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31101][최명희문학관_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 ①수필은 애정으로 쓰는 글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11-09 09:15
조회
40
 

 최명희문학관과 혼불기념사업회가 2007년부터 여는 ‘전라북도 작고문학인세미나’는 문학인 스스로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고 격려하며 상처를 쓰다듬는 여정이다. 올해 대상 작가는 수필가 김순영이다. 현재 도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 다정하고 섬세한 작가의 수필집을 읽고 쓴 글을 본지는 오늘부터 매주 2회 총 8회 싣는다. 참여 작가는 김근혜(동화작가), 김영주(동화작가), 이경옥(동화작가), 이진숙(수필가), 최기우(극작가), 최아현(소설가), 황지호(소설가)이다.
 
 ○ 수필에도 ‘쟁이정신’이 필요하다

 수필가 김순영(1937∼2019)의 글은 소박하고 진솔하다. 작은 것에 감격하고, 하찮은 것에 놀라고, 별것 아닌 것에 신기해한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삶의 단편들은 깐깐하고 찰지다. 느슨하면서도 끈질기다. 전에 본 것, 들은 것, 맛본 것, 접한 것들을 매번 처음 보고, 듣고, 맛보고, 접하는 것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갈매기가 바다 위를 나는 것도, 사람들 곁에 다가오는 것도 신기해하고, TV 교양프로그램을 보면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들의 군 복무 기간 내내 ‘허방을 밟듯 허청거리던’ 허허로움과 대학을 진학하면서 집을 떠난 딸의 빈방 앞에서 울컥울컥 목울대를 치받고 솟구쳐 오르는 그리움을 안다. 꼼꼼하고 섬세하고 신선한 그의 감각들은 모두를 공감시키는 인생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자기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요. 수필가들이 먼저 수필을 존귀하고 보배롭고 가치 있고 사랑받는 대상이 되도록 해야지요. 수필가들이 작품의 질과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수필가 스스로 자기 주관과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죠. …. 수필 인구가 늘어날수록 걱정도 많아지더라고요. 수필이라고 해서 한 번에 다 써 내려가서는 안 되거든요. 한 작품으로 한 달씩, 두 달씩 실랑이를 벌여야 합니다. 수필에도 뜨겁게 자신을 불사르고 자신에게 그만큼 냉혹하고 철저한 ‘쟁이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순영은 또한, 거울과 물건을 통해 자신과 수필의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거울은 물건이 있어야만 그것을 비추는 기능이 가능하고, 거울이 없으면 물건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거울과 물건의 관계처럼 ‘나를 비워줌으로 내 마음과 마음을 담고 있는 몸을 볼 수 있는 공생 관계’가 자신과 수필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울고 있는 나, 웃고 있는 나, 우쭐해 있는 나, 초라한 나, 삐친 나, 행복한 나…. 거울을 통해 보이는 우는 나는 청승맞고, 우쭐하는 나는 꼴불견이고, 초라한 나는 안쓰럽고, 삐친 나는 부끄럽고, 웃는 나는 사랑스럽고, 행복한 나는 천진하다.

 “저는 쉬운 수필이 좋아요. 여운이 남는 수필.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수필. 내가 제시하고 해결하고 답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답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김순영이 정의하는 수필은 사람이 걸어온 자취다. ‘삶에서 찾아낸 정(精)의 뿌리’이기에 ‘재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애정으로 쓰는 글’이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입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는 것. ‘휴우’는 한숨이고, ‘아얏’은 비명이며, ‘하하’는 기쁨이고, ‘흐윽’은 울음이다. 그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수없이 내지르는 이런 소리를 정리하고 정돈해 언어로 정선하는 작업’이 자신과 수필과의 해후라고 말한다. 

 ○ 여섯 권의 수필집을 내고

 김순영은 등단 이후 문집·신문·잡지 등에 차곡차곡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이 한 무리를 이루면 꼼꼼하게 모아 수필집을 냈다. 모두 여섯 권, 432편이다.

 문단에 이름을 올린 지 30년 만인 1991년 첫 번째 수필집 『꼭 하고 싶은 이야기』(신아출판사)를 냈고, 1~2년 사이로 『어느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다』(1992·신아출판사)와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다』(1994·신아출판사)를 냈다. 책장을 넘기면 문풍지 흔드는 바람 찬 겨울 아침이 있고, 지축 울리는 천둥소리에 천지 분간이 난감한 장마 진 아침도 있다. 살갗이 스치는 기운만으로 흉금에 단풍이 드는 가을 아침과 황금 같은 개나리 울타리와 뜨락의 영산홍 그리워지는 이른 봄의 아침도 있다. ‘어느 아침은 절망이고, 어느 아침은 기쁨이고, 어느 아침은 슬픔이고, 어느 아침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단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었다.’라는 그의 소소한 일상이 모두 문학을 향한 바탕임을 알려주는 단편들이 숨을 쉬고 있다.

