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자(전북대신문 사설)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4-12-24 18:40
조회
2133
출처: https://www.jbpresscenter.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9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자.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1418년 왕위에 오르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세종대왕은 여러 학자들과 함께 1443년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만들었다. 이후 세종대왕은 1446년 ‘훈민정음’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국보 제70호이자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 10월 9일은 1446년 훈민정음 반포를 기준으로 하여 567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일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중국의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지 않은 백성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자기의 뜻을 글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서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세종대왕은 그 당시 백성들이 고유한 문자가 없이 중국의 한자를 이용해 ‘구결, 향찰, 이두’등을 만들어 쓰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 문자를 만들게 됐다. 이 차용표기들은 중국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서 우리말을 표기한 문자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한자를 사용했다. 중국의 한자는 지식층에서만 쓰는 문자로서 어려서부터 서당에 다니면서 배운 계층만이 사용이 가능했다. 지식인들은 한자를 정서로 쓰는 해서체보다는 흘려 쓰는 초서체를 많이 썼다. 따라서 한자나 한문을 배우지 못한 서민들은 전혀 글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글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고, 나라에서 발행하는 각종 문서를 읽을 수가 없었다.
국한문 혼용체를 거쳐서 한글을 사용하는 시대가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외국어를 배운 세대들은 대중적인 노래에서조차도 외국어를 섞어쓰면서 바야흐로 한국어와 외국어의 혼용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노소를 막론하고 일상생활에서 외국어를 해독하지 못하면 생활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의 발음, 문법, 어휘와 늘 써오던 다양한 표현을 잃게 되면 우리의 역사, 문화, 기억, 지식 등을 잃게 되고, 일상생활에서 가꾸어온 소중한 느낌을 잃게 되면서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혼불’이란 소설을 쓴 작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는 글에서 ‘모국어는 우리의 삶과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주는 씨앗이다.’고 설파한 바 있다. 평론가 정호웅은 ‘사투리는 과거를 불러내는 주술의 언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써온 우리말 한 마디, 자라면서 배운 우리글과 우리 문장으로 우리가 가진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면서 안정감 있는 정서를 키워왔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잃어 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피폐해져 가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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