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전북일보] 기찻길 사이로 인연과 숙명의 ‘변주’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0-12-15 10:40
조회
905
출처: 전북일보(http://www.jeolla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1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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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구 서도역은 올해 전라북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 여행지인 전북 7대 비경에 선정됐다.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의 문학적 배경이기도 한 구 서도역은 전라선 개량공사로 폐역이 됐지만 철거하지 않고 구 서도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과 감성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올겨울 코로나19 비대면 여행지로 남원 구 서도역과 혼불문학관을 추천한다.

▲전북 7대 비경 남원 구 서도역에서 만난 소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지키고 싶었던 혼불에 깃든 우리네 이야기가 질펀하게 묘사된 매안 마을의 들녘이 해 그림자 길게 드리우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전북 7대 비경으로 뽑힌 이유도 아마 소설 ‘혼불’ 스토리가 전해온 역사 깊은 명소가 더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구 서도역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이제 더 따뜻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고 있는데 구 서도역을 거닐면서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소설 속 주인공 매안 이씨 종손 강모와 강모의 부인 허효원은 서도역을 어떻게 기억할까? 전주로 학교를 다니던 강 모에게 서도역은 외지로 연결해 주는 장소이고 서효원은 매안리로 신행 오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장소로 서도역이 기억될 건데 서도역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기구한 인연은 시작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차표를 끊으러 들어가는 출입문 위로 서도역 간판이 예스러운 모습이다. 1932년 준공 모습 처음 그대로인 구 서도역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역사로 지어진 소박한 간이역에 앉아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을 효원이를 생각해본다.
소설 속 효원이는 매파가 돼 주던 서도역이 곱지만은 않았을 텐데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지만 어떻게 든 살아야 될 숙명을 말해주는 혼불의 이야기가 '그때는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온기를 더해줄 사람 냄새나는 나무 기와도 정겹고 하늘 끝까지 이어질 철길을 내다보는 나무 창틀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그리움을 채워 나가고 있는 중이다.
효원이가 서도역에서 내려 고향 대신리를 생각하며 차마 발을 못 떼고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냈을 장소를 문화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원래는 철로가 지나던 자리인데 철로를 걷어낸 자리에 혼불 속 이야기를 소재로 익살스러운 업사이클링 설치물을 조성해 발길을 붙잡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전자식 신호기를 사용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단선 철길이 놓인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신호기 조작 레버와 통표 걸이, 완목 신호기가 예전 그대로 모습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지금은 쓸모가 없어 아쉽지만 한때는 바지런하게 철길을 열어주고 닫혀주고 제 할 일을 다 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호기 조작레버 너머로 보이는 역사는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인천 제물포 역사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장소이다. 애신이 유진 초이를 첫 대면하며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인연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했던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은 곳이다.
서도역 기찻길 소문난 사진 맛집이다. 구 서도역의 말간 봄부터부터 녹음 가득했던 여름을 지나 단풍으로 물든 메타세쿼이아 철길은 문학 감성을 한껏 오르는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늦가을 정취를 품고 느긋한데 기찻길과 메타세쿼이아 터널이 멋스러움을 더해 마냥 걷고 싶은 길이다.
서도역에서는 지난해 가을 제6회 혼불문학 신행길 축제가 열렸는데 구 서도역을 시작으로 신행 가는 길을 그때 그 모습대로 재현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여서 반응이 좋았던 곳이다.
종가댁 효원이가 마을로 시집오는 신행길이 심심하지 않도록 신랑 신부를 포함해 3개 마을 주민 150명이 서도역에서 혼불문학관까지 2km를 걸으며 1936년 당시 소설 속 혼례 모습을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했다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잠시 멈춤이지만, 내년엔 꼭 다시 열렸으면 한다.
마무리 공사가 거의 끝난 구 서도역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전라선 선형개량공사로 역이 폐쇄돼 사라질 위기에 있었지만, 노봉 마을 사람들과 혼불 정신 선양회에서 지켜야 할 남원의 유산으로 서도역을 지켜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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