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시암송을 권하는 교사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6-08-14 14:12
조회
2402


문길섭의 행복한 시낭송 / 드맹아트홀 관장·시암송국민운동분부 대표




 



아쉽게도 나의 학창시절엔 시암송을 권한 선생님을 못 만났습니다. 만일 그런 분이 계셨더라면 시암송을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을 테지요.

최근 한 글자료에서 ‘혼불’의 최명희 작가가 시암송을 가치 있게 여긴 걸 알고 무척 기뻤습니다. 내가 하는 시암송운동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보성여고 2학년 때 최 작가에게 배웠던 서양화가 이혜순 씨는 삼십대 초반쯤이었을 국어교사 최 작가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발머리, 거의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 옷차림도 수수하여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 말수도 적었으며, 부드럽고 조용한 여성적인 목소리로 조용조용 얘기했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은 평소의 평범함과는 딴판으로 눈이 빛났다. 수업시간에 교과서와 상관없이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이 화백은 최 작가가 시암송을 권한 일과 그분 덕분에 많은 시를 외운 것을 고마워합니다.

“우리들에게 권하시는 책들도 거의가 철학서적이었으며 또한 우리에게 시를 많이 외우도록 늘 권장하셨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암송하는 시가 많은 것을 선생님께 감사한다. 그 소녀 시절에 외우지 않았다면 살아가면서 시를 외우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명희 작가를 가르친 이향아 시인의 명문 암송 사랑을 생각하면 이 시인과 최 작가는 그 스승의 그 제자라 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주 기전여고 국어선생이었던 이 시인도 교과서에 나온 명문 암송에 크게 마음을 썼기 때문이지요. 이 시인의 고백입니다.

“나는 당시 입시 위주 수업으로 몰지 않고 생각하면 통이 크게도 교과서의 명문을 암송하게 하였다. (중략) 그 긴 문장들을 다 외라고 하다니, 외라 한다고 학생들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외웠다니. 수업 시간만이 아니라 방과 후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을 붙들고 늘어졌는데도, 학생들의 반발이 없었다니. 지금이라면 어림도 없다. 요순시대의 얘기다.”

그러면서 명문 암송의 이유를 말합니다. “암송하면서 학생들은 작가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문장의 의미는 물론 흐름을 알게 되었다”고. 이 시인 덕분에 학창시절 명문을 많이 외운 다른 제자의 “부부 동반으로 모였을 때 명문을 줄줄이 읊으면 내가 천재인 줄 안다니까”라는 회고담도 미소짓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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