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0-06-21] 사설 3D보다 실감나는 '서정의 깊이'

▲ 이서·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희곡인 '견딜 수 없네'가 얼마 전 서울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내가 쓴 희곡이 무대에 오른 기쁨이 컸지만, 관객들은 어떻게 보았는지 몹시도 궁금했다. 결국 나도 내 연극의 관객이 되어 객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견딜 수…'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엄숙한 순간을 웃음으로 버무려본 작품이다. 생명의 무게를 저울로 무겁게도 가볍게도 재며 그 무게를 관객이 느끼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부분 관객들은 그런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다만 이야기와 함께 긴장하고 이야기와 함께 웃을 뿐이었다. 그 몰입의 길로 인도하는 것도 내가 쓴 희곡이라기보다 배우들의 연기였다.

내 고향 시골 사람들은 '옴팍집' '혼불' '대숲'의 풍경을 알고 있어 그런 장치들을 극에 끌어들인 의도를 쉽게 알아차렸다. 내 누님은 연극을 보고 눈물까지 흘렸다. 반면 도시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들은 혼불이 무엇인지 몰랐다. 최명희의 '혼불'이란 소설도 있는데, 객석 여기저기서 "혼불이 뭐야?" 하며 귓속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극은 아주 오래된 예술 장르다. 게다가 연극은 '아바타' 같은 3차원 입체영상 앞에서 맥을 못 출 게 분명한 소박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혼불을 모르며 3D 영상에 익숙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프다. 그래서 오기를 부리듯 더욱 다짐을 한다. 한순간의 유머나 현란한 시각적 효과에 끌리는 사람들마저 사로잡을 수 있는 '서정의 깊이'를 선물하는 작품을 반드시 쓰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