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님하

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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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혼 나의 문학_최명희

이 글은 魂불의 작가 최명희 씨가 1995년 10월 31일 스토니 브룩 뉴욕주립대학교 한국학과 초청으로 대학에서 강연한 것과 스토니 브룩 한국학회와 미주지역 문인협회가 공동주관하여 뉴욕에서 강연한 내용을 자신이 정리한 것입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오로지 소설을 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던 제가 대한민국 문단에 공식적으로 등단한 것은 1980년 1월 1일,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하면서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저의 생애를 꿰뚫고 저의 덜미를 잡은 소설에 붙들린 것은 그 이듬해 1981년 5월 28일,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000만원 고료 장편소설 모집에 ‘魂불’ 제1부가 당선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당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계속 쓰여 지고 있는데, 많은 상금을 받고 당선한 작품을 이토록 오랜 세월 이어 쓰는 형태의 이상한 작업은 아마 달리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魂불’의 자료를 수집하고, 구상, 구성, 준비한 시간을 빼고, 원고지에 첫 줄을 쓰기 시작한 것이 1980년 봄, 4월이었으니 지금까지 만 15년 6개월이 흘러 달수로 18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월간 시사종합지 ‘신동아’에 제2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9월호부터였는데 만 7년 2개월간 집필하고 마침 이번 10월호를 끝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러면 소설이 끝났는가, 생각하겠지만 ‘끝’이 아니! 고, 먼 길을 가는데 신호등이 바뀌는 네 길거리에 잠시 멈추어 선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제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멀리 가야 할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엄청난 자석의 강물 같은 이 흐름은 깊고 큰 힘으로 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 위에 저의 사랑과 슬픔과 그리움, 절망, 그리고 모든 부르고 싶은 것들을 띄웁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이야기를 띄우고 싶습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기후와 풍토, 세시풍속, 사회제도, 촌락구조, 씨족, 역사, 관혼상제, 통과의례, 주거형태, 가구, 그릇, 소리, 빛과 향기, 달빛, 어둠을 빨아들여 흐르는 강물이 되기를 … 중략 …

시카고 강연_최명희

작가 최명희가 소설 혼불에 담은 사상

1.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나는 어려서 집안 아저씨한테 이런 말씀을 들었다. “저 나무는, 땅 위의 둥치와 가지 모양, 길이, 그대로 반대편 땅 속에 똑같은 모양, 길이로 뿌리를 내린단다.” 바꾸어 말한다면 땅 속의 뿌리가 한 치 자랄 때 땅 위의 가지도 한 치 뻗어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뿌리는, 제 힘을 다하여 자랄수록 눈부시고 아름다운 지상의 햇볕 속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깊고 어두운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이 말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의 삶에 큰 힘을 주고 있다. 아, 사람의 생애도 그러하리라.

절망이 어떻게 삶의 위로가 되고, 상처가 어찌하여 생의 텃밭이 되는지를 깨닫게 하는 삶의 역설. 내가 어둠 속에서 눈물로 눈물을 덮으며 캄캄하게 울고 있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영혼의 가지는 그 깊이만큼 더 높은 곳으로 자라고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나의 눈물의 뿌리가 어둠의 핵에 가 닿으면, 내 정신의 가지는 저 찬연한 빛의 핵에 이를 것인가. 지상의 아름드리 거목 둥치와 용틀임하는 지하의 거대한 뿌리가 서로 위와 아래, 안과 밖으로 나뉘지 않고 대칭으로 한 덩어리를 이룬 입체적인 그림은 나에게 항상 풍요로운 상징을 안겨 준다. 어둠이 빛이고 빛이 어둠인 세계.

이 소설은 당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계속 쓰여 지고 있는데, 많은 상금을 받고 당선한 작품을 이토록 오랜 세월 이어 쓰는 형태의 이상한 작업은 아마 달리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魂불’의 자료를 수집하고, 구상, 구성, 준비한 시간을 빼고, 원고지에 첫 줄을 쓰기 시작한 것이 1980년 봄, 4월이었으니 지금까지 만 15년 6개월이 흘러 달수로 18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월간 시사종합지 ‘신동아’에 제2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9월호부터였는데 만 7년 2개월간 집필하고 마침 이번 10월호를 끝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러면 소설이 끝났는가, 생각하겠지만 ‘끝’이 아니! 고, 먼 길을 가는데 신호등이 바뀌는 네 길거리에 잠시 멈추어 선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제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멀리 가야 할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엄청난 자석의 강물 같은 이 흐름은 깊고 큰 힘으로 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 위에 저의 사랑과 슬픔과 그리움, 절망, 그리고 모든 부르고 싶은 것들을 띄웁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이야기를 띄우고 싶습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기후와 풍토, 세시풍속, 사회제도, 촌락구조, 씨족, 역사, 관혼상제, 통과의례, 주거형태, 가구, 그릇, 소리, 빛과 향기, 달빛, 어둠을 빨아들여 흐르는 강물이 되기를 … 중략 …

