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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사랑. 2 혼불 독후감

작성자
황종원
작성일
2019-11-14 17:40
조회
1290

황종원의 혼불 독후감


<멀리 있어도 곁에 있는 그대>


나는 어떤 아파트 마당에 섰다.

혼불(1983년 동아일보사판)의 후기에서 “해방과 6.25 그리고 4.19까지로 혼불은 이어져야 했고 이야기는 이제 시작하여야 하건만...” 소설 줄거리 포석 하나만을 깔고 지은이는 제한된 원고 마감시간과 원고의 매수에 절망하면서 마감이 다가오는 날, 그 막막함을 벗어나게 하여준 것은 건너편 아파트 창문의 작은 불빛 이었다.

"오늘 못 다한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자... 시간의 맥은 불빛 처럼 흐르지 않는가... 이 일을 위하여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을 단 한 사람이라도 오래 오래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하며 글을 쓰며 한 때 지은이가 살았던 서울 도곡동 주공 아파트 앞에는 이제 가을은 저쯤 흐르고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혼불을 알았던 이후 나는 가끔 거기서 지은 이를 기다린다.

그 자리는 못 다한 일을 끝내 이루려는 젊은 날의 작가의 눈빛과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혼불이 내게 다가온 인연의 불씨가 시작된 것은 1981년도 동아일보에서였다. 누구인가 소설 하나 써서 2000만원을 받았다는 기사는 내게 충격이었다. 소설은 혼불이고, 작가는 최명희였다.

2000만원! 그 돈은 23평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같은 무렵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침 6시부터 밤 1시까지 코피 터지고 때로는 몸 져 워 일을 해도 1년 동안 천 여 만원을 모을 수 없었다.

가족을 만날 수도 목소리도 들을 수도 없는 사막은 너무 덥기도 하고 차갑기도 했다.

뜨거운 모래의 나라지만 계절은 춘하추동이 있었고, 겨울의 밤은 그곳도 여기 겨울 같은 차가운 체감의 온도가 있었다. 때는 어김없어 한가위에 올려보이던 달마저 서러웠다.

그런 뼈품을 파는 판에 겨우 책 한 권 써서 2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황당하게 느껴졌다.

나(우리)는 생명을 사막에 묻힐 각오로 일을 했다. 사람들은 공사장 모래더미에 묻혔고, 중장비가 쓸어지면서 깔려 죽기도 했다.

내 말은 그 때의 정직한 고백이라지만 작가에 대한 부당한 품훼(品毁)가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 그이는 가고 나는 남은 마당에 더더욱.

그 뒤 세월이 가도 나는 혼불을 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책은 감정의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곁에 둘 책은 아니었다.

어쩌다 아주 오래 전의 초등학교 동창 소식 처럼 혼불에 대한 조각 소식이 들렸고, 나는 미운 친구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를 듣고서 혼불이 긴 세월을 두고도 잊혀지지 않는다니 이상했다.

세월이 갈수록 집 한 채 값을 받은 작가에 대한 보상은 첫 작품이 당선되었던 시절에서 멎은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차츰 혼란스러웠다.

2000만원을 그 뒤 세월로 나누니 그이의 노력은 너무 크고 그가 받은 보상은 너무 작았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나는 정말 우연하게 그이의 육성을 들었다. 라디오 방송이었다. <혼불>의 이름이 천지에 가득 차서 작가에게 이 상 저 상이 주어질 때였다.

그이는 작품 속에서 말 고르기와 하나의 물건에도 매여 있는 혼을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2000만원 상금에 대하여 이웃사촌도 아니면서 배가 아팠던 빙산의 감정이 어느새 녹아내리면서 그이의 노고와 내가 겪었던 젊은 날의 고생이 서로 화답하면서 그이의 감정이 내게 젖어 들어옴을 느꼈다.

그이, 최 명희가 글을 쓰는 것은 내(우리)가 사막에서 목숨을 걸며 일했듯 그이에게도 생명을 거는 일이었나.

그이는 혼불을 세상에 출산하려는 치열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목숨까지 걸고 있으니 서로 가는 길은 달랐어도 동지요 동료였다.


그 뒤 바로 혼불 1권을 곁에 두었다. 펼치는 순간, 부챗살을 펴서 한 눈에 보듯이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 조상의 시원(始原)을 찾아가네.’ 라거나 ‘ 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 <혼불>은 여성적인 넋의 고혹스로움과 섬세한 문체의 마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 는 등의 평이 너무 소홀하고 한 쪽만 보고 말하는 변죽으로 들렸다.

