 믿는 신념을 지니게 된다.

뜻밖에도 두 사람을 잃고 나서 구희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아이의 탄생 과정에 비의적이고도 신화적인 서사가 그림자처럼 덧씌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요나는 실제 남녀 간의 관계를 통해서 생긴 존재가 아니며 구희의 꿈을 통해서 잉태되 상징적 인물이다. 열일곱의 최구희는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고래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내 몸이 따뜻해지면서 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도 또는 소멸해버려도 좋겠다는 아득함을 느낀다. 고래의 울음소리로 몸이 따뜻해지는 경험은 임신의 상징적 장치로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부터 예수를 잉태하여 탄생에 이르는 성경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끔 만든다. 그리하여 요나를 낳는 과정 또한 예수의 탄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한 산통을 느낀 구희는 죽은 친구, 희경의 집을 찾아간다. 새끼 흰둥이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간 빈집의 툇마루에 앉아 쏟아지는 함박눈을, 하얀 강아지를 바라본다. 온 세상이 하얀 아득함 속에서 대나무밭을 쓰다듬는 바람 소리만 전해오고 저 멀리서 그토록 보고 싶던 죽은 희경의 영혼과 구선의 마지막 모습, 하얀 옷을 입은 성모님과 여섯 날개의 검은 천사를 맞이한다. 성모님이 자신의 하얀 옷을 포대기로 삼아 아기를 받아주고, 천사의 보호 아래 무사히 출산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최구희는 성모 마리아가 성령으로부터 아이를 잉태받았던 것처럼 꿈을 통해서 고래인간을 잉태하고 아기 역시 성모님의 비호를 받으며 자연스레 예수와 등가적 쌍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고래인간의 탄생 과정에서 나타난 환상적 비의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부형제의 쌍둥이 존재와 미성년의 나이에 아이를 출생하고 홀로 키운다는 소재는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이지만 일반적 통념과 가치 기준에 맞서는 일이며 쉽게 용해되지 않는 우화적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실제로 현존하면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소수의 처지에 있으므로 다수로부터 핍박받게 되는 무수한 사실들을 너무도 쉽게 지나쳐버린다. 이에 작가는 고래인간의 탄생이라는 신화적이고도 환상적인 설정을 통해 하나의 강력한 모성 신화의 축을 세우고 있다. 고래인간인 요나를 키우는 일은 세상 전체와 맞서는 일이다. 구희는 홀로 이 과정을 겪어내면서 인간의 보편적 삶과 이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본능적 동물의 삶을 배워야 하는 아들의 성장을 지켜본다. 지닌 능력을 완전하고 바른 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의 곁을 자신의 어머니가 그래왔던 것처럼, 묵묵히 지켜낸다.