– 1996년 작가의 시카고 강연
<소설 “魂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 과정> 중에서 발췌

* 2부 4권 15장 <박모> 중에서

    가지는 천지에 내리는 어스름의 어둠을 온몸으로 빨아들여 지하의 뿌리에게로 내려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둥치가 뿌리라면, 거꾸로 뿌리는 나뭇가지일 것이다. (중략) 지하의 뿌리한테는, 꽃 피고 새 운다는 지상이 오히려 흙 속일 것이요, 거기 우람하게 서 있는 나무의 무성한 가지는 거꾸로 뿌리라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 뿌리는 어둠이 휘황하고, 햇빛은 캄캄할 것이다.

* 3부 5권 7장 <달 봤다아> 중에서

    보름날의 보름달은 누가 보아도 이지러진 데 없는 온달이지만, 칠흑 속의 먹장 같은 그믐밤에 그 무슨 달이 뜬다고 온달이라고 하는가. 그렇지만 보름의 달은 지상에 뜨는 온달이요, 그믐의 달은 지하에 묻힌 온달이다.

* 3부 5권 9장 <액막이 연> 중에서

    반듯하고 온전했던 하얀 백지는 그만 한순간에 가슴이 송두리째 빠져 버려 펑 뚫리고 말았다. 종이의 오장(五臟)을 무참하게 도려내 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중략) 연이야 무슨 생각이 있을까마는 그렇게 제 가슴을 아프게 도려낸 애를 곱게 곱게 물들이어 이마빼기에 붙이고. 그 어느 연보다 더 휘황한 빛깔로 자태를 자랑하며 이름까지 지어 받아, 소원을 싣고 악귀를 쫓으면서, 높고 높은 하늘의 먼 곳으로 나는 것이다. 얼마나 서럽고도 아름다운 일이리. 사람도 그러하랴.

2. 혼불은 존재의 불, 혼불이 살아있는 시대를 꿈꾸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몸에서 혼불이 먼저 빠져나가고 혼불이 빠져나가면 사흘 안에는 반드시 초상이 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야기가 신화냐 미신이냐의 차원을 넘어서서 정말로 한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형체는 살아있는데 혼불은 이미 나가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자기가 혼불이 나갔는데도 혼불이 나간 줄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 개인에 한한 것이 아니라 집안이나 혹은 지역사회나, 나라나 혹은 어떤 한 시대나 세계나 혹은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이나 인간관계에서나 혼불이 환한 상태도 있을 것이고 이미 불은 나가버렸는데 껍데기만 남아서 자기가 산 줄 알고 있는, 그러한 상태도 있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아주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킨 것은 우리 역사 가운데서 제일 어둡고 암울했던 시절인 일제 강점기에 외부로는 국권을 잃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지키며 살고 있는 한 가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 잃어버린 상태에서 진정한 자기 삶을 일궈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1997년, 11회 단재상 수상소감 중에서)

* 3부 6권 18장 <얼룩> 중에서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지. 껍데기만 살었다고 목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살어 있으면서도 죽은 것은 제가 저를 속이는 것이야. 살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죽어 버린 것이 세상에는 또한 부지기수니라. 어쩌든지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서 목숨을 죽이지 말고 불씨같이 잘 보존허고 있노라면, 그것은 저절로 창성허느니.” 목숨이 혼(魂)이다. 혼이 있어야 목숨이야. “잘 알겠습니다.” “어쩌든지 마음을 지켜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곧 목숨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을 잃어버리면 한 생애 헛사는 것이야.” “예.”