나는 책 한 쪽을 마치 지은 이의 통곡 소리 가득하여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혼불은 혼불의 미완성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이 느껴져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웠다.

간절하게 신명을 다하여 이런 글을 쓰는 이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는 기력이 남을 리가 없었다.

내가 작가의 목소리를 들은 지 몇 달 뒤에 작가는 기어이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시신이 모셔진 영안실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의 혼불을 보겠오." 하는 말이었고 그 말은 " 당신의 혼불을 늘 곁에 두겠오. "하는 다짐이었다.


그 다짐을 나는 저버릴 수 없었다. 나는 혼불을 쓰기전의 작가의 젊은 날을 찾아 도서관으로 모교로 지취를 찾아 다녔다.

소녀 명희는 남원의 사매면 고향 땅을 밟을 때 마다 조상의 혼과 마주치고 종가의 어른에게 조상의 일을 물으며 노트에 적을 때부터 혼불은 그 때 부터 자라고 있었으니 어찌 혼불을 쓰기 시작한 17년만을 혼불의 과정이라 하는가.

여고 2학년 때 동국대학교 주최 문학 콩클(1964년 5월)에서 소설부문에서 '잊혀지지 않는 일'로 장원을 했을 때부터 혼불을 쓸 필력은 자라나고 있었다.

기전여고 교지(기전 8호 1967년 12월 p132-133)에 실린 그 보다 더 어렸던 1962년 12월19일 일기에서 중3짜리 명희는 ".. 친구 욱아가 내게 냉하란다. 너하고 나하고만 알고, 우리 훗날에도 이 날을 기억하자면서 내 이름을 냉하라 지어준단다. 찰冷하고 물河-. 내가 그렇게 항상 얼어 있는 강물 같으냐고 웃었다. 예쁜 이름이었다."

했을 때 어린 명희에게 친한 친구는 그이에게서 강물을 느꼈었다.

그것은 혼불의 씨앗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혼불 속에는 시원(始原)에 대한 그리움이 넘실되고 시원은 크고 먼 산 꼭대기 바위틈에서 시작하여 계곡을 흘러 개울을 지나 강으로 나아가다가 바다에서 멎는다. 강은 물이니 눈물이고, 깊은 바다는 만강(萬江)의 집합이며 깊이 모를 어둠이다.

혼불 1부 책장을 펼치면 '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 ' 에서 시작하여 5부 마지막 장 ' 그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다. ' 에서 끝날 때까지 혼불에서는 어둠과 눈물이 흐른다.


소설 혼불은 호남의 한 마을 종부 효원에서 시작하여 효원에서 끝나니 이 이야기는 남편 강모와 그를 사랑하였기에 잔인하게 버려진 사촌 누이 강실이의 사랑을 깔면서 이루어지는 시대 소설인가.

아니면 쉼 없이 깔리는 혼례와 장례, 반상과 상것, 조선과 일제시대를 알리는 풍속지인가.

아니면 고운 우리말을 충실하게 나열한 사전인가.

그래 맞다. 시대소설이고 풍속지이고 사전이었다.

그러나 시대소설이던 풍속지이던 우리말 사전이던 책을 잡으면 눈물이 가득 차오르며 현실보다 더 진한 현실감이 사무치게 다가오는가.

그리움의 소설이다. 위로는 단군설화에서 아래로는 소설의 배경인 1930년대 일제 치하를 누비며 민족의 시원을 찾아가며 시간 여행을 떠나야했다.

우리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는 웅녀였다. 전설이며 신화라 하여 지금은 처다보지도 않고 버림받다시피 한 우리 민족의 탄생신화를 혼불에서는 가슴에 안고 있다.


“청암마님, 효원아씨, 강실 아가씨. 당신들의 할머니는 웅녀랍니다. 할머니의 뿌리는 세월의 연륜 만큼 깊어지고 햇살 위에 있는 현실의 시간 속에서 당신들은 땅위에서 줄기를 올리고가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이루면서 혼불은 한 지역의 풍토, 산천초목, 역사, 세시풍속,

관혼상제, 통과의례와 주거의 형태와 족장과 음식, 가구며 그릇, 치례, 소리, 노래, 언어, 빛깔, 몸짓의 조각 그림들이 큰 모눈종이의 칸칸에 모아지고 틀을 이루며 극채색 물감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 하나하나는 숨을 쉬고 만지면 집히는 느낌까지 있다.

