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문학관의 선물(글과 영상)

[글] 혼불 완독을 위한 안내서_ 「혼불」 4권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3-03-08 16:51
조회
586
혼불은 총 5부로 구성된다. 4권은 2부 평토제에 해당되며 주로 노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안 이씨 집안 씨종인 침비 우례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비의 역사, 종류, 생활상, 복식, 삶의 방식이 서술되어 있다. 우례 이야기는 조선 시대 4대 간신 중 하나인 유자광으로 이어진다. 유자광의 탄생 비화와 사후 이야기가 거멍굴 사람들의 입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한편 춘복은 공배가 들려주는 변동천하 이야기에 강모에 정절을 잃은 강실을 아내로 맞을 결심을 한다. 춘복의 야심을 돕는 옹구네와 함께 작당모의를 하는 동안 강모는 중국 봉천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떼어낸 줄 알았던 오유끼가 기차에 타게 된 걸 알고 강모는 아연실색한다. 오유끼의 무임승차로 세배의 기찻삯을 물어 준 강모는 그녀와의 질긴 운명을 예감한다.
  • 이야기
우례는 곱상한 얼굴처럼 바느질 솜씨 좋은 매안 이씨 집안의 침비다. 그녀는 18살에 이기표의 아들 봉출을 낳는다. 종의 운명이라는 것이 결국 주인의 뜻대로라지만 우례 같은 여종의 운명은 더욱 가혹했다.

거멍굴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우례 이야기다. 그들은 우례가 밴 아이를 생각하며 유자광을 떠올린다. 유자광은 조선 4대 간신으로, 그의 아버지 유규는 낮잠을 자다 백호가 입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꿈을 꾼다. 유규는 길몽이라는 판단에 종을 통해 자식을 얻는다. 그것이 얼자 유자광이다. 유자광 이야기를 듣던 공배네가 춘복의 덥수룩한 머리를 지적한다. 공배가 부모가 물려준 머리를 함부로 한다고 하자 춘복은 부모가 뭐 해준 게 있다고 머리도 제 맘대로 하지 못하냐며 대거리를 한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평순네가 지관의 달걀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이야기는 자연스레 변동천하로 이어지고 춘복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세상을 뒤집을 엄청난 변화를 뜻하는 말로 춘복에게는 신분 전복이다. 강실을 이용한 변동천하인 것이다.

춘복의 여자 옹구네는 다신 자신의 집에 발걸음 하지 말라는 말에 춘복의 말에 그의 야심을 눈치를 챈다. 상황대처 능력이 빠른 옹구네는 그 일을 도울 테니 자기를 본처로 인정해달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곤경에 빠뜨리겠다는 협박을 한다.

옹구네가 덜미를 쥐고 다그치는 말에 춘복이는 눈을 떨군다.∥ 「혼불」 4권 234쪽

그즈음 청암부인의 삼우제가 치러진다. 이기채는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낸다. 사당에는 혼백을 부르듯 향이 피어오르고 지난 청암부인의 장례 절차가 서술된다. 청암부인이 사망했는지조차 모르는 강모는 강태와 함께 중국 봉천으로 떠난다. 그런데 헤어졌다고 생각한 오유끼를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다. 중간에 내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유끼는 강모에게 무임 승차비를 내게 한다. 두 사람은 강태와 함께 심양에서 내린다.
  • 인물 들여다보기: 춘복 

“저놈 눈썹이 칼눈썹이라. 검미(劍尾). 첨도미(尖刀眉)라 허는 것이, 제 속에 따로 두고 남한테는 드러내지 않는데다 성질이 사납고, 포악하고, 성급하고, (중략) 꽁지에 가서 선모(旋毛)까지 있으니 설상가상이요.” ∥ 「혼불」 4권 177쪽

기표가 춘복의 생김새를 평가한 부분이다. 그러면서 반골의 기질을 가졌기에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눈썹이 달팽이처럼 도르르 말려 있는 것이 영웅 기질이 있어 보인다는 기응의 말에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라며 기표는 기응의 말을 자른다. 기표의 예언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춘복은 변동천하를 꿈꾼다.

춘복의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인물이다. 기표 말대로 양반들에게는 경계 대상이다. 그는 신분이 무엇이기에 대대로 자식까지 설움을 받아야 하냐며 혼인을 거부한다. 춘복이 말대로 규정된 신분은 제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극복 불가능하다. 씨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전복시키기 위해 춘복은 강실을 이용해 양반 자식을 낳아보려 한다. 춘복의 “달 봤다아아.”는 신분제로 인한 응어리를 토해내는 소리였다.
  • 인물 들여다보기: 옹구네
옹구네는 거멍굴에 사는 과부로 입담이 거칠고 행동거지가 거침없다. 말로 싸워서 못 이기는 자가 없고 행동이 민첩하다.

공배네는 춘복에게 뱀처럼 자꾸 안기는 옹구네를 못마땅해한다. 춘복을 자식같이 생각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다.

춘복은 두 사람 사이에서 무덤덤하다. 옹구네는 그런 춘복이 야속하다. 공배네가 어미 노릇 하며 자기를 얕잡아 보는 것도 그렇거니와 같이 살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매번 남 대하듯 보는 표정 때문이다.

