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허브

작성자
Oz
작성일
2007-07-28 11:09
조회
2508



학관 뒤편 혼불의 언덕에는 여러 꽃이 피어있다. 함박눈 같이 동글동글하게 피어있는 노란 소국, 쌀눈같이 작고 하얀 이끼꽃, 붉은 빛과 연분홍이 잘 어우러지는 사랑초,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 봉숭아, 행운의 상징 크로버 그리고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허브까지.

역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허브다. 작은 화분에 심어졌던 허브를 땅에 심고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줬다. 허브가 무럭무럭 자라더니 애플민트에 꽃이 폈다.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해 더욱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허브의 종류는 애플민트, 로즈마리, 레몬밤, 그 중 가장 열성적인 녀석은 애플민트다. 그러다보니 다른 허브보다 애플민트에 더 신경이 쓰였고 다른 허브들 역시 더 잘 자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그런데 왠지 3가지의 허브가 같은 곳에 심어져 있는 것도 그렇고 좁은 장소에 너무 많은 종의 허브가 심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레몬밤과 로즈마리를 옮겨심기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레몬밤부터 시작했다. 옮겨 심을 땅을 새로 갈고 비료도 주고 물도 흠뻑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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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여기가 너희 집이야.」

로즈마리는 노란 소국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온 몸이 허브 향기로 가득했다. 새집에서도 잘 자라야 한다며 땅을 꾸욱, 눌러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브들이 조금씩 죽어가는 듯 했다. 이상하게 힘이 없어보였다.

「왜 저러지? 아직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가?」

로즈마리와 레몬밤은 옮겨 심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애플민트도 힘이 없었다. 그리고 옮겨 심었던 레몬밤이 죽어갔다. 소국 옆에 있는 로즈마리도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물도 주고 썩은 가지도 잘라주고 비료도 줬지만 변화가 없었다. 애플민트 역시 힘이 없어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도 고향을 그리워 향수병에 걸려 죽는데 하물며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인데 함부로 옮겼으니 죽는 것이 당연했다. 애플민트도 같이 있던 친구의 죽음을 알아서 일까, 그래서 힘이 없어 자신도 죽어가는 것일까?

「내 실수다. 내가 죽였구나.」

죽어버린 허브를 땅에서 뽑지 못하고 여전히 심어두고 있다. 미련이 남아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뽑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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