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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사랑. 5 작가 최명희 '혼불'되다

작성자
황종원
작성일
2019-11-25 20:24
조회
1215






혼불의 최 명희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기사를 보는 순간에 "어찌 이런 일이..." 하다가 세상일은 신이 정한 각본에 따르는 것이기에 신의 연출에 따라 1막 1장에서 퇴장하라 하면 퇴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MBC 낮방송에서 최명희님은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에는 가슴이 뚫려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텅 빈 심장이 있다. 빈 가슴으로 하늘을 난다." 그러면서 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연을 접고 만들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잔잔한 목소리였으나 나는  무서웠습니다.

우리말을 아끼는 그 마음이 한 서린 마음 같기도 하고, 한 서릴 만큼 우리말에 소홀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혼불 제 1권을 아직도 다 못 보았습니다.

한 쪽을 보면서 밑줄을 그어놓는 말이 곳곳에 넘칩니다.

우리말이면서 사전을 펼치고 보아야 하는 이제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없는 우리말에 질리기도 했고 아주 철저하게 가꾸어진 장인 정신에 질렸고 경외감까지 갔습니다.


독자의 마음이 그런데 작가는 글 쓰는 고역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보통 집 아낙이 되거나 쉽게 쓰는 소설을 썼다면 천수를 누렸을 동갑내기 작가님.

나는 지금 조선일보 1998. 12. 12 의 21쪽에 나와 있는 님에 대한 기사를 보고 있습니다.

97년에 찍힌 사진으로 보아서는 아픈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암이란 존재는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니 그 사진을 찍은 뒤에 증세가 심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방이란 늘 그렇듯 책이 가득한 서가와 원고지와 사전들이 가득한 책상위에는 컴퓨터가 없군요.

몽블랑 만년필로 밤샘 글 쓰고 언어의 조탁에 그렇게 힘들이지 말고 그런 문명의 이기를 사용했다면 건강은 좀더 좋아 졌으리라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 연배의 고집은 글은 원고지에 글씨는 만년필로 쓰는 원칙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가 봅니다.

사진 속에 있는 탁상용 시계와 손에 들고 있는 몽블랑 만년필, 삼파장 스탠드와 백열등 스탠드. 그리고 동아 새국어 사전을 보면서 나는 문득 소스라칩니다.


바로 내 책상 위에는 작가의 책상 위와 비슷한 것들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혼불이 내 책상에 왔을 리가 없고 우리는 같은 모임의 친구도 아니니까요.

다만 우리는 한 번 만났으면 정말 말이 통할 47년생이고 66학번 쯤 되는 닮은꼴이 있다할까요.

아침 신문에 작가가 혼불이 되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갑자기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이런 이를 다시 볼 수 있나?

자기 생명을 담보로 이런 글을 쓸 사람이 또 나올 수 있나?

혼불에서 우리말은 제 자리에서 한껏 뽐내고 있으니 우리말은 오랜만에 호강 한 번 잘했습니다.

살아서 한 번쯤 글 쓰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드릴 겸 인사동 골목의 찻집에서 60년대

대학 이야기나 해서 정말 친구 삼고 싶었다는 말을 이제서 해봅니다.


글 몇 줄 쓰고 문학 동인이네 하던 그 시절 이야기며 이제 월급쟁이 생활의 애환이 어쩌고 하는 예사이야기를 한 번 질펀하게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학사에 거대한 탑을 만든 작가의 크기에 겁먹고 세월이 슬금 슬금 가더니 이제 영영 가고 마니 만날 기약 조차 이제 없군요.


혼불은 정녕 있는 것이니 고통 없고 슬픔도 없을 혼불들이 머물고 있을 세계에서 님이여.

우리말의 부처님이 되소서.

우리말의 예수님이 되소서.


그러나 이승의 세계에서 글 쓰던 고통이 그 곳까지 간다면 그냥 그냥 편히 쉬소서.

(199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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