4. 하얀 울타리 혹은 검은 울타리

어린 요나는 자신이 지닌 고래인간의 신비한 능력을 감추고 평범한 보통 아이처럼 성장해나간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고래인 것처럼 보이지만 본성이 드러내는 때마다 고래에 더 가까운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이 지닌 신비한 능력을 감추지 못하고 오답까지 그대로 알아맞히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왕따로 마음고생을 했을 때도 요나는 고래의 몸이 되어 억누르지 못한 본성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다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정신적 지주인 하얀 혹등고래가 크게 다쳐서 교신이 끊겼을 때도 한동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래의 습성과 인간의 습성 양쪽 모두를 배워야 하는 요나를 위해 가족은 바다와 육지 생활의 병행이라는 방안을 내놓고 점차 적응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양한 고래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성장하던 중 요나는 자신이 ‘혹등고래’임을 깨닫는다. 누구보다도 큰 날개와 몸, 생태계의 포식자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유일한 피식자인 혹등고래는 인간의 모습일 때의 요나와 꼭 같은 모습이다.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하면서도 무리가 한 아이에게 괴롭힘을 보일 때 저돌적으로 나서서 적극 평화를 불러오곤 하는 것이다. 학교 밖에서도 불량한 어른들이 이유 없이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나서서 해결했다던 무용담이 전해지듯 요나는 천상 혹등고래의 습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와 같은 바다의 수호천사인 혹등고래가 유독 싫어하는 상대는 바로 범고래이다. 홀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혹등고래와는 달리 무리를 지어 살아가며 다른 고래를 공격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체보다 훨씬 큰 혹등고래 새끼를 들이받고 입속에 자신의 머리를 처박아 혀를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놓는 잔인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범고래는 새끼에게는 강한 모성애를 보이기도 한다. 여타의 고래들이 생태계에서 적응하기 위해 기형의 새끼가 태어나면 죽이거나 버리기 일쑤이다. 범고래의 무리에서는 쉽게 기형 돌고래와 섞여서 생활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슴지느러미가 없거나, 알비노를 앓는 기형 범고래의 사례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요나는 혹등고래의 본성만을 지닌 것일까? 최구희는 요나를 잉태했을 때 여섯 날개의 검은 천사를 보았다. 거인의 큰 키에 두 날개는 하체를 덮어 가리고, 두 날개는 펼쳤고, 두 날개는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덮은 날개 아래로 드러난 턱은 새하얬고 입술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범고래의 형상과 꼭 같은 모습이다. 고래인간의 존재를 추적하던 ‘누군가’의 무리로부터 가족들이 고문을 당하고 다치게 되자 인간 모습으로 바다에서 걸어 나온 요나는 격렬한 복수를 펼친다. 몸의 아래쪽 검은 날개로 잡히는 대로 머리이건, 다리이건 잡아 뜯어서 패대기를 치며 온 바닥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검은 날개로 눈을 가린 요나의 얼굴에서 입이 미소를 머금고, 구희를 찾아왔던 그날의 여섯 날개의 검은 천사처럼, 범고래처럼 웃음을 띤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과 악의 이분법에 너무나도 익숙해지게 된다. 혹은 안과 밖, 이쪽과 저쪽, 나와 타자로 무수한 경계를 그어놓고 유형화시켜서 구별 짓는데 익숙한 것인지 모른다. 요나는 이와 같은 경계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며 질서와 관습에 맞서는 존재로서 말이다. 요나는 하얀 혹등고래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그 모습을 꼭 닮은 외형과 습성을 갖는다.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고 홀로 단독자로 멀리 여행하길 즐기는 혹등고래처럼 요나 역시 밴드부에서 활동하고 주미와 함께 노래를 창작하는 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범고래처럼 포악하게 살인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허나 자신의 가족에 해를 가하고 폭력을 일반화하는 조직폭력배의 무리, 가족을 보호하기보다는 성공과 권력 유지를 위해 수단으로서 자식을 이용하는 주미의 아버지와 고모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선사하고 있다. 고래의 습성으로 인간을 대하고, 또 인간의 습성으로 고래들과 교류하는 요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울타리로 세웠던 경계선을 마주하게 된다.

5.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

「검푸른 고래 요나」는 익숙한 서사 문법을 벗어나는 환상성을 특징으로 삼는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텍스트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고래인간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 또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작품의 환상성이 현실에 견고히 발을 디디고 있음을 강력히 표출하고 있다. 그 결과 「검푸른 고래 요나」는 환상과 현실의 평행선 사이에서 서사적 힘으로 균형을 이룬다. 요나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몇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직접 관련되는 사회적 사건이 중첩되고 서사적 균형 감각을 발휘하는 것이다.

