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대신문 20211013]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대학부문 당선작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10-14 15:14
조회
369

해가 뜨기 전에 / 장민기 명지전문대 문창 2

0.

경은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나는 철제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영원한 공범이 되었다.

1.

아빠를 만나야겠어.

미역 줄기를 우득우득 씹다 말고 경은 나를 올려다봤다. 밥을 먹고 있는데도 병실에선 소독약 냄새만 났다. 창 밖에는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병원 뒤뜰에서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들이 군데군데 빛나고 있었다.

만나고 나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볼게.

경은 무서운 걸 본 사람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했다. 하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집을 나온 지는 십 년이 넘었으니까. 다시 아빠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경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용서 못해.

왜?

나를 망쳐놓았으니까.

매번 그런 식이었다. 경이 겁을 먹을 만도 했다.

죽는 사람은 없을 거야.

위로랍시고 그런 말을 하자 경은 못 참겠다는 듯이 눈앞에 있던 내 팔뚝을 잡고 힘껏 깨물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맞은편과 옆의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욕지기를 뱉었다. 내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러자 경도 따라서 웃었다.

경을 처음 본 건 보건소에서였다. 수면제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바람에 상담 프로그램을 받던 중이었고, 팔 주짜리 과정 중 이 주 차였다. 경은 녹슨 대기의자에 앉아 로비 기둥에 붙은 작은 티브이 화면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의 주변으로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거나 내복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쾡한 눈으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경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정수리께가 하얗게 세 있었고 헐렁한 몸빼 바지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노숙인 쉼터가 여기 뒤편에 붙어 있어요.

간호사는 로비에서 경을 보고 있던 내게 그렇게 말했다.

쉼터요?

여성 노숙인 쉼터라고 좀 나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건지, 참나.

간호사는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하다, 놀라 얼굴을 붉히며 빠른 걸음으로 나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상담사인지 의사인지 모를 남자는 매일 감정을 기록하라고 했다.

감정을 기록하는 과정이 선생님이 과도하게 우울감에 빠지거나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생각하게 되는 경향성을 붙잡아 줄 겁니다.

나는 남자가 준 노트에 감정을 기록했다. 우울합니다. 신납니다. 슬픕니다. 흥분됩니다. 죽고 싶습니다. 왜? 왜냐면 우울하고 신나고 슬퍼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울었어요.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종일 울었습니다. 옆 방 사람이 조용이 하라고 벽을 몇 번 쳤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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