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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사랑. 6 작가 최명희와 약속

작성자
황종원
작성일
2019-12-15 14:16
조회
1152







작가 최명희와 약속


서울대학 병원 영안실에 닿았을 때는 구름 가득 슬픔을 안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죽음을 찾기에 무거운 날씨였지요.

너무 조용하여 뜻밖이네요.

적어도 조문객의 걸음이 바쁘리라 했던 것은 착각이었고, 이 곳이 작가 최명희가 모셔진 곳이라는 것도 착각이었군요.

조선일보에서 서울대학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하는 보도를 보았고, 죽은 자는 죽었던 병원의 영안실에 있으리라는 판단하고 신문의 다음 줄을 못보고 간 것은 내 실수였지요.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몸이 더 바쁘게 움직여서 일은동 삼성의료원으로 갑니다.


생전에 얼굴 한 번, 말 한 번 나누어보지 못한 여인의 죽음, 그 님의 용모를 사랑한 한 것도, 대학 시절에 미팅을 한 인연도 없었으나 떠나기 전 모습을 못 보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MBC FM에서 인터뷰 할 때의 잔잔한 음성으로 대답을 하면서도 단단한 심기가 귀에 새로웠고 이제 다시 혼불이 되어 가버린 그 님에 대한 생각은 애석한 감상만으로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삼성 병원 영안실 입구에는 영안실 호실마다 망자의 이름과 상주의 이름이 디지털판에서 흘러가고 있었지요.

15호실 망자 최 명희, 상주 최용범, 또 누구누구.

나는 문득 작가 최명희 님의 가족에 대한 언급을 기사에서 본 일이 없음을 상기했습니다.

남편도 아이도 없단 말인가?


영안실에는 다른 망자들 틈에서 15실 작가의 조문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럴 수가. 혼불을 사랑한다고 했고 몇 십만 부가 팔렸다는 책의 작가가 유명을 달리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정치인이나, 모리배나 난다 긴다 하는 졸부들의 상가에는 줄 서있던 그 물결은 다 어디갔노? 하다못해 일개 회사의 부장이었던 시절에 내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때도 상주인 나는 너무 피곤해서 " 문상객이 그만 왔으면…. " 하던 판이었건만.


혼불의 아름다운 우리말과 작가 정신을 사랑한다 했건만 각대학교의 국문과 대학생이거나 글줄이나 쓴다는 젊은이들은 길에서 비명횡사를 했단 말인가?

그러나 조용조용한 작가는 번잡한 문상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님의 혼불은 외래 이런 분위기를 더 달게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영안실 입구에는 국화가 한 무더기 있습니다.

나는 한 송이를 집어 듭니다.


님은 40대의 환한 모습으로 웃네요.

영정 앞에 과일이 놓여져 있고, 생명을 앗아간 혼불 10권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는 일배, 재일배, 반배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열어 약속을 합니다.

"한 번쯤 뵙고 싶었습니다. 가신 지금 이제야 뵙니다. 아직 혼불이 남았는데 어찌 벌써 혼불이 가시다니요. 혼불을 아끼고 당신의 흔적을 찾아드리리다. "


그리고는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는 상주들하고 일 배를 합니다.


내 얼굴을 그들은 궁금한 듯 지켜보는군요.

" 혼불 독자입니다. "

" 감사합니다. "

그들 중 한명인 남자 동생인 듯한 이가 내게 머리를 숙입니다.

내가 나서자 한 아낙이 따라 나섰습니다.

나는 그네에게

" 다른 가족은… 결혼을 안했었나요? "

" 홀로 살았습니다. "

"… 암으로 투병하게 되면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임종할 당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

" 아네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밝았어요. "

아낙이 말합니다.


영안실에 이어져있는 문상객들이 머물 장소에는 100여명이 자리할 만했으나 댓명이 앉아 있어 한가합니다.

너른 방 곳곳에는 작가의 살아생전 모습의 사진과 함께 오늘 저녁의 행사를 알리고 있었지요.


작가 최명희 선생 추도의 밤

때 : 12월 14일 월요일 저녁 8시

곳 : 삼성의료원 내 영결 식장

주최 :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혼불을 펴낸 한길사 직원들이 상가의 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 저녁 행사를 위해서 유인물을 봉투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군요.

행사 내용과 작가를 가까이 찍은 사진…. 고개를 좀 숙이고 원고지를 몽블랑 만년필로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소 연출 냄새가 나는 사진이었으나 작가를 야무지고 단단하게 보이게 찍었군요.

그리고 ' 혼불은 나의 온 존재를 요구했습니다.' 라는 인쇄물을 나누어줍니다. 10쪽 글입니다.

작가는 그 글마따나 '혼불'에게 존재를 뺏겼습니다.


나는 접수계 아가씨에게 한 마디를 합니다.

" 방명록에 기록을 해도 될까요? "

작가가 쓰던 똑 같은 몽블랑 만년필을 꺼내들고 

'혼불은 남았는데 혼불이 되어 가시다니요.'

하고 씁니다.

작가의  혼불이 등 뒤에서 너흘대는 듯 합니다.


(199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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