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21208]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⑧그리움의 나라를 위한 노래: 『그리움의 나라』를 읽고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12-08 10:32
조회
285
‘동물의 왕국’ 같은 동물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해 질 무렵 집에 머물 때면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앉아 기린과 하마, 사자와 고래를 기다리곤 합니다. 그런 저를 향해 아내는 지금 꼭 텔레비전을 봐야겠냐며 매번 잔소리합니다. 모른 척하지만 한가한 오후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이 아쉬워서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압니다. 산책하러 나가 노을을 등지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징검다리를 건너고,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을 압니다. 같은 방향을 향해 걸으며 소소하고 잔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을 압니다. 그래도 저는 고래와 기린을 놓칠 수 없어 산책을 미루고…, 아내는 또 노을을 놓치고 맙니다.

그런 아내와 나란히 앉아 동물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습니다. 처음엔 평소처럼 저 혼자였습니다. 그날의 동물은 낙타였습니다. 먼 몽골 사막의 낙타 모녀가 주인공이었지요. 이제 막 새끼를 낳은 어미 낙타 한 마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가 그렇듯 어미 낙타도 갓 태어난 새끼를 혀로 핥아주고, 일어설 수 있게 돕고, 초유를 물리기 위해 분주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끝없는 사막만 무연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는 노을만 허허롭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스산한 바람 소리만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산모답지 않은 그 모습은 초산의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출산의 고통이 너무 커서 새끼에게 향하는 모성애를 거두어들여 그랬던 것입니다. 사막이 길러 준 인내심도, 초원이 심어준 인자함도, 뱃속에서 새끼와 함께 커 온 모성애도 난산의 아픔을 넘어설 수 없었던가 봅니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제 곁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아내도 숨죽여 낙타 모녀를 바라보았습니다.

매정하고 단호한 어미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새끼가 아니라 주인이었습니다. 주인은 그녀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 낙타의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밀어 그녀 곁에 보낼 뿐 다른 도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새끼가 밀려올수록 그만큼 더 어미는 사막 쪽으로 멀어졌습니다. 한참 뒤 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일어나 아들과 함께 낙타 모녀에게 왔습니다. 여전히 어미의 몸과 마음은 새끼를 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새끼는 어미를 잃었으나 아직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 더 스산한 저녁이었습니다.

모녀를 확인한 노인과 아들은 고개를 돌려 주인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초산이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고, 해산에 도움을 주었느냐 묻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주인의 대답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기다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줄 두 개가 걸린 현악기였습니다. 가는 브릿지가 길고 브릿지 끝에 말머리가 조각된, 네모난 모양의 울림통이 퍽 우아한 현악기였습니다. 노인의 아들이 낙타 곁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활대를 들어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 소리는 몽골 사막과 초원을 닮은 듯했습니다. 노을과 새벽, 말의 잔등과 들꽃, 어미의 슬픔과 새끼의 두려움을 닮은 듯했습니다. 듣는 마음에 따라 바람의 노랫소리로, 안개의 쓸쓸함, 삶의 고달픔으로 들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악기만으로도 전설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신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으며, 오래된 별자리에 데려다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는 어둠보다 무겁게, 모래보다 가늘게, 바람보다 멀리, 어미와 새끼들 사이를 지나 사막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연주가 절정을 향해 갈 때쯤 노인이 낙타 어미의 목덜미를 봄처럼 어루만지며 어떤 말을 속삭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첫 아이를 낳았으니 이제 엄마가 되었구나. 네가 낳은 아이의 커다란 눈이 너를 닮았구나. 쭉 뻗은 다리는 네 어미를 닮았고, 곱게 굽은 등은 네 할미를 닮았구나. 네 아이는 너만이 아니라 네 어미와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의 피와 영혼을 이어받았구나. 그네들의 목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눈빛을, 그네들이 걸었던 초원의 냄새를 가지고 태어났구나….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네가 낳은 저 아이는 곧 네가 사막과 초원에 길을 만들 때 그 뒤를 조심조심 따르겠지. 어제 본 꽃과 바람, 오늘 본 나무와 새, 내일 볼 하늘과 구름 얘기를 조잘대며 네 귀를 간지럽힐 날도 있겠지…. 네가 죽을 때, 남은 저 아이를 돌볼 수 있게 네가 네 살과 피를 주인에게 내줄 때, 그 곁에서 너를 위해 울어줄 날도 오겠지. 그리하여 저 아이가 네 마지막 숨이 들숨인지 날숨인지를 기억하고 아이의 아이에게 그 아이의 아이에게 그 숨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줄 날도 오겠지…. 아가! 에미야… 이제 어미가 된 낙타여, 괜찮다… 괜찮아… 이제 마음에 맺혀 있는 슬픔을 새 날개 위 빗물처럼 가볍게 털어 버리렴.”

