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매일경제]화가·서예가 만든 책 표지 100년의 기록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21-05-25 12:56
조회
2911
출처: 매일경제 2021.05.21. <화가·서예가 만든 책 표지 100년의 기록>

출처: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5/491734/

시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이 1946년 펴낸 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 표지에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푸른 사슴 그림이 등장한다. 간략한 선과 색만으로 사슴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화가는 김용준이다. 자연을 통해 인간 생명 원천과 역사 전통을 발견하는 시를 쓰는 청록파 시인들의 특징을 잘 드러낸 표지를 그렸다.

일본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귀국한 김용준은 조선 전통회화를 계승한 수묵채색화를 지향했다. 옛 그림 같으면서도 현대감각이 넘치는 붓질로 속표지에 소나무 풍경 속 사슴과 시인 3인의 초상화를 그려넣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문장력이 뛰어났던 김용준은 자신의 책 '근원수필'(1948년) 뒷면에 광복 다음해 경주에서 발굴한 고구려 청동그릇 밑바닥 문자를 새겨놓았다. 당시 광개토대왕비문체와 같은 서체라고 세상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보산 김진악 전 배제대 교수(86)의 '아름다운 책'(시간의물레)은 유명 화가의 표지화와 서예가의 제호로 장식한 책의 역사를 담았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장서는 100년을 아우른다. 김용준을 비롯해 김기창, 김환기, 김창열, 이왈종, 천경자, 정현웅 화백 등의 그림이 우리나라 책 표지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여기에 손재형, 김충현, 이기우, 박원규 등의 서백들이 쓴 제호가 책의 품격을 높였다. 이러한 이유로 김 전 교수는 "책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김환기는 100여권의 책 표지를 그렸다.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자기 책을 꾸며달라고 그의 화실 앞에 줄을 섰다고 한다. 우선 1955년 문예지 '현대문학' 창간호를 비롯해 가장 많은 표지를 그렸다. 1977년 그의 아내 김향안 산문집 '까페와 참종이'(지식산업사) 표지에는 핸드밀 커피 그라인더와 핸드 드립 세트를, 속표지에는 그의 대표 도상인 학이 날고 있다. 1976년 최정희 소설집 '찬란한 대낮'(문학과지성사) 표지에는 알록달록한 점화, 현대화랑이 1978년 발행한 미술 잡지 '화랑' 표지에는 항아리를 안고 이고 가는 여인이 등장한다.

장욱진은 1954년 이덕성 시집 '호흡'(시학사) 표지에 소와 소년을 천진난만하게 그려 눈길을 끈다. 2014년 홍상화 소설 '전쟁을 이긴 두 여인'(한국문학사) 표지는 흰 옷을 입은 여인으로 가득 채웠다.

천경자 화백이 1977년 나비와 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을 그린 잡지 '샘터' 표지 제호는 서예가 손재형 솜씨다. 손재형은 현암사가 펴낸 한국 최초 '법전' 제호도 썼다. 20세기 한국서단을 풍미한 손재형의 붓 끝에 머문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한다.

서예가 박원규는 박정배 저서 '음식강산' 제호를 통해 기발한 한글서체를 보여준다. 시옷은 산을 닮았고 상하좌우로 뻗은 획은 춤을 추는 듯하다. 1990년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한길사) 표지 제호에선 혼이 서린 듯한 한자 魂(혼)과 한글 불을 섞었다. 2000년 김주영 소설 '천둥소리'(문이당) 표지 제호는 대지를 흔드는 자연의 힘을 담은 글씨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문인과 화가의 우정을 다룬 기획전 '미술이 문학이 만났을 때'에서도 화가들이 장식한 소설과 시집 표지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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