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소살

삶을닮다(오늘의필록)

고창기행 3 … 뭔 넘의 소원 그리도 많은지

작성자
Oz
작성일
2007-10-31 13:54
조회
2204
… 뭔 넘의 소원 그리도 많은지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온몸에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五行色)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고는 부릅뜬 눈으로 매섭게 노려본다. 앙다문 입이 마치 이곳을 지나는 죄인의 목을 한 칼에 칠 기세다. 눈썹을 치켜 올렸는데 그 때문인지 이마에 주름 두 줄이 가 있다. 눈에 너무 힘을 줘서 일까? 눈에 핏줄이 서있다.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서둘러 다른 위를 본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빛을 띤 몸에 매서운 눈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비와 바람으로 조화를 부린다는 용을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손가락으로 집고있다. 한 손에는 용을 쥐고 왼손가락으로 여의주를 집고는 괴성을 지르는 천왕을 생각하니 몸이 오싹하다. 인간에게 용이라는 존재 역시 전설이고 거대한 존재이다. 여의주라 하면 원하는 보물이나 의복 ·음식 등을 가져다주며 병고 등을 없애 준다는 보주이다. 악을 제거하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없애는 공덕이 있다고도 한다. 이런 여의주를 왜 무지(엄지)와 식지(검지)로 잡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욕심이다. 증장천왕은 두 개의 여의주를 가진 용에게서 여의주를 뺏고는 인간들에게 경고하는 모양이다. 입을 벌리고 소리치는 것도 그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몸이 흰빛이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언변이 좋은 천왕일 듯하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먼저 두 천왕과는 다르게 웃고 있는 듯 보였다. 비파를 잡고 줄을 튕기는 북쪽의 다문천왕 역시 웃고 있다. 언어로 음악으로 악을 물리치는 천왕들답게 표정 역시 순해 보인다. 저 웃음 속에 또 다른 표정이 보고 싶어진다.

사천왕문을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선다. 대웅보전의 앞면에 위치한 앞면 9칸, 옆면 2칸의 만세루는 익히 특이한 건축물로 알고 있었다.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조립했다는 건물, 원목을 가공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생김생김에 따라 짜 맞추어 세웠기 때문에 주변 자연환경과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들보 위에는 낮은 동자주를 얹었고 기둥 윗부분에는 작은 나무토막들을 포개쌓았다. 이 대담하고 역학적인 기술은 일본의 유명한 민속학자로 조예가 깊었던 야나기 무네요시가 경탄해 마지않으며 그 기둥 앞에서 합장배례를 오렸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다.

본디 구층 석탑이었다는 선운사 육층석탑과 빛바랜 단청을 가진 대웅보전을 한 바퀴 돌아본다. 대웅전보다 관음전이나 산신각, 시왕전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산신각으로 올라선다. 산신각으로 가는 계단에 작은 돌탑들이 놓여 있다. 선운사에 왔던 이들이 쌓아놓고 간 돌탑인 듯하다.

“흐미 뭔넘의 소원이 이리도 많다냐.”

산신각에는 도솔산의 산신을 모시고 있다. 산신하면 역시 호랑이가 빠지지 않는다. 정면과 좌측에 영정이 붙어있다. 정면에는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과 의운스님의 영정이 두 분을 지키는 호랑이와 같이 있고 좌측에는 도솔암 산신과 역시 호랑이가 같이 있다. 산중의 왕이라 불리는 호랑이가 산신과 같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정면 영정에 그려진 호랑이가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호랑이 앞에 동자가 복숭아를 들고 호랑이를 보고 있다. 모양새가 마치 호랑이가 복숭아 하나 달라하고 동자는 안준다며 뒤로 복숭아를 빼고 있는 듯 보인다. 무서운 호랑이도 저리 재미있게 그릴 수 있는 조상의 해학이 참말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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