분명 그 당시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절에는 일상적이었으며 평범한 생활이 이토록 그립고 애틋하게 다가 오는지.

위로는 반상과 상것이 씨줄이 되고 아래로는 형제자매와 이웃들이 날줄이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며, 이기고 지면서, 지키려 들어도 망하는 가족과 이겨본들 부질없는 상것들의 저항이 민간신앙과 가치관을 통하여 실타래처럼 엉키니 그 혼란 속에서 흘리는 피와 눈물을 어찌 그 때의 이야기로 끝날 것인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사람들의 일상사는 이루어지며 그 일상은 의복을 걸치거나 먹을거리를 끓이거나 빨래와 비누질을 하며 살아가게 마련인데 혼불 속의 손 때 묻은 물건들은 마치 그리운 사람처럼 살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반상(班常)이라해서 상것들을 수탈하는 자로 한데 묶어 욕하는 일이 얼마나 무지한 욕이 되는가를 안다.

욕먹을 자는 욕먹을 자대로 있을 지라도 비범하여 시대의 정신과 가풍을 엄히 다스리며 살던 양반들의 진정한 아름다운 모습을 청암 마님을 통하여 본다.

뿐이랴.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평민이나 천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어찌 그 때만이 있을 것인가. 목놓아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있다.

다들 그리운 이들이여.

혼불은 느낌의 소설이다.

멀리서 보다가 다가가는 느낌까지도 불에 달구어진 송곳달린 붓으로 그린 그림인양 복원되어 나온다.

도서관과 박물관과 사전에서 어디 이런 강한 느낌이 오랴.


혼불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앞서 먼저 떠나는 불이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 생각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도.

지금 이 시절에 우리는 죽을 때 혼불 조차 남기지 않는다. 아니, 남길지 몰라도 살아 있는 이들이 혼불을 볼 수 없으며 떠나려는 이들을 떠나보낼 차비를 못하는가보다.

혼불되어 죽음을 맞이하여도 죽음은 죽음이 아니오 다시 이어지는 삶의 길이라는데.


혼불이 살아 있던 시절이 그립다. 효원은 청암마님의 혼불을 마치 흡월정하듯 하여 청암마님은 효원에서 다시 살아나건만 혼불을 볼 수 없는 지금은 어찌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가.

혼불은 어둠의 소설이다. 밤은 아침을 기약하며, 밤은 생명을 만든다. 태아는 어머니의 몸속 어둠 속에서 생명의 탄생을 가다린다. 혼불의 뿌리는 어둠 속으로 계속 뿌리를 내리면서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내린 뿌리만큼의 성장을 보여준다.

청암 마님의 음덕 속에 효원은 종가를 일으키고 , 강실의 눈물 속에 또 다른 생명은 강건하여 질 것이다.


혼불은 종부 3대의 여자의 세계에 대한 소설이다.

남자 같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나 아버지의 일을 맡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지닌 음양 합일의 어머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청암 부인의 기상을 빼 닮은 효원이 시할머니의 혼불을 마당에 서서 들이 마시니 윗대의 정신과 인생이 이어간다.

어찌 콩 심은 데서 팥이 나랴. 같은 토양위의 인생과 정신에서 같은 인생과 정신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면 지은이는 얼마나 고운 심성의 사람일까.

지은이는 촉촉한 마음과 흔들림 없는 주장을 가지고 있으며, 눈가에는 늘 흐르는 눈물이 잠겨 있었을 것이다.

요즘 시대는 말이 찢어지고 부서지며 조각나고 있다. 그 말씨를 툭툭 내던지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간절한 마음은 종부로서 종가를 지키는 효원을 통해 그 마음은 지은이에게 서 우리에게 온다.

혼불은 한 마디, 한줄, 한 단원, 한 제목으로 보아도 하나의 작품이다.

그의 혼불인 혼불을 곁에 두고 한마디 읽을 때 마다 소름 돋는 경외감까지 느낀다.

그리워라. 작가의 정신이여.


나는 그이의 청춘이 지나다니고 혼불의 처음을 썼던 곳에서 차가운 계절이 이다지 그이의 죽음으로 슬프나 그이의 혼불로 막막하지 않다. 죽음은 곧 삶이라는 그이의 말이 사실이니 그이의 혼불을 그이가 살던 곳의 마당에서 마신다.

사람들이여. 혼불을 마시려고 여기 아파트의 마당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

혼불을 곁에만 두어도 그이는 멀리 있어도 곁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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