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대신문  20231012]심사평 /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 대학부문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10-12 12:59
조회
121
이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담담하게 그려내

 
새로운 시를 만나는 순간은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한다. 심사를 하면서 다음 페이지에 더 빛나는 시어들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나를 전율시킬 만한 뛰어난 작품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응모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였다. 비록 거칠더라도 이 시대를 버티며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힘을 가진 응모작을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선자들의 기대와 달리 응모작들이 전체적으로 너무 길고 장황해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단순히 분량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가 함축된 언어로 치열한 삶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나친 시어의 남발은 역효과를 거두기 쉽다. 주제가 불분명하거나 일정 부분은 없어도 좋을 만한 시가 상당히 많다는 점도 신경이 쓰였다. 또 생경한 표현이 도처에서 불쑥 튀어나오거나 전체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 시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응모작은 오랫동안 눈길을 붙잡았다. 다만 뛰어난 시 한 편의 역량을 다른 작품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데 따른 아쉬움이 남았다. 선자들이 끝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함서진의 <마모되는 마모루>, 김금비의 <시공의 역사>, 박대인의 <옥타브>, 이형초의 <마바동>이었다. 각각의 작품에서는 응모자들의 뚜렷한 개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고민과 감성, 그리고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는 점도 희망적이었다.

논의 끝에 <마바동>을 당선작으로 꼽았다. “어제 멈춘 그의 시간이 빨려간다 원단과 벨트 사이에 비틀리고 들뜬 부분을 메우며”처럼 항상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이주 노동자의 삶의 무게가 담담한 언어 이면에 살아 있었다. 또한 “기계는 어깨를 맞대며 들썩이고 춤은 박자가 있어서”와 같이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슬픔을 표현하는 것도 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같이 응모한 「홈페이지」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응모자의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었다. 선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마바동>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어쩌면 AI와 챗GPT를 이야기하는 시대와 창작의 고뇌를 담은 시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 어딘가에 시를 사랑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은 반갑기 그지없다. 당선하지 못한 응모자들도 언젠가 좋은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누리길 바란다. 당선된 이에게는 뜨거운 박수를, 다음을 기약한 이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장창영 위원, 나혜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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