3. 끝없이 순환하는 우주의 자연이 주는 평화 동서남북이 아니라 동남서북

* 5부 9권 2장 <체리암(滯離巖)> 중에서
“아, 그런데, 스님. 각 존위의 방위 서신 위치가 동, 서, 남, 북이 아니고, 동, 남, 서, 북으로 되어 있습니까?” “예. 이 세상의 방위를 둥그렇게 본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방위를 서로 반대 개념, 즉 대칭으로 짚은 것이라면 동·남·서·북은 원으로 짚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동·서·남·북으로 방위를 보면 해가 뜬다, 해가 진다, 춥다, 덥다, 밝다, 어둡다, 이런 식으로 분류하고 나누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동·남·서·북 방위는 해 뜨는 동쪽에서 출발하여 해가 점점 길고 밝아지는 남쪽으로 이동하고, 다음은 해가지는 서쪽으로 갑니다. 그러고 나면 밤이 오지요. 북방입니다. 그리고 북방은 동방과 나란히 있지요. 어둠이 고요히 우주와 만물을 품어 주면 이윽고 해 뜨는 아침이 옵니다. 그래서 동·남·서·북으로 이동하는 것은 우주의 자연이 주는 생체 방위의 평화와 순리가 있지요. 우리의 몸에 맞는 방위 감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방위에는, 모든 것이 옆에 있고 동등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방위를 짚는 데도 우주를 짚는 손.

4.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자웅동체로서의 거대한 여성성

나는 여성이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성은 그 어둠과 쑥과 마늘로 인하여 보다 강력하고 근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술을 익히듯 어둠을 발효시키며 이제 ‘사람’이 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魂불”을 통하여 수많은 여성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열아홉에 혼자가 되었거나, 남편에게 소박을 맞았거나, 남편이 있어도 유명무실하다. 바깥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국권을 잃어버려서 이미 나라의 부성(父性)을 상실한 시대, 남성은 자신을 올바로 바칠 대상을 빼앗긴 채 흔들리는데, 안으로는 남편(남성)이 없는 집안의 여성들이 지금까지의 통념적인 여성 역할에서 벗어나 남성의 몫까지 감당하며, 한 몸에 두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魂불” 속의 여인들은 남편 없는 집안을 서릿발처럼 남성적인 틀로 세우고, 그 틀 안의 세계는 다사로운 모성적인 정감으로 채운다. 그리고 말한다.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그들은 어둠이 두렵지 않다. 천지에 음(陰), 양(陽)이 있는데, 하늘은 ‘양’이요 땅은 ‘음’이다. 그러나 하늘이라고 오직 양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땅이라고 해서 오직 음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도 음·양이 두루 있고 땅에도 음·양이 고루 있다. 사람 또한 남자라고 오로지 양이 아니요, 여자라고 해서 다만 음이 아니니. 남자에게도 음·양의 기운이 함께 있어 아버지가 엄하고 강하지만 부드러울 때는 어머니보다 자상하며, 여자에게도 음·양의 기운이 같이 있어 어머니가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아버지보다 엄하고 강할 때가 있다. 이처럼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융합하여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相生)의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천지도 음양으로 나뉘기 전에는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기에 나는 어쩌면 음양으로 나뉘기 이전에 음양을 한 몸에 조화롭게 갖춘 자웅동체(雌雄同體)로서의 거대한 여성성을 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 1996년 작가의 시카고 강연
<소설 “魂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 과정>

해외(강연)활동_최명희

기본 설명

17년 동안 한 작품에 몰두했던 작가는 작업 틈틈이 많은 강연을 했다. 글쓰기 못지않게 말솜씨도 달변이었던 작가는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 강연으로도 이름 높았다. 작가는 <혼불> 의 연재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인 94년에서 95년까지 매우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였는데 특히 뉴욕, 시카고, 일리노이 등 미주 지역 독자들과의 조우는 감동적이었다. 해외에서 모국어에 목말라 있던 교포들은 작가의 강연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재차 초청 강연회를 열만큼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강연 당시 사용한 교재는 대학에서 고급 한국어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외 강연요청이 있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더는 이루어지지 못해 많은 이의 아쉬움을 샀다.
1994년 2월 미국 아바나 샴페인 일리노이 대학의 동아시아태평양 연구센터 초청으로 열린 여성작가 심포지엄에 강사로 초빙되었다. 강연의 주제는 “소설 <혼불> 을 통해 본 한국의 페미니즘과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과정”이었다.
1994년 2월 미국 시카고 대학의 ‘한국을 사랑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모임’ 초청으로 “소설 <혼불> 의 시대적 배경과 작업과정”에 대해 강연하였다.
1994년 3월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 한국학회의 초청으로 강연이 있었다. 강연의 주제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 이 강연에서 쓰였던 <나의 혼, 나의 문학> 은 나중에 한국학과의 고급 한국어 교재로 채택되었다.
1995년 10월 미국 시카고 대학 노스팍 칼리지 한국학연구소 / 아이오와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 한국학회 및 미국 동부 문인협회 초청으로 두 번째 미주 지역 순회강연 길에 올랐다. 강연의 주제는 “소설 <혼불> 에 나타난 한국의 여성성과 문학적 상상력”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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