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김일주 선생님의 기사가 있어서 ...

작성자
Oz
작성일
2008-01-04 09:28
조회
4112

좋은 기사가 있어서 글 대신 올려봅니다.
말미에 최명희선생님 이야기하고 문학박물관 이야기가 나오네요. ^^


"40년간 문인 사진만 8만장, 운명처럼

찍어왔죠"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40년간 문인 사진

찍어온 김일주 씨

[ 2007-12-20 14: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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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명동백작’ 이봉구 작가의 생전 모습부터 들판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채 생각에 잠긴 박두진 시인과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시는 천상병 시인의 모습. 또, 작고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외출한 피천득 선생의 생전 모습까지…. 지난 17일부터 열리고 있는 ‘한국문학 추억의 작고문인 102인전’에 가시면, 우리 문학사를 빛낸 많은 문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사진전을 연 사진작가 겸 소설가 김일주 씨는 40년 동안 문인들과 함께하며, 문인들의 일상을 필름 8만 여 장에 담아 왔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문인들과 따뜻한 인연도 많이 맺었지만 처음에는 문인들에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불청객 취급을 받기도 했다는데요. 심지어, 김지하 작가의 출감 축하 술자리에서는 기관원으로 오해를 받아, 웃지 못 할 봉변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김일주 씨가 40년 동안 문인들의 사진을 찍어온 사연을 12월 18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문인들의 산 증인, 사진기록 40년





▶ 소설가로 등단하신 게 언제인가요?

66년도에 갓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 오영수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 ‘산령제’라는 작품이 현대문학에 실렸어요. 소설가들 사이에서는 개점휴업이라고 하는데 이후에 등단만 하고 작품은 별로 쓰지 못했어요.

제가 66년 등단 이후에 경기일보 문화부 기자로 들어갔어요. 68년도에 제가 상당히 존경하는 조지훈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통신이 왔는데 사진이 없어요. 조지훈 선생님 같은 큰 작가의 사진이 안 따라온 거니까 사진 구하려고 여기 저기 알아봤어요. 평론가들한테도 알아보고 심지어 서울에도 알아봤는데 큰 신문사에서도 좋은 사진을 구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조지훈 선생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작가들도 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는 문인 사진작업을 해야겠구나 싶어서 비싼 카메라를 사서 찍기 시작했어요. 첫 대상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작사하신 한상억 선생님을 찍었어요. 이분을 필두로 인천지방 문인들을 찍기 시작했고 70년도에 독서신문이 창간될 때 창간멤버로 입사해서 문인에 관한 기사와 함께 사진도 직접 찍었어요. 그러면서 문인들을 대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온 겁니다.

▶ 비싼 카메라라고 하셨는데 몇 년도에 구입하신 건가요?

66년도에 산 일제 카메라인데 한 달 월급을 모아서 산 거예요.

▶ 문인들은 좀 무뚝뚝하시지 않나요?

문인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죠. 한국에도 사진작가들이 수 천 명이 되는데 왜 이들이 문인들을 찍지 않는가? 거기에서 문인들과 자존심 대결이 되는 거예요. 사진작가들은 비싼 카메라로 찍으려고 하는데 문인들은 사진작가 알기를 우습게 알거든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사진작가들이 설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니까 자기 돈과 노력들이면서 괄시 받을 일은 없잖아요. 그럼에도 그런 걸 무릅쓰고 애정을 가지고 달라붙으니까 된 겁니다.

이번에 17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 전당 아르고미술관에서 문인사진전을 여는데 작고 문인만 102인이에요.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을 내보내려고 했는데 전시공간에 문제가 있어서 많이 걸 수가 없어요. 또 작가의 얼굴을 거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 8만장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얼굴사진과 생활모습을 담은 작품이 들어가 있어요.

이번 전시 일주일 후에는 지방전시를 할 예정이고 이게 끝나면 이 사진들을 전부 예술의 전당에 기증을 하려고 합니다. 상설전시회를 하겠다고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에요.제가 갖고 있는 필름이 흑백만 8만장에, 슬라이드 1만장, 문인들의 육필원고도 1톤 트럭분을 수집했어요.

잡지사 근무하던 시절에 받은 원고들을 출판 이후에도 버리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녹음한 것도 있고 각 행사 때마다 플랜카드가 걸리면 거기에 문인들의 사인을 받아서 모은 것도 있고, 아무튼 문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휴지조각 하나라도 버리지 않아서 만약 국가차원의 문학박물관이 생긴다면 거기에 다 기증할 생각입니다.

◇ 막걸리와 소탈함의 대표주자 천상병, 피천득

▶ 우리 문단의 거목들 사진 중에서 피천득, 황순원, 김동리, 박목월 선생님 등의 사진이 실려 있어요.

102명의 사진 중에서 제가 찍지 않은 10분의 사진은 유족들한테 받은 걸 복사한 거예요. 대표적인 분이 채만식, 최남선, 김유정, 이상, 이봉구, 박두진 선생님 등이세요.