그러다 춘복이 강실을 통해 변동천하를 꿈꾸는 걸 알게 되자 배신감에 치를 떤다. 저를 여태까지 챙기고 보듬어준 사람이 누군가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옹구네는 잔머리가 비상한 여인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춘복을 곁에 두기 위해 춘복을 회유, 협박한다. 그 방법이 하도 절묘해 춘복은 옹구네의 제안에 귀가 솔깃한다.
  • 주목할 내용
4권 10장 <귀천>에서는 청암부인이 고리배미에 있는 솔숲을 두고 아들 이기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솔숲의 풍경이 차고 넘치게 좋은데도 불구하고 보는 눈을 갖지 못한 자들로 인해 정자 하나 없이 버려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분별을 하게 되고, 눈에 격이 생겨야 그 격에 이르려고 부지런히 손을 익힐 것 아니냐<중략> 눈이 낮은 사람은 결국 하찮은 몰풍경을 벗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사람은 눈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우리 사람의 정신 속에도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있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 하지.∥ 「혼불」 4권 11쪽

청암부인은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배움’을 강조한다. 배움은 정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다음 세대의 정신의 등을 밝히는 길이라고 했다. 배움을 게을리하면 결국 천인이 되고 만다면서 자연스레 노비 이야기를 한다.

노비의 역사와 노비의 종류, 궁궐과 민가에서 일하는 노비의 명칭과 차이, 노비 이름에 얽힌 이야기, 송병선과 복남이 이야기를 통해 최명희 작가는 노비들의 발자취를 짚어가며 그들의 삶에 의미부여 한다.

결국 청암부인이 말하는 천인은 신분에 있는 게 아니다. 양반이라 하더라도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노비만도 못한 자라는 걸 말한다. 노비 또한 자신이 따르는 양반들의 태도를 배우고 익힌다면 양반 못지않은 몸가짐과 정신의 토양이 비옥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얼자 출신인 유자광은 변동천하를 이루었다. 그러나 결국 역적이 되어 귀양을 가고 부관참시를 당하고 집안을 몰락시켰다. 정신적 토양을 다듬는 진정한 배움에는 소홀 탓이 아닐까 싶다. 신분을 전복시키고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인물 유자광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타파하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18장 평토제에는 청암부인의 장례 절차가 자세히 나온다. 이를 두고 매안 이씨 문중의 어른인 이헌의와 이징의의 대화가 재밌다. 오랜 당내친이지만 성품이나 생각, 행동이 완연히 다른 두 사람은 청암부인의 초종장례에 관해서 이견을 보인다.

이징의는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시체를 놓고 겉치레 상례를 치르는 것은 허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국 순임금과 요임금 예를 들며 장례는 간소화하여 산 사람들에게 이롭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남평 이헌의는 지금의 장례문화는 오랜 세월 내려온 것으로 그것에는 다 그만한 뜻이 있기에 지금까지 행해졌음을 말한다. 만약 그것을 잘못된 관습이라고 치부해 간소화시키고 외면한다면 전통은 이어지지 못하고 정신마저도 무너진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금덩어리라도 모양을 만들어야 제대로 쓸 수가 있고. 천 년을 가도 만 년을 가도 변함이 없을 고귀한 정신이라도 일단은 몸이라는 옷을 입어야 거기에 담겨 온전한 빛을 낼 수 있는 법. 만일 몸 없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유령이요, 정신없는 몸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고깃덩어리 아니겠는가. <중략> 시신을 지극히 공경해서 존엄하게 모시는 것은, 적음을 헛되이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일 것이야.”∥ 「혼불」 4권 285쪽

이징의는 이에 반박한다.

“허나 종신토록 그 법식에 매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요. 처음에는 아무리 그를 엄수해서 연습에 골몰한다 해도 궁극에는 법식을 떠나 자유자재로 변화무궁해야만, 잎사귀 하나를 그리거나 점 하나를 찍더라도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달라지는 게지요.” ∥ 「혼불」 4권 28쪽>

남평 이헌의가 대답한다.

“과정도 없이 결과에 이르고저 하는 것은 걷지 않고 천리를 가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느니. 절차마다 정성을 다하는 것이 어디 가서 닿을지를 모르니,<중략> 죽어서는 죽어서 가는 길에 대한 서로의 인의예지가 있는 것이야. 이러한 노릇이 바로 마음 가진 인간이 저절로 취하게 되는 ‘짓’이며, 발전하면 ‘도리’가 되는 것이리.”∥ 「혼불」 4권 287쪽

최명희 작가는 두 사람의 논쟁을 통해 전통을 바르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배움을 통해 정신을 수양하여 보는 눈을 키우고 실천하는 행동력을 키우라고 말한다. 참뜻을 알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올바른 정신으로 이어져 과하거나 부족한 것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이어져 가는 것이다. 전통을 자신의 부나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콩깍지가 튼실해야 안에 든 콩이 튼실한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 글쓴이: 김근혜(동화작가)_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로 등단, 『제롬랜드의 비밀』『나는 나야!』『유령이 된 소년』『봉주르 요리교실 실종사전』『다짜고짜 맹탐정』등을 냈다. 최명희문학관 상주작가(2021년∼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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