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천필만필(공지사항)

20-21일 오후1시30분 "이야기로 듣는 동지"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08-12-14 22:44
조회
3011

사람들은 대부분 원뜸의 종가에서 장리를 빌려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옹골차지 못한 농사 때문에 늘 허기진 농사꾼들은 장리에. 공출에, 지은 것들을 다 바치고는 아무 나머지도 남기지 못한 채. 다음 농사까지의 양식으로 한 됫박의 좁쌀을 애지중지 아껴서 봉다리에 담아 묶어, 천장에 매달아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기껏 호강하여 먹는 음식이란 것이 겨우 콩나물 우거지죽이었다. 멀겋게 풀어진 미음 같은 죽물에 몇 오라기 떠 있는 콩나물 건데기가 그래도 주린 창자를 진기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메주를 안 쓸 수 없고 동지에 팥죽을 걸러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메주는 띄워서 장을 담고, 장을 걸러 낸 된장이야말로 농가의 한 해 살림에 더할 나위 없는 반찬 아닌가. 또한 동지 팥죽은 상서로운 음식이니 흉내라도 내야 한다.(「혼불」 3권 13쪽)





「혼불」은 우리네 세시풍속이 제대로 구현돼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일과 21일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동지축제 기간, 최명희문학관은 실개천 정자 부근(네거리슈퍼 사거리)에서 매일 오후 1시 30분 「혼불」에 묘사된 '동지' 이야기를 시민들과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동지의 유래와 다양한 풍속, 여러 풍경들을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옥마을에서 오래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한옥마을 내 동지의 풍경을 묻고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 일시: 20일 21일 오후 1시 30분
❍ 장소: 한옥마을 실개천
❍ 주최․주관: 최명희문학관
❍ 후원: 전주한옥마을보존협의회, 국토해양부, 전주시, 혼불기념사업회, 극예술연구회 봄날에
❍ 주요 내용(사회: 진명숙․전북대 강사)
 - 이세중 한옥마을보존협의회장에게 듣는 '한옥마을과 동지'
 - 소설 낭독: 동화구연가 및 참가자
 - 한옥마을 주민에게 듣는 '한옥마을 동지이야기'
 - 공연

※ 이 날 행사에 참여한 분들께는 소책자와 기념 연필 등을 나눠드립니다.






후우.
겨운 한숨을 내뱉는다.
그 한숨에, 섣달 그믐밤의 한천(寒天)을 낮게 가리운 구름이 옆으로 밀리면서, 어두운 막 뒤에 숨어 있던 별빛 몇 개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어두울 대로 어두워진 어둠이 절정에 이르러 허리가 휘이며 자시가 기울고, 천지는 시간의 자리를 바꾸려 하는 것이다.
“자시란, 날과 날의 경계에 선 어둠의 극(極)이지만, 또 어젯날은 가고 새날은 아직 안 온 교차 영송(迎送)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니라. 기운이 바뀌는 것이지. 그것이 어찌 하룻날의 시간에만 있는 일이겠느냐. 한 달에도 있고, 일 년에도 있느니.
가령 한 달을 두고 본다면 초하루·그믐이 그 시간이고, 일년을 두고 본다면 동지가 바로 그 시간이다. 왜냐, 그믐밤과 초하루 사이의 자시에는 하늘의 달과 해가 서로 딱 합허게 되니, 합삭(合朔) 아니냐. 해는 위에 떠 있고 달은 밑에 떠, 그 태양 광선에 눌려 태음이 전혀 빛을 못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때다. 하여, 달빛이 없지. 빛을 가두어 버리니까. 그래서 한 달 중에 가장 큰 어둠이 천지를 지배하고 극성한 시간이 이때인 게다. 허나 이 시간을 고비로 정점에 오른 어둠은 기울기 시작하고 달빛은 싸래기만큼씩 길어 나게 된다.
이때로부터 어제의 달은 지나가고 새달이 되는 것이야.
이러한 이치를 일 년 가운데 찾아본다면 동지(冬至) 절서라. 동지라면 너도 아다시피 일 년 중에 밤이, 어둠이 제일 긴 날 아니냐. 태양은 땅에서 가장 멀어져 냉천(冷天)이고, 이 엄동설한 찬 기운에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붙어 녹을 줄을 모르는데, 거기다 밤은 질기게 길어, 천지의 기운이 자시·합삭에 이른 것이 동지다.
허나, 이 동지에, 지나간 기운이 다하고 새 기운이 들어오는, 금년과 명년의 교차가 이루어지니, 동짓날을 지나면 새해로 보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게야. 묵은 어둠이 제 양을 다하고 조금씩 스러져 물러가기 시작하는 때인 때문이다. 바로 이 동지를 고비로 묵은 기운, 추운 기운, 어두운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면서 대신 새 기운, 다순 기운, 밝은 기운이 싹을 틔우거든. 그래서 동짓달 지나오는 섣달은 자월(子月)이라 하는 게다. 자(子)·축(丑)·인(寅)·묘(卯)의 자(子). 십이지(十二支)의 첫 글자를 일 년의 끝달에 붙여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시가 지났다고 한순간에 해가 뜨지는 않으며, 그믐이 지났다고 초하루부터 달이 둥글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동지가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오랫동안 밤은 낮보다 길지만, 이미 어둠의 기운은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가고, 새로 태동하는 광명의 기운은 아직 비록 발아에 불과할지라도 점점 자라나는 것이니.
얼마 가지 않아 수(數)가 차면 이윽고 가장 길었던 어둠을 가장 짧게 만드는 날에 이르게 되리라.
그런 날을 보자면, 어둠을 지그시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다가오는 광명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기다릴 줄은 모르면서 오직 참기만 한다면 터지기 쉬운 것이요, 또 참기는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없다면 그 합벽을 하게 암담한 나날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우주 천리(天理)가 이럴진대, 한 나라의 운명이나 사람의 일생도 이에서 다를 것이 없을 게다.(「혼불」 5권 1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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