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거미, 먹이 사슬

작성자
Oz
작성일
2007-07-11 10:17
조회
2840


거미, 먹이사슬

6월 하순은 흐린 날씨가 많아지고 비오는 날이 잦아진다.

장마가 오기 전 청소를 해야겠다며 아침부터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 하는 곳이 한옥건물에 지하 강연장까지 있는 곳이라 요령껏 눈가림 청소를 했다가는 눈덩이처럼 일이 불어나기 십상이라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청소도구를 가지고 각자 맡은 구역을 쓸고 닦는 모습이 잘 훈련된 군사들 같다.

지하 강연장으로 내려가는데 처마 쪽에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는 거미줄이 보인다. 은사로 만든 실 마냥 햇살에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 예쁘기도 하고 막상 있어야 할 거미가 보이지 않아 귀찮기도 해 못 본 척하고 강연장으로 내려갔다.

청소가 끝나가자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거미줄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내고 있던 터였다. 한참을 쉬고 다시 지하 강연장을 내려가다 처마의 거미줄이 생각나 처마 밑으로 갔다. 그런데 거미줄에 하얗고 작은 나비 한 마리가 걸려있었다. 거미라는 녀석이 슬금슬금 사냥꾼의 여유 있는 몸짓으로 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아까 거미줄을 치웠다면 나비는 여전히 팔랑팔랑, 날개 짓하며 날아다니고 있었을 것 아닌가. 한 순간의 귀찮음이 화를 불렀구나 싶었다. 나비가 나 때문에 죽는구나 생각하니 거미라는 녀석이 괜스레 미워져 대나무 막대기를 가져와 거미줄에서 거미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끝장을 보겠다고 발을 치켜들었다.

“죽일 필요까지 있을까?”

순간 내가 거미를 죽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살기위해 본능적으로 거미줄을 치고 나비를 잡은 것인데 내가 거미를 나쁘다고 탓하며 죽일 권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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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와 나비, 내가 한 행동,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올바른 행동이었을까? 거미줄을 치워야 했을까? 그냥 놔두고 지켜봤어야 했을까? 아니면 나비의 복수를 한다며 가차 없이 거미를 밟아서 죽였어야 했는가? 어떻게 해도 거미와 나비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비를 살리기 위해 거미줄만을 치웠다면 거미는 또 다시 거미줄을 칠 것이고 언젠가 그 거미줄에 나비가 잡혔을 것이다. 나비를 위해 내가 거미를 죽였다면 결국 하나의 생명이 죽는 것이다. 결국 생명 하나가 세상에 사라지는 것은 똑같다.

누군가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자연은 생명을 그렇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먹이사슬에 관해 배운다. 최상층에는 호랑이와 독수리와 같은 육식동물이 있었고 최하층에는 벌레가 있었다. 세밀하게 따진다면 그 층층마다 또 다른 먹이사슬이 존재하겠지만 큰 먹이사슬에서는 최상층에 육식동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을 그려놓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이라며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먹이사슬에 대한 잔인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자신보다 힘없는 것을 죽이고 먹는다. 죄책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의 잔인함이다.

내 먹이사슬의 위치를 생각해보고 최상층에 있을 그 사람이 얄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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