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김병용]책 권하는 사회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12-01-11 14:04
조회
2321
원문보기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431


책 권하는 사회


지난 번 이 코너에 서로 책 읽기를 권하자라는 글을 싣고 난 뒤, 지인들의 전화를 받았다. 과분한 칭찬을 받기도 했으나, 몇몇 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단 지적을 해주기도 하셨다. 이번 글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작성되었음을 먼저 밝힌다.

먼저 필자의 생각부터 이야기하자면, 일반적 예상과 달리 동서고금을 모두 망라하는 인류사의 정전(正典)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사서오경’은 오랫동안 동아시아권의 필독서였지만, 이 서책들이 통용된 지역적 한계도 그만큼 뚜렷했다. ‘일리아드’, ‘오딧세이아’, ‘아라비안나이트’, ‘루미 시편’과 같은 불멸의 고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책들 역시 오랫동안 출간 유통의 문제나 번역 등의 이유로 인하여 자신이 속한 언어문화권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행복하게도(?) 참으로 읽어야 할 책이 많은 세상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아랍어권, 남미권, 아프리카권 혹은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의 명저에 대해 우리는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고, 책을 읽고 또 권해야 한다. 한자문명권 안에서, 혹은 구미문화권 내에서 습득한 패러다임만으로는 이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어떤 이들은 문화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당대 선진국의 문화적 동향만 파악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야말로 식민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강대국이라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우리 나라를 우리 스스로 돌아봐도, 얼마나 복잡한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으며 깊은 내력을 지니고 있는가. 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모두 우리와 같이 길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21세기 우리는 그들을 외면한 채 자기유폐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인재든 지식이든 물품이든 수출하고 수입해야 하는 유통 국가가 우리 나라의 현실이고 또 나아갈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던가.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그만큼 알아야 할 것도 많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아야 할 고급 정보들은 모두 책 속에 있다.

일본의 석학 요시카와 고지로가 평생을 두고 탐구한 두보에 관한 저작을 읽는 것만큼,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읽는 일도 중요하며, 실크로드 연구에 관한 한 정수일 선생의 노작 또한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만이 중요하고 귀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야말로 자신의 생애를 던져 몸으로, 그 영혼의 여정으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책들이 있다.

전북이 자랑하는 작가 최명희의 ‘혼불’이 그렇고, 20세기가 낳은 불세출의 산악인 라인홀트 매스너의 저작이나 평생을 유목민 연구에 헌신한 스기야마 마사키의 저작, 실크로드를 몸으로 밀고 나간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저작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거기 담긴 내용의 유용성과 상관없이, 이 저작물들은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안긴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다. ‘내 삶의 주제는 무엇인가’, 묻고 또 묻게 되는 것이 이들의 책을 읽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가장 큰 소득이다.

그런데, 이런 저작들의 목록을 어떻게 구하느냐고, 또 물을지 몰라 먼저 답한다.

인생의 대부분 과정이 그렇듯 이 목록을 얻는 과정은 자신의 땀을 대가로 지불하고 통과해야 하는 길이다. 나의 아이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하기 위해서 열 권의 책을 읽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내 주변에 대한 애정을 나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다. 내가 먼저 읽고, 그 다음에 권하자!

책을 읽는 일로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변화에 함께 참여하고, 책 읽기를 권함으로써 변화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설령 그게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읽은 책의 감동은 오롯이 나의 자양분으로 내게 남는다.

다시 한 번, 올해는 우리 책 읽기를 권하며, 책을 선물하며 살아가자.

/김병용(소설가)

전체 136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66
[이휘현]다시 을 꺼내들며(출처 문화저널)
최명희문학관 | 2018.01.06 | 추천 0 | 조회 1865
최명희문학관 2018.01.06 0 1865
65
목영봉 명인 "평창올림픽, 민족의 혼(魂) 장승도 축복할 것"
최명희문학관 | 2018.01.02 | 추천 0 | 조회 1933
최명희문학관 2018.01.02 0 1933
64
[책에서 찾은 길] 단어 하나에 마음 뺏겨 가슴 떨리던 그 순간
최명희문학관 | 2018.01.02 | 추천 0 | 조회 1690
최명희문학관 2018.01.02 0 1690
63
[한의사 김영호 칼럼] 인생의 혈(穴)
최명희문학관 | 2017.01.17 | 추천 0 | 조회 2236
최명희문학관 2017.01.17 0 2236
62
[김두규]묘에 맞는 혈자리가 있듯이, 인생에도 혈이 있다
최명희문학관 | 2016.10.03 | 추천 0 | 조회 2405
최명희문학관 2016.10.03 0 2405
61
시암송을 권하는 교사들
최명희문학관 | 2016.08.14 | 추천 0 | 조회 2391
최명희문학관 2016.08.14 0 2391
60
김욱의 그 작가 그 작품(15)소설가 최명희의 ‘혼불’
최명희문학관 | 2015.11.12 | 추천 0 | 조회 2612
최명희문학관 2015.11.12 0 2612
59
맛 따라 멋 따라 찾아야 할 전주(이종희)
최명희문학관 | 2015.07.27 | 추천 0 | 조회 2551
최명희문학관 2015.07.27 0 2551
58
혼불로 보는 전주 역사
최명희문학관 | 2015.04.29 | 추천 0 | 조회 2361
최명희문학관 2015.04.29 0 2361
57
시와 소설로 읽는 전주한옥마을(2)
최명희문학관 | 2015.04.29 | 추천 0 | 조회 2727
최명희문학관 2015.04.29 0 2727
메뉴
error: 콘텐츠가 보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