 1998년 전주 동산동 우체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김순영은 ‘타작마당에 탈곡기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풍년을 기뻐하는 큰 웃음소리와 추수 끝난 논바닥에 지푸라기 타는 연기가 안개처럼 하나 가득 빈들에 자욱이 퍼진다.’라는 자신의 수필 「다시 가을에」의 문장처럼 그런 계절을 맞는다. 그리고 그토록 부러워하던 ‘전업 작가’가 된다. 그 명함에 어울리는 좋은 글을 쓰고 싶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많이 부러워했어요. 퇴임한 뒤에 자연스럽게 전업작가가 됐지만, 막상 그 생활에 빠지기는 힘들더라구요. 제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으로 몸놀림이 굼뜨고 게으르고 둔해요. …. 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러나 굼뜨고 게으르고 둔하다는 그는 각종 단체의 문화행사와 세미나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서 동료들을 만났고, 일상에서 창작의 소재를 얻는 바지런함을 보여줬다. 이것이 새침 뗄 줄 모르고, 속삭이지 못하고, 남자 앞에서 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 고개를 외로 빼거나, 치맛자락 감싸 안고 도망치며 뒤돌아보는 법 없이 악수도 잘하고, 묻는 말에 거침없이 대꾸도 하는 그가 자신의 분주한 삶을 에둘러 표현하는 한 모습이다.

 그 넉넉함과 따뜻한 사색은 2002년과 2003년 연이어 낸 수필집 『그때 거기서 지금 여기서』(신아출판사)와 『다시 가을에』(신아출판사)에 담겨 있다. 1994년 이후 8년 만의 수필집이지만, 그는 일상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여전히 색 짙은 수필 문학의 세계를 선사했으며, 아등바등하지 않고 넉넉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나의 문학, 나의 인생」, 「태산목」, 「생명력 있는 수필가」, 「맛깔스럽게 수필 쓰기」 등에는 수필가로 지켜야 할 사명과 자세와 성찰을 보여주는 문장들이 수놓고 있어 더 귀하다.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보며 단지 하늘이 투명하리만큼 깨끗하다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흘리고 싶다. 버스나 기차여행을 떠나고 싶다. 시내버스에 내려 과수원 샛길을 걸으며 울타리에 걸린 늙은 호박과 지붕에 널린 둥근 박을 보고 싶다. 내장산·대둔산·강천산·선운산의 단풍은 직행버스를 타고 가고 그리운 이를 만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가고 싶다. 새마을호 특실 창가에 우아한 차림으로 앉아 묵은 앨범 속의 추억을 반추하는 외로운 여행객이 되고 싶다. ∥수필 「다시 가을에」 중에서

 2009년에는 각종 문집에 발표한 수필 50편을 묶어 여섯 번째 수필집 『東이 西에서 먼 것 같이』(수필과비평사)를 냈다. 2005년 성경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시편 103편 12절)을 제목으로 정하고 설레했지만, 주저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이 책은 2005년에 준비했어요. 바깥양반이 세상을 뜬 사이 수필집 발간은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글이 한 줄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반세기를 한 남자와 동고동락했는데, 그 사람과 연결 안 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좌절감이 말도 못했죠. 그냥 눈물만 흘렸죠.” 

 책 제목이자 표제작인 「東이 西에서 먼 것 같이」는 먼 길 떠난 남편과의 이별과 신앙을 거울로 삼아 되돌아본 삶의 가지들이 빼곡하다. 상처를 쓰다듬고 치유를 살피는 것이 문학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더함이나 덜 함 없이 ‘나’를 바라보는 신(神)을 만난 것이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 ‘정말 부끄럽지 않은 작가, 삶과 글이 진실한 작가, 독자에게 폐가 되지 않는 작가로 남고 싶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오래 묵고 삭힌 그의 문장과 행간은 한층 더 깊은 믿음을 주었고, 여유로웠다.

글 = 최기우(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본문 중 작가의 말은 생전 인터뷰(2016년)와 작가의 수필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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