▶ 사진 중에서 피천득 선생님이 차를 드시는 장면도 있어요.

피천득 선생님은 매스컴에 잘 나오시는 분은 아니죠. 그래서 사진이 별로 많지는 않은데 이번 공개되는 사진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문학의 집 서울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강의를 하시려고 나온 걸 제가 찍은 거예요. 연세가 90이 넘으셨는데도 아주 소탈하시더라고요.

▶ 천상병 시인의 사진은 막걸리를 드시는 모습인데요.(웃음)

지금도 인사동 골목에 귀천이라는 찻집을 천상병 시인의 사모님께서 운영하시는데 당시에 한국문학잡지가 근처에 있었어요. 한국문학에 오시면 같이 얘기하게 되고 인사동 골목의 막걸리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해서 막걸리 드시는 걸 찍었어요. 말년에는 거의 막걸리로 사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걸리를 많이 드셨어요.

◇ 문인 3명만 모이면 꼭 찾아가, 기관원으로 오해도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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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문인들이 순순히 응해주나요?

사진 안 찍겠다고 팩 돌아서는 사람도 있고 손으로 쳐서 렌즈를 깨는 사람도 있었죠. 시인 김지하 씨 같은 경우는 감옥에서 출감한 축하파티를 종로3가에서 하고 있었는데 문인 3명만 모이면 제가 낄 정도로 그런 소식에는 빨랐어요. 그래서 탑골이라는 술집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가서 사진을 찍었어요.

많이도 못 찍고 서 너 장을 찍었는데 김지하 씨를 감싸는 젊은 친구들이 여럿이 오더니 필름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어요. 상대방은 여럿이니 할 수 없이 필름을 주는데, 생필름과 찍힌 필름을 바꿔서 줬어요. 그렇게 해서 찍은 필름이 아직도 저한테 보관되어 있어요. 아마도 군사정권 때니까 저를 기관원 사람으로 알고 그랬을 겁니다. 기관원 사람으로 오해받은 건 부지기수에요.

또 이런 경우도 있어요. 워낙 많은 대상을 찍다 보니까 일일이 인화를 해주지 못해요. 처음에는 만들어서 줬는데 그대로 신문이나 잡지에 그 사진이 나가는 거예요. 저작권 문제도 생기고 해서 못해줬는데 원로작가 몇 분은 건방지다면서 기피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이래봬도 내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인데 사진을 찍고서도 안 주느냐는 거죠.

▶ 사진 찍는 걸 유난히 싫어하시는 작가들도 계신가요?

대표적인 분이 황순원 선생님이셨어요. 인터뷰나 사진 찍는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하시는데 문학 전집을 만들려고 하면 책표지 안에 작가 사진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런 사진을 맡기 시작하니까 그런 사진은 피할 수가 없죠.황순원 선생님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동인문학상 시상식에는 꼭 참석하셨었어요. 그런 자리에 제가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까 피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자꾸 보다 보니까 이 사람이 상당히 애정을 갖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셨는지 그때부터는 허락을 하셔서 찍기 편해졌어요.황순원 선생님이 술을 상당히 좋아하셨는데 사진 작업이 끝나면 함께 술 한 잔 하자고 하셔서 근처에 가서 마시곤 했어요. 평양분이라 소주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선생님 버릇 중에 뭐가 있는가 하면 대학노트에 초고를 먼저 쓰세요. 아주 깨알같이 쓰셔서 정서를 하시는데 원고에 틀린 곳이 하나도 없고 띄어쓰기를 원고대로만 하라고 특별주문하실 정도로 엄격하셨어요.

▶ 반면에 수고한다고 격려해주신 분들도 계신가요?

전광용 선생님 같은 경우는 모임 자리에 가면 수고가 많다고 저를 많이 아끼셨어요. 안수길 선생님도 워낙 소탈하신 분이라서 제가 사진 찍겠다고 가면 싫은 표정을 한 번도 짓지 않으셨고요. 제가 잡지사에서 근무할 때인데 누가 결혼식 때 갑자기 주례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주례사를 부탁드렸더니 그럼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주례를 서주셨어요.

◇ 일상의 표정을 담은 사진, 시상이 절로 떠올라

▶ 책에 보니까 이문구 선생님의 모습도 보여요.

한때 경기도 발원에서 사셨는데 그 사진은 문인들 20명을 초청해놓고 아들 돌잔치를 끝내고 읍내 자전거포에서 찍힌 거예요. 그리고 사진 중에 박두진 선생님이 누워계신 사진도 있어요. 안성에 자주 가셨는데 함께 가서 하룻밤을 자고 산에 분재감을 채취하러 가시다가 들길에 누워계신 것을 찍은 거죠. 일부러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닌데 시상이 절로 떠오르는 사진이에요.저는 별로 연출을 안 하거든요. 연출하는 것도 잘 모르겠고 그저 문인들이 일상으로 짓는 표정들을 담지, 턱을 괴고 누워라, 앉아라 이러지 않아요.

