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을 지닌 땅

언론에 비친

[전북도민일보 20221114]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 ①인생은 겹으로 살아야 하는 것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2-11-14 11:36
조회
359
최명희문학관과 혼불기념사업회가 2007년부터 진행하는 전라북도 작고문학인세미나는 문학인 스스로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고 격려하며 상처를 쓰다듬는 여정이다. 올해 대상 작가는 수필가 목경희(1927∼2015) 선생이다. 현재 도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수필가 목경희의 삶과 문학’을 큰 주제로 다정하고 섬세한 작가의 수필집을 읽고 쓴 글을 본지에 오늘부터 매주 2회 총 8회 싣는다.
참여 작가는 김근혜(동화작가), 송지희(극작가), 이경옥(동화작가), 이진숙(수필가), 최기우(극작가), 최아현(소설가), 황지호(소설가)이다.

○ 삶에 보내는 가슴 벅찬 위로

목경희의 수필은 단아하다. 그의 문장은 수필을 쓰기 시작한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어 편안하고 정겹다. 힘들었던 시절의 일상을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드러낸 행간은 평온하고 차분하다. 스스로 자신의 수필을 가리켜 ‘서툴게 살아온 삶의 회고록’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글은 내 곁의 것들을 두루 헤아리는 지혜와 깊은 안목을 떠올리게 한다. 목경희의 수필은 서툰 삶의 흔적이 아니라, 모든 삶은 서툴다는 것을 일깨우며 상심하고 힘겨운 이들의 삶에 보내는 가슴 벅찬 위로다.
 
“찬란한 21세기를 바라보며 산다는 게 감사합니다. 펜을 줘서 글을 쓰게 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쓰는 걸 귀찮아 할 수는 없지요. 사람이 산다는 것을 잔인한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란 시간은 모든 것이 고마운 때라는 걸 여든이 넘어서야 알게 됐습니다.”

1927년 완주군 동상면 시평리에서 태어난 목경희(본명 목경상, 1927.05.01.∼2015.11.26.)는 학창시절부터 무척이나 문학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소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인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1941∼1945·현 전주여고)에 다녔을 때는 박계주의 「순애보」, 방인근의 「새벽길」, 박종화의 「대원군」, 박화성의 「찔레꽃」 등 한국소설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못 갔어요. 아버지가 정신대 안 끌려가야 한다고 나 몰래 약혼을 해버렸죠. 공부하고 싶어도 못한 것이 무척 한이 됐어요.”

비교적 유복한 집에서 자란 데다 공부 욕심도 많았지만, 학업을 계속할 순 없었다. 처녀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고 갔던 일제강점기. 딸의 장래가 걱정됐던 아버지는 딸 몰래 약혼을 시켰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엔 삶이 버거웠다. 살림은 물론 병상에 있는 남편과 친정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살았다.
 
“원래 인생은 홑으로 사는 게 아니라 겹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넘어졌을 때 다음을 구상하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던 1945년 모교인 소양초등학교 교단에 섰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 편물(뜨게질) 장사도 했지만, 그의 젊은 날은 ‘패션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남편의 실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양장·한복을 만들어 살림을 꾸린 것이 시작이었다. 전주 중앙동에서 양장점 <순미사>를 운영하며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패션쇼 ‘제1회 목경희 의상발표회’(1969년)를 열었고, 전주에 4층 규모의 건물(1970년)까지 지었다. 스카이라운지를 갖춘 전주 최초의 빌딩이었다. 훗날 ‘전주문화의전당’으로 문화예술인들에게 문호를 넓힌 ‘경희빌딩’이다. 이 무렵은 사회활동도 꽤 활발했다. 양장협회 전북지부장, 여권옹호협회 전북지부장, 가정법원 윤리위원, 기능올림픽 양재 부문 심사위원 등은 1970년 한 해 동안 맡았던 그의 이력이다.
 