먼저 주미가 신인 아이돌 탄생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상황을 살펴보자. 많은 관심을 받는 자리에 오르면 그만큼의 중압감 또한 뒤따르기 마련이다. 열렬한 호응과 질시의 시선이 댓글 창에 혼재되는 단순한 현상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리게 된다. 때마침 서해에서 해군 함대가 침몰한 사건이 발생하고 동생 혜미를 바다에서 잃었던 일을 밝힌 인터뷰 내용이 결합하여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는 데 이용당하게 된다. 언론에서 주요한 사건과 정치적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인들의 가십거리 기사를 활용하는 사례를 종종 현실에서 접하는 현상을 상기시키듯 주미의 개인적 경험의 말 내용은 전후 맥락이 삭제된 채 천안함 침몰 피격 사건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서사적 요소로 구체화한 사례는 구선과 희경의 죽음이 부안에서 발생한 훼미리호 침몰 사건을 상기하게끔 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구희는 구선과 희경과 함께 승선했지만 혼자서만 살아남는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실제 1993년 10월 10일에 발생한 부안 위도에서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구조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최악의 인재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태를 꼬집는 한겨레 신문의 그림 사설을 보면 “이제까지 괜찮았잖아, 괜찮아, 출항해”라고 말하며 손짓하는 사신의 섬뜩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전 국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 최악의 인재 사건으로도 기억되는 침몰사고는 다시 「검푸른 고래 요나」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것이다.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충격에 ‘인간 사회의 보통 습성’으로서 살아가기를 강요한 자신을 책망하는 구희의 모습에서도 이미 종결되고 미해결로 남은 사건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느낄 수 있다. 1991년 4월, 서울 이태원에서 대학생이 여러 차례 칼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있던 두 한국계 미국인 남성은 누가 진범인지 초유의 관심 속에서 주목받았던 사건이 있다. 바로 이태원 살인 사건으로 곧바로 범인을 확정하고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의 문제는 담당 검사와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수년에 걸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태원 살인 사건의 두 남자는 포항의 해변으로 피서를 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변주되어 묘사된다. 이를 통해 단순히 이태원 살인 사건의 모티브만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두 한국계 미국인 남성이 변을 당한 이유가 바로 혜미에게 위해를 가하고 성폭행을 시도했기 때문에 요나가 응징으로서 이들을 찢고 죽였음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 동안 고래인간 요나를 추적하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그 ‘누군가’ 역시 고래고기에 대한 집착을 지닌 ‘브이아이피’로 명명된다.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국가, 소수를 말살시켜 다수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권력 단체의 상징으로서 브이아이피를 확정 지을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일본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실제 전직 대통령을 그 자리에 환기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재임 시절 청와대에서 포항의 식당으로 전화하여 물회를 시켜 먹기도 했을 만큼 자라난 지역에 대한 애착을 보인 바 있다. 이와 같은 주요 사건의 배경에 작가는 비현실적 서사의 요소들을 실제 사건과 긴밀하게 봉합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실재적 현실감에 안착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실과 환상적 요소의 봉합은 ‘바다 아래 바다’에서 전해지는 율리아 할머니의 이야기, 즉 이방인들의 삶에 대해 환기하면서 폭발적으로 그 효과가 드러난다. 러시아의 율리아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요나를 만나기 위해 주미는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방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과거 일본군에 의해 사할린 탄광 노역에 강제 징용된 남편을 따라 타국에 왔지만, 매몰 사고로 남편을 잃은 할머니의 어머니는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체념하고 뿌리내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태어난 율리아 할머니 역시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겪었다. 사할린 한인 2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막내아들을 사고로 잃고, 어머니의 임종을 마주하게 되면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어머니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앓는다. 이를 위로라도 하듯 주미는 할머니에게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집 <HUMAN>을 건넨다. 오랜 세월 동안 항상 존재했고 지금도 지키고 있지만 다른 무언가 때문에 도외시되고 가려져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일상을 다룬 작가의 사진들은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른 모습, 다른 얼굴로 마주할 수 있는 이방인들의 삶의 총화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텍스트는 현실과 환상적 요소들을 촘촘하게 엮어 그 사이에 놓였던 경계선을 허물어뜨린다. 허물어지는 경계선 위에 푸르고 선명한 빛깔의 오로라가 피어오른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듯한 환상 효과를 자아내는 오로라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나치거나 묵인해 온 잘못들, 소외시키고 외면한 사람들을 마주 서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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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20231208]최명희문학관, 10일 ‘김순영·최명희 작가’ 작고문학인세미나 연다
최명희문학관 | 2023.12.08 | 추천 0 | 조회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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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안 20231206]혼불 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작고 문학인 세미나 열어
최명희문학관 | 2023.12.06 | 추천 0 | 조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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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매일신문 20231204]최명희문학관, 10일 ‘김순영·최명희 작가’ 작고문학인세미나
최명희문학관 | 2023.12.02 | 추천 0 | 조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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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포스트 20231204]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 10일 ‘김순영·최명희 작가’ 작고문학인세미나
최명희문학관 | 2023.12.02 | 추천 0 | 조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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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20231202][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84.내가 강아지가 되었어!
최명희문학관 | 2023.12.02 | 추천 0 |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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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20231201][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83.싸운 날
최명희문학관 | 2023.12.02 | 추천 0 | 조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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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20231123]목포해양대, 전주 한옥마을로 떠난 ‘가을 문학기행’
최명희문학관 | 2023.12.01 | 추천 0 | 조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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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쉬핑 20231121]목포해양大, 전주서 가을 문학기행 프로그램 실시
최명희문학관 | 2023.12.01 | 추천 0 | 조회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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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타스알파 20231121]목포해양대 '전주 한옥마을 가을 문학기행' 성료
최명희문학관 | 2023.12.01 | 추천 0 | 조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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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전북 20231115]2023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최명희청년문학상 시상
최명희문학관 | 2023.11.30 | 추천 0 | 조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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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전북닷컴 20231115]2023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최명희청년문학상 시상
최명희문학관 | 2023.11.30 | 추천 0 | 조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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