노인의 위로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내 낙타의 그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곁에 앉은 아내도 그러했습니다. 아내도 첫째 아이를 낳을 때 겪었던 아픔을 떠올렸던 겁니다. 두 어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방울 눈물이 아닌, 꽃봉오리에 고여 있던 빗물이 바람에 쏟아지는 것처럼 굵은 슬픔이 ‘와락’ ‘오래’ 흘러내렸습니다. 노인이 다시 어미를 안아주었습니다. 배냇저고리에 담긴 아기를 안아주듯 조심스럽게 어미를 품어 주었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여전히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고, 그사이 밤은 조금 더 두꺼워져서 더 깊고 먼 사막으로 서러움이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슬픔이며 아픔이며 외로움이며 사라져야 할 것은 사라지고…. 어미가 혀를 내밀어 새끼를 핥아주고 젖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끼도 다 잊었는지 수선화처럼 웃으며 젖을 물기 시작했습니다. 강을 건널 뻔했던 생(生)이 먼 곳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들이 연주한 악기의 이름은 ‘마두금’입니다. 몽골어로 머릉호르(морин хуур)라고 합니다. 줄감개 끝에 말머리 장식을 썼다 하여 ‘마두금(馬頭琴)’이라 합니다. 몽골의 음악과 전통, 삶과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로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중 하나입니다. 마두금은 오래전 충성스러운 말이 죽으며 주인에게 자신의 주검으로 악기를 만들라 했다는 전설이 남아있습니다. 머리로는 울림통을, 뼈로는 대를, 털로는 줄을 만들어 켜면 영혼들의 아픈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자신의 주검으로 악기를 만들어 젖은 꽃잎들을 위로하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뭇 슬퍼하는 것들을 비롯해 자신을 잃고 슬퍼할 바로 그 주인을 위한 마지막 소신공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전설처럼 만들어진 악기가 신화처럼 아픈 영혼들을 치료해 왔던 것입니다.

수필가 목경희 선생님은 35세 젊은 나이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 아들 ‘치구’를 잃었습니다. 예순 무렵에는 의지하고 아끼던 곱고 연약한 딸 ‘혜신’을 또 잃었습니다. 작가의 문장이 곧 작가의 마두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두 아이를 잃고 무릎을 포개 안고 우는 그녀를 위로하고 다시 일으켜 세운 마두금은 다름 아닌 그녀의 문장이었고, 그녀의 아이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먼저 떠나간 두 아이가 엄마의 남은 삶을 위해 스스로 마두금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작가는 아이들이 남겨준 문장으로 아이들과 자신을 위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가 연주하는 그 소리를 읽으며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녀의 책들은 그녀 마음속 마두금의 선율을 그려놓은 악보인지도 모릅니다. 슬프지만 고귀한 악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수필집 『그리움의 나라』(교음사·2006)가 마지막 ‘악보집’임을 알고 계셨던 듯합니다. 그럴 마음을 먹고 쓰신 듯합니다. 수필 매 편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음표처럼 불러 추억의 선율을 기록해 나갑니다. 여든 나이에 여덟 살에 만난 이를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작가를 보면서, 저는 인생이란 것, 그 무상한 것은 결국 사람을 통해 구체적 형상으로 가시화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제 지난 삶의 태도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추억하는 한 분 한 분의 음표는 마두금 선율의 부분이 되기도 하고 때론 전체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인생 속에 머물지만, 아직 불러주지 못한 그 이름들을 마지막으로 호명합니다.

∥글 황지호(소설가)
― 나와 내 아이를 변화시킨 인문학 편지를 부제로 한 『잠수함 속 토끼』와 『산전수전 겪지 않고 시골집 고치기』를 냈다.
전체 5,386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5296
[시사타임즈 20231102]‘2023 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축제’ 진행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42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42
5295
[뉴스포털1 20231102]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축제로 전주의 멋 알려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39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39
5294
[미디어이슈 20231102]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축제로 전주의 멋 알려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33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33
5293
[케이에스피뉴스 20231102]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축제로 전주의 멋 알려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30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30
5292
[미디어투데이 20231102]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축제로 전주의 멋 알려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32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32
5291
[투데이안 20231102]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축제로 전주의 멋 알려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27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27
5290
[전북도민일보 20231101][최명희문학관_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 ①수필은 애정으로 쓰는 글
최명희문학관 | 2023.11.09 | 추천 0 | 조회 39
최명희문학관 2023.11.09 0 39
5289
[전주대신문 20231025]최명희문학관 전선미 학예사 인터뷰
최명희문학관 | 2023.10.31 | 추천 0 | 조회 212
최명희문학관 2023.10.31 0 212
5288
[전북일보 20231028][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74. 시계에게
최명희문학관 | 2023.10.28 | 추천 0 | 조회 269
최명희문학관 2023.10.28 0 269
5287
[전북일보 20231027][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73. 미래의 나에게
최명희문학관 | 2023.10.28 | 추천 0 | 조회 264
최명희문학관 2023.10.28 0 264
5286
[전라일보 20231027]‘중학생 최명희’ 가 썼던 습작 노트 28일 공개
최명희문학관 | 2023.10.26 | 추천 0 | 조회 258
최명희문학관 2023.10.26 0 258
5285
[문학뉴스 20231026]최명희 작가 중학생 때 글쓰기 노트 등 공개
최명희문학관 | 2023.10.26 | 추천 0 | 조회 175
최명희문학관 2023.10.26 0 175
5284
[경향신문 20231026]‘주민·관광객 함께’ 전주 한옥마을서 전통문화 즐긴다
최명희문학관 | 2023.10.26 | 추천 0 | 조회 137
최명희문학관 2023.10.26 0 137
5283
[전북일보 20231026]최명희문학관, ‘중학생 최명희’의 기록 공개
최명희문학관 | 2023.10.25 | 추천 0 | 조회 146
최명희문학관 2023.10.25 0 146
5282
[전북교육신문 20231025]최명희문학관, ‘중학생 최명희’ 글쓰기 노트 등 28일 공개
최명희문학관 | 2023.10.24 | 추천 0 | 조회 155
최명희문학관 2023.10.24 0 155
메뉴
error: 콘텐츠가 보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