▶ 김동리 선생님의 사진은 넥타이도 매시고 활짝 웃고 계신데요.

김동리 선생님의 배우적인 기질이 발휘되신 것 같아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옥상에 올라가셨는데 바람이 부는데 거기에서 환하게 웃으시더라고요. 가장 많이 뵈었던 원로작가들 중의 한 분이신데 사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으셨어요. 김동리 선생님, 박종화 선생님, 조병화 선생님은 개인 사진전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만큼 사진이 충분합니다. 조병화 선생님 같은 경우는 사진에 대해서 호감도 있으시고 그림도 그리신 분이라 사진이 다양하고 장수도 많아요.

▶ 사진으로 생활이 되시던가요?

어머님이 인천 연안부두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시면서 생활은 유지가 될 수 있었고 필름 값도 대주시고 그래서 97년에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도 받으셨어요. 돌아가신지 3년 정도 되셨는데 생활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죠.

문학전집을 하면 출판사에서 필름 값 정도나 주지 생활에 보탬이 될 만한 액수의 돈은 안 주거든요. 필름 8만장이니까 비용만 해도 엄청날 거예요. 행사장에 가면 보통 수십 통을 찍으니까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그렇게 비용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집사람이 이해를 해주니까 작업이 되었지 장가를 잘 간 것 같아요.(웃음)

▶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모습도 사진에 찍혀 있네요.

평택에 있는 모 실업고등학교인데 불교재단에서 운영을 하나 봐요. 불당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신 것을 찍었어요. 선생님의 시 세계에 맞는 사진인 것 같아요. 가야금도 잘 타셨고 풍류를 즐기실 줄 알았어요. 그리고 술 얘기하면 빠지실 수 없는 분이라 취재를 가면 한없이 맥주를 내오시던 분이에요.

▶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저도 3번밖에 못 만났어요. 모두 시상식 때 만났는데 이분은 소설에 전념하느라고 외부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또 ‘혼불’이 나온 다음에는 건강이 악화돼서 결국 요절하셨잖아요. 그래서 사진도 몇 장 안 남아있어요.

◇ 문인들의 말년 모습, 눈시울이 시큰해

▶ 명동백작이라고 불리던 이봉구 선생님의 사진도 있어요.

명동 20년이라는 수필집도 내시고 동란 이후에는 멋쟁이로 유명하셨고 문인들과도 상당히 가깝게 지내셨어요. 여기에 찍힌 사진은 돌아가시기 1년 전 취재차 갔더니 술이나 하자고 해서 수유리의 어느 한 대폿집에서 눈 오는 날 찍은 거예요. 대폿집에 큰 거울이 있었는데 술 드시는 모습이 거울에 비쳐서 찍은 건데 재미있는 사진이에요. 이 사진을 인화하면서 눈시울이 시큰해졌어요. 인생의 말년에 대한 감상 때문이죠.

▶ 문인들의 말년의 모습에 남다른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문인들도 인간이니까 말년의 모습은 안 좋죠. 이문구 선생님이나 최정희 선생님 같은 경우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가서 뵀는데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건 사진쟁이의 욕심이고 문인으로서는 못 찍겠더라고요. 좋아하던 문인들의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니까 셔터가 눌러지지 않아요. 못 찍은 게 아니고 안 찍었죠.

▶ 102명의 사진전시회인데 선정기준이 뭔가요?

작고하신 문인들이니까 그분들 위주로 한 거고, 생명 없는 사진이지만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8만 장 속에서 사진을 고르는 거니까 상당히 힘들잖아요. 처음에 골랐을 때는 이것보다 더 좋은 사진을 쓰려고 젖혀놔요.

그런데 그 사진 자체가 나타나지 않아서 집어넣지 못한 사진도 몇 사람 있고, 또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마가 낀다고 하는데 사진을 찍을 때 앞을 가리거나 뭐가 휙 하고 지나간다든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게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사진을 찍히는 대상으로 봐서는 사진 복이 없는 거죠.

◇ ‘문학박물관’으로 문학기록의 산실 만들어야

▶ 한국문학의 거목들을 찍은 사진이기 때문에 1회성 전시회 말고 문학박물관 같은 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처음부터 박물관이라고 하는 것보다 박물관 준비 위원 같은 기구를 구성하는 것부터 이루어지는 게 순서인 것 같아요. 이게 하루 이틀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가 65살인데 제가 이 일을 하면 얼마나 더 할 수 있겠어요. 제 뒤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하는데 좀처럼 나타나지 않네요.

다행히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있어서 많이들 찍는데 문인을 중심으로 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전시회에서 예산지원을 문화관광부에서 했어요. 개인한테 지원하는 일이 드문데 문화관광부에서도 이해를 해줘서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이걸 시작으로 해서 조금씩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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