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고창기행 1 … 낙화(洛花) 그곳에도

작성자
Oz
작성일
2007-10-27 16:06
조회
2365


파요 파요 보고파요.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는 김용택 시인, 도솔암 너머 마애불 앞 한 동백 가지에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고 흰 눈밭에 울컥 각혈을 하듯 가슴도 철렁 떨어졌다는 박남준 시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 말하면서 동백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던 최영미 시인...

선운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동백꽃이다. 그렇다고 선운사 동백꽃이 다른 지역의 동백에 비해 특별히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우연히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이름 없는 마을의 동백에 비하면 선운사 동백꽃은 지천에 깔려 흐드러지다 못해 허드레지게 피어있다. 하지만 분명 애처롭다.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봄이면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데도 그토록 애잔한 까닭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쓴 사찰의 기둥과 빛바랜 단청, 혹 천년의 세월이 말해주는 아련함이 아닐까 싶다. 고작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천년의 삶은 슬프고 아름다운 것이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선운사에서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니 그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낙화(洛花) 그곳에도

작가 최명희가 강연을 하면 고창 선운사의 동백꽃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작가의 절친한 친구인 이금림 작가 역시 선운사의 동백꽃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그리워했고 작가가 암으로 투병 중에 이금림 작가에게 손님(작가는 암을 손님이라 했다.)이 가시거든 동백꽃 지천으로 피어있는 선운사에 다시 한 번 가자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 번 보면 그만 홀리어 사로잡히고 마는 이 꽃은, 피어 있는 모습도 좋지만, 질 때 더욱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목숨의 절정에서 선혈처럼 툭, 떨어지지요. 그 떨어진 꽃꼭지 주워서 다시 갖다 붙이면 금방이라도 피가 돌아 역력히 살아날 것만 같은 낙화.

(강연록『나의혼 나의 문학』中)

새빨간 동백꽃은 피어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시들기 전 툭, 하고 꽃모가지가 떨어진다. 땅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이 아름다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낙화(洛花), 애연(哀然)함이자 미(美)의 절정이다. 삼천궁녀의 낙화, 논개의 낙화, 그리고 작가 최명희의 낙화까지 모두 슬픔이고 아름다움이다.

꽃도 너무 많이 피면 꽃 몸살을 한다는데 작가 최명희의 낙화는 『혼불』로 인한 글 몸살로 인한 것은 아닐지, 정열로 불타 황홀하게 제 자신을 태워, 시들기 전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낙화(洛花) 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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