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와 나는 화해하기 어려운 관계다.”

소설가 김훈(58). 20여년 전, 문학담당 기자와 소설가의 관계로 최명희를 만난 그는 “나는 최명희보다 불행한 작가”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나는 무엇을 쓸 수 있는가?’를 주제로 최명희문학관을 찾은 그는 최명희를 향토적 정서가 강한 모국어에 애정이 많은 작가로 기억했다.

“최명희는 향토적 정서에 함몰돼 그 밖의 것은 쳐다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혼불」에 나오는 당신네 동네 엄마와 서울 토박이인 우리 엄마는 왜 다르냐, 이런 것들로 최선생과 건건이 부딪치며 우리의 젊은 날이 채워졌죠.”

「혼불」을 두 번 읽었다는 김훈. ‘최명희는 언어에 정령이 있다는 믿음으로 모국어에서 많은 것들을 불러냈다. 그럼 나는 도대체 무엇을 쓸 수 있겠는가’.

그는 “내가 모국어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며 최명희보다 불행한 이유를 고백했다.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 그는 “우리 언어는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어 쓸 수 없는 것이 많다”며 “최명희는 그걸 깨닫지 못하고 한글이 최고 아름답고 뛰어나다는 확신으로 살다갔다”고 말했다.

“좋은 언어라면 서정시도 쓸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치열한 논리성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언어는 논리성이 약하다는 치명적 결함이 있죠.”

그는 “최명희는 한글 문장에 영어가 끼어드는 걸 싫어했지만, 영단어라도 우리가 끌어다 쓰면 우리말”이라며 “동화시킬 수 있는 건 동화시켜 우리말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 소설에는 자전적 요소가 없습니다. 내 정서로 익혀 언어로 토해내기 어렵다면, 다른 힘을 빌리며 조금씩 내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이죠.”

이날 문학강연에서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쓰기도 화제가 됐다.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언니의 폐경’은 여성잡지를 몇 달간 구독하며 광고란을 줄치며 읽고 탄생시킨 작품.

「칼의 노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원래 ‘꽃이’를 ‘꽃은’으로 표기했었다. “‘은’을 ‘이’로 고치고 나서야 내가 쓰고 싶은 문장에 비로소 가까이 가게됐다”는 그는 “모국어를 읽는다는 건 조사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조사가 무섭다”고 털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