○ 평온과 안식을 선사한 글쓰기

순탄치 않은 인생 항로를 겪어오면서 그를 다잡아 준 것은 글쓰기였다.
 
“어떤 느낌이 들 때면 어디든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고통을 글로 쓰면 객관화가 돼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물이 줄줄 새는 집에서도 빗방울 소리를 즐길 여유가 생겼어요. 글쓰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글이 제가 사는 의미입니다. 내 생명이 소진하는 그 날까지 계속 글을 써야지요.”

옷을 만들다가도 재단지 한 귀퉁이에 생각나는 것을 긁적이며 삶의 고단함을 달랬다. 간병을 하느라 병상까지 아울러야 했던 삶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고, 사업에 실패한 뒤에도 미흡했던 자신의 삶을 재단해 글로 정리했다. 유학을 마치고 온 맏딸 혜신이가 암에 걸렸을 때도, 5년여에 걸친 병간호 기간에도 펜을 힘주어 잡았다. 빗물이 줄줄 새는 집의 고단함을 달래주었던 것도 글이었다.
 
“마음이 급하기도 하고, 느긋하기도 해요. 예전에 냈던 책들을 다시 펴내서 수익금으로 어려운 나라의 굶는 아이들을 돕고 싶고, 오래 살아온 만큼 나보다는 시대를 써서 남기고 싶어요.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헤어짐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니까요. 몸의 건강보다 정신의 건강을 돌보며 살고 싶습니다.”

이 마음은 2006년 가을 모교인 전주여고에 소장도서 3,200여 권을 기증한 것으로 이어지며 지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책과 여러 날 한 권 한 권 대화를 나누고 정리해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보냈습니다. 손때가 묻은 정든 책과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데 모교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새 집(모교 도서관)에서 많은 후배에게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그가 기증한 도서는 대부분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받은 것으로, 특히 『전북문학』 창간호(1968년)부터 243호까지 결호 없이 전질이 기증돼 지역문학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았다.
 
“험난한 인생길 용케도 오늘날까지 큰 탈 없이 걸어왔던 것은 사람의 숲이 삶의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서간집 『숲의 향연』은 제 목숨과도 같은 책이에요. 3천여 통의 편지글을 추리면서 더 절절히 깨닫게 됐어요.”

목경희는 사람이 사는 사회를 숲에 비유한다. 숲은 잠시도 침묵하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찬란한 몸짓으로 연출한다. 삭풍이 불어와도 성난 파도가 덮쳐 와도 요동하지 않고 깊이 더욱 깊이 땅속에 뿌리를 내리며 서로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자신을 지킨다. 인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태풍이 불어와서 생나무 가지가 꺾이고 폭우가 쏟아져서 둑을 무너뜨리고 해일이 밀려와서 삶의 터전을 쓸어간다. 평온한 날이 거의 없다. 그런 인생길을 용케도 견딘 것은 글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요즘같이 컴퓨터로 만사를 해결하는 빛과 같이 빠른 찬란한 문명의 바다 그 한가운데서 원고지에 펜으로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쓰는 진부한 편지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에 부대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펜이 창검보다 위대하다는 격언을 믿는다. 따라서 편지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요 우리 인간사회를 보다 아름답고 향기롭게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기를 바란다. … 나는 편지쓰기를 매우 좋아한다. 따라서 나는 날마다 편지를 기다리는 희망에 산다.”

글은 그에게 평온과 안식을 선사했다. ‘세상은 온통 감사할 일’이라고 자주 말한 그는 지인들이 던지는 ‘그리움의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에 ‘우리 집 3평짜리 베란다’라고 수줍게 말하곤 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글을 쓸 수 있고, 작은 꽃봉오리가 맺어지는 모습에서 봄을 실감할 수 있는 생명의 순간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최기우(극작가)
    ―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와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인문서 『꽃심 전주』, 『전주, 느리게 걷기』,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관장.
    ― 본문 중 작가의 말은 언론 인터뷰와 수필을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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