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작가가 다시 세상에 살러 온 집, 최명희문학관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02-16 12:36
조회
2784


아무리 생애가 멀리 멀리 흘러갈지라도 자기 존재의 근원지를 떠올릴 때면 까닭도 없이 핏줄이 저린다. 작가 최명희. 고단한 삶의 여울, 징검다리 둥지와 같았던 전주의 이 집들은 지금 깡그리 사라졌지만, 최명희문학관은 생가(生家) 가까운 자리에서 작가가 살아온 기억의 마디마디를 역력히 담고 있다. 문학관은 세상을 떠난 작가가 이 세상에 다시 살러 온 집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애석하게도 그 동네 이름이 없어졌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의 화원동(花園洞)이다. 아마 동문사거리 근처 어디쯤이었을 이 집에서 나는 대 여섯 살 때까지 살았는데, 거기서부터 내 이승의 생(生)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중략) 아늑하고 화사했던 풍남동 은행나무 골목의 유년 시절과 잠깐 살다 옮긴 전동집에서의 짧은 기억, 그리고 오래 오래 사무쳐 지금도 꿈속에 선연히 나타나는 완산동 냇물가 벽오동나무 무성한 잎사귀 푸르게 일렁이며 나부끼던 집 …. ∥최명희 수필 「기억은 저마다 한 채씩의 집을 짓는다」(『전북의정』 1994년 12월호)

최명희문학관은 진달래와 철쭉이 차례로 피던 2006년 봄, 그가 나고 자란 전주한옥마을에 세워졌다. 작가가 그토록 귀히 여겼던 경기전과 전동성당, 오목대와 이목대가 가까이 있는 곳이다, 아늑한 마당과 소담스런 공원이 있는 문학관은 주 전시관인 독락재(獨樂齋)와 강연장․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非時同樂之室)로 이뤄졌다. ‘독락’이란 당호는 홀로 자신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서 이룩한 문학의 높은 정신을 기리는 의미다. ‘비시동락’은 말 그대로 따로 때를 정하지 않고 노소동락(老少同樂), 교학상전(敎學相傳)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최명희와 전주, 문학과 전주, 문화와 전주가 만나는 자리들로 이곳은 늘 부산하다.

소설 「혼불」을 중심으로 한 남원 사매면의 혼불문학관과 달리, 작가를 중심으로 구성한 전주의 문학관은, ‘내 마음의 전주에 그 옛날의 고향 하나를 오밀조밀 정답게 복원해 보고 싶어’ 했던 작가의 세세한 삶의 흔적과 치열했던 문학 혼을 엿볼 수 있으며, 고향에 대한 애정까지 확인할 수 있다. 최명희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 흔전한 말의 잔치를 이곳에서 누리다 보면, 한 인물의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지 사뭇 깨닫게 된다.

최명희문학관은 전주에 처음 세워진 문학관이다. 전주시에서 건설해 민간 전문가에게 운영을 위탁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의 관심은 높고 깊다. 전국 유명 문인과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각 대학의 국문과․문예창작과 학생, 작가를 꿈꾸는 문학도의 방문이 끊이지 않은데다, 초․중․고교생들의 현장학습 등 문학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명희의 삶과 문학의 혼이 독자뿐 아니라 행인들을 자석처럼 당기기 때문이다. 최명희의 정갈한 고통과 처연한 아름다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관람객들로 인해 더 빛나고 있다.

낮은 담과 솟아오른 처마, 아기자기한 골목. 한옥마을과 최명희문학관은 이제 꽤 잘 어울린다. 문학관에서 소설 「혼불」을 빌려 읽은 한옥마을 주민들이 백여 명도 넘었고, 인근의 한 어르신은 불편한 몸으로도 열흘도 넘게 찾아 전시장 문구들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문학관의 작은 연못은 동네아이들의 특별한 놀이터이자 생태학습 현장이 되기도 하고, 화장실이 집보다 더 깨끗하다며 매일 볼 일 보러 들리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문학관이 공공문화시설의 의미를 넘어 생활기반시설로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셈이다.

최명희는 아름다운 조각품을 볼 때, 그 아름다운 조각품이 태어나기 위해 떨어져나간 돌이나 쇠의 아름답고 숭고한 희생을 우러르며 가슴 아파했고,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동백꽃만큼 그 둥치에 낀 이끼의 생명력을 소중히 여겼다. 문학관 운영은 이러한 그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시민과 함께 연구하고 학습하며 감동을 주고받는 도시형․시민밀착형 문학관, ‘사당’처럼 적막한 곳이 아니라 문학강연․토론회․세미나․문학기행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서 뜀박질하는 문학 생산의 거점이며, 단순히 한 개인의 기념관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문학관, 민족혼이 춤추는 문학관으로 재현되고 있다.

최명희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오래오래 나의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를 살피는 일은 작가의 유지를 잇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최명희문학관을 향한 호젓한 발걸음. 이 그리운 마을의 한 집에 이제 당신이 있을 것이고, 당신의 마을 한 집에는 아마도 작가 최명희가 있을 것이다.

∥글: 최기우 (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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