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내가 어떻게 살고 싶어하며, 어떻게 살아야되는가를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늦트이어, 스물 아홉 먹도록 사춘(思春)하며, 막연히 삶을 동경하였다. 누구보다도 현(現) 깊숙한 곳에 일찍 던져졌던 내가, 누구보다 늦게까지 현(現)을 꿈꾸고 있었구나.(허긴, 삶이란, 가장 큰 꿈이기도 하지만) 나는 일평생(一平生), 영혼의 숙제, 정신(精神)의 비밀(秘密)을 푸는데 나의 힘을 다할 것이다.”
1975년 6월 19일. 작가 최명희 선생이 ‘늘 말소리 들리는 곳에 있어 주었으면 싶다’던 친구 이금림(방송작가)에게 보낸 ‘2m10cm길이의 긴 편지’다. 20대 후반이었던 선생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전북대 교수)의 독락재 전시물품이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2m10cm길이의 긴 편지’를 비롯 선생의 지인들로부터 기증 받은 유품 100여 점이 새롭게 전시됐다. 문학관측이 개관과 함께 사진·편지·엽서 등 선생과 관련한 전시물품을 공개 모집해 기증 받은 자료들이다.
전시물품 중에는 1970년 4월 11일부터 1977년 9월 25일까지 이금림 선생에게 보내는 엽서 36종, 20대 중반 선생의 증명사진과 고교, 대학시절 수상내역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전주기전여고에 국어교사로 부임하기 위해 1972년 2월 14일에 작성한 친필이력서도 눈에 띈다.
시인 김남곤·수필가 공숙자 부부가 기증한 1988년 9월 1일자 편지에는 ‘혼불’ 제2부 연재를 시작하며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우겠다’는 선생의 각오가 담겨져 있다. 고려대 서지문 교수가 기증한 자료 중에는 선생이 원고 강연 등을 작성하며 주고 받았던 교열본 20여종,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를 선생이 필사한 A3 40여장 분량의 필사본이 포함돼 있다.
장성수 관장은 “추후 기증을 약속한 분들이 많아 문학관 전시물품이 한층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번 성과를 계기로 최명희 선생을 기억하고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지인과 선·후배들의 참여로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문학관은 지난 5월부터 외부 벽을 이용해 관람객들의 다양한 표정이 담긴 사진을 모은 ‘문학관 풍경하나’를 비롯 방명록에 남겨진 글을 이용해 전시하는 ‘문학관 풍경 둘’, 언론매체 독자의 글이나 칼럼 등에서 선생에 대한 글을 찾아 소개하는 ‘최명희를 말한다’, 전주와 인연이 있는 소설가와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주의 소설 전주의 소설가’, 선생이 1995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정동칼럼 글을 소개하는 ‘이 달에 읽는 최명희의 필적’ 등을 매월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