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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20231103][최명희문학관_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 ②혼나고 깨지면서 글은 성장한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11-09 09:36
조회
41
 

1960년대 수필은 문학의 한 장르로 명확히 자리 잡지 못했다. 전영래가 전북일보에 ‘전라산천’을 연재하면서 수필 문학의 일면을 선보이는 정도였다. 1965년에서야 전라북도 첫 수필집인 허소라의 『흐느끼는 목마』가 출간됐고, 최승범은 수필이론서 『수필ABC』를 선보였다. 이듬해에는 최승범이 수필집 『반숙인간기』(半熟人間記)를 냈으며, 1969년 이보영이 수필집 『밤의 소묘』를 냈을 정도다. 1970년대 이후 문학단체의 기관지와 수필 관련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수필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김순영(1937∼2019)도 그 속에서 이름을 함께 하며 수필 문학을 지켜나갔고,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손꼽는 수필가로 자신의 이름을 명확히 새겼다.
 
○ 시·동화·소설·콩트… 다양한 글쓰기

김순영의 글쓰기는 다양했다. 시작도 화려했다. 그는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샛별 질 무렵」)와 삼남일보 신춘문예(수필·「외투」), 『가정생활』 제1회 여류신인현상문예(수필·「열대어」),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수필·「묵은 책」) 등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상품으로 은수저 한 벌을 받았어요. 당선됐을 때의 기분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작품과 시상식이 실린 신문기사를 아직도 스크랩해 가지고 있어요. 삼남일보는 시상식도 없데요. 그때 이기반·송희철 씨와 함께 당선됐는데… 시절이 그러했으니, 당선된 것, 내 글이 누군가에게 소개해도 될 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소설가 김동리와 인연이 있었던 김순영은 20대 중반 ‘새바람’과 ‘탈색지대’ 등의 동인 활동을 통해 길을 넓혔고, 60·70년대 문단의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문학과 세상을 탐색했다.

김해강, 박동화, 신석정, 이동주, 이보영, 조두영, 천이두, 최민호, 홍석영… 60·70년대 전라북도 문단은 화려했다. 쟁쟁한 선배들 덕에 신인이 지면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지면이든 주어지면 무작정 썼다. 그래서 지면에 따라, 청탁자의 요구에 따라 장르가 정해졌다. 20대부터 40대까지 김순영이 발표한 글의 장르도 마찬가지였다.

“시를 쓰라면 시를 썼고, 소설이 필요하다고 하면 소설을 썼어요. 그냥 쓰라고 하면, 어떤 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에 맞춰서 썼어요. 글을 쓰고 싶었지, 장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들은 더 그랬지요. 지면을 얻는 일이 얼마나 귀한데…. 신문사에도 갑자기 ‘빵구’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마다 저에게도 연락을 줘요. 그런데 그것이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아, 내가 그래도 쓸 만한 사람이구나. 나는 고마운데, 그쪽에서는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니까, 더 신나지요.”

김순영은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됐으며, 이듬해 소설 「야간강의실」로 제1회 원광문학상을 받은 동화작가이자, 소설가였다. 1961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시 「귀로」(1961), 「갈증」(1962), 소설 「인간숙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1961), 「남자와 여자」(1973), 「성숙해가는 열기」(1976), 동화 「해바라기처럼」(1962), 콩트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1982), 「어떤 해후」(1982), 「알다가도 모를 일」(1987), 「날벼락」(1990) 등 여러 매체에 시·소설·동화·콩트를 발표했다.

“지금도 좋은 동화 한 편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 전북일보에서 저에게 지면을 참 많이 주셨어요. 60년대에 동화를 연재하기도 했는데, 그때 문화부장이던 전영래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어요. 등장인물이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저도 공부를 해서 쓰는 글이지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저 잘 읽히고 감동을 주는 글만 생각했을 땝니다. 그래서 그때 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번 많이 깨닫게 됐어요.”

혼나고 깨져도 스스로 부서지지 않으면 글은 스스로 성장한다.

1973년 김순영은 한국여류문학인회가 주최한 제7회 전국주부백일장에 참가해 수필 「숲」으로 장원을 차지했다. 심사위원인 한무숙 소설가는 “장원을 한 김순영 씨의 「숲」은 여느 주부들보다 문학적인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 글에서 차분한 문장력으로 묘사한 ‘비정의 숲’과 ‘무관심의 숲’은 자못 감동적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한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엄살이 유난했던 어린 시절 나는 가끔 숲에 버려지는 꿈에 가위 눌리며 자랐다. 학교 뒷산에 큰 아이들을 따라 소나무 열매를 따라 갔다고 굴러 떨어진 뒤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여자의 이마 위에 남은 흉터는 남편의 출세에 지장을 준다든가. 고시공부를 하는 아들에게 자주 놀러 오는, 이마에 손톱만큼의 흉터가 남은 처녀를 지금의 시어머니는 썩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판검사의 꿈을 깨친 이유를 굳이 며느리의 탓으로만 돌리시던 시댁 식구들의 냉대 탓이었을까? 정신은 잃어버릴 만치 놀랐던 어릴 적의 기억 탓일까? ∥수필 「숲」 중에서

「숲」의 당선은 현실적으로 집과 가정의 굴레에서 그를 자유롭게 했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글쟁이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수필을 쓰고, 동화를 쓰고, 콩트를 써도 70년대 그를 애달게 하는 장르는 소설이었다. 소설에 대한 열망은 그의 ‘문청시절’을 꽤 늘려 놓았다. 이것은 이화여대 1학년 때, 교지에 실린 3학년 선배(정연희·소설가)가 쓴 소설에 대한 충격에서 시작됐다.

대학 3학년 학생이 이런 소설을 발표하다니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 작가에 대한 선망이 생겼다. 얼마나 이쁠까? 얼마나 당당할까? 얼마나 도도할까?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3학년 주변을 기웃거리며 참으로 우연히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행운(?)을 기대하여 마냥 기다렸다. …. 무엇이 계기가 되었던 어떤 사람의 삶에 간단없이 침윤되어 그것으로부터 정서가 자극을 받아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된다면 축복이 아닐까? ∥수필 「그때 거기서 지금 여기서」 중에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신춘문예 시기가 되면 병이 도졌다. 집 앞 여관에서 밤을 새워 글을 썼다. 설레고 좌절하는 해가 반복됐다.
 
○ 문학의 향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수필

결국, 그를 붙잡은 것은 수필이다. ‘직장 일이며 잡다한 개인사로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다 보니 글의 호흡이 짧아진 것이 버릇처럼 굳어졌다.’라는 것이 그가 최종적으로 수필을 선택한 이유이지만, 실제는 다르다.


“문학의 향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수필입니다. 시처럼 아름답고, 소설처럼 현실감이 우러나고…. 시와 소설을 제대로 공부한 끝에 수필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시를 공부하면 정돈된 언어를 선택할 수 있지요. 소설은 깔끔한 구성을 살필 수 있어요. 그래서 시보다 좀 사설이 많고, 소설보다는 문장을 간결하게 추린 것이 수필의 형식이라고 볼 수 있죠. 시와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기능을 수필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수필은 읽는데 큰 부담이 가지 않기 때문에 독자층이 넓고 두텁죠. 따라서 수필은 작가의 의도가 가장 쉽고 정직하게 전달될 수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수필을 쓰는 것은 한 발 한 발 가슴으로 걷는 걸음과 같다. 반세기가 넘은 세월 동안 밟고 또 밟히면서 다져진 김순영의 길에도 수많은 갈래가 있었고, 그 길마다 수많은 사연이 쌓여 있었다. 글로 이어진 그의 길들은 늘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이어지며 또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전북문학상(1991), 전라북도문화상(1992), 신곡문학상(1996), 전북여류문학상(1999), 한국수필문학상(2001), 백양촌문학상(2001), 한국기독교문학상(2003), 전북수필문학상(2003), 전북예총하림예술상(2012) 등을 수상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작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기가 쓴 글에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은 작가에게 부여된 쓰는 자유에 상대적으로 부과된 절대적 의무다.
 
문학의 가치와 생명은 진실함에 있다고 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자극, 어떤 대상에 관한 호기심, 윤리성에 대한 도덕적 교훈, 위선과 위악의 본능적 도발 등에서 작가는 글을 쓰고 싶은 흥미와 글을 써야 된다는 동기를 받게 되는데 이것들을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하여 말하는 문학으로 옮기면서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지난하고 버거운 의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문학 하는 사람의 기본수칙이다.

결국, 글이란 그 글을 쓴 작가의 감정의 상태를 표현해 내는 것 아닌가? 작가의 생활, 작가의 사상, 작가의 희망, 작가의 의지, 작가의 지식이 집약되어 어떤 대상을 통해 표출되어지는 것이다. ∥수필 「나의 문학관」 중에서

김순영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하고 읽을 필요가 없다. 느릿느릿 해찰하면서 헤아리면 그만이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은 이야기, 그때 거기의 이야기, 지금 여기의 이야기, 삶의 안팎에서 빚어지는 간절한 이야기와 빛깔을 갈무리하는 문학의 열정이 늘 그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다루며 치유를 모색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가 걸어온 길에 서면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

최기우(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본문 중 작가의 말은 생전 인터뷰(2016년)와 작가의 수필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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