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그리고 최명희

최명희 씨를 생각함

최명희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 노트를 든 최명희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통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 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고저회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시집 ‘은빛 호각’ (이시형/창비) 중에서

▣ 작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떠올린 아름다운 분들의 애틋한 글이에요.

미케란젤로와 최명희 - 심철무

작성자
최명희문학관
작성일
2009-05-07 23:45
조회
3061

연구소 정문 앞에 “과학은 미래를 바꾼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과학 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다음 두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기의 걸작 ‘피에타’ 조각품을 남긴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각 부위를 샅샅이 해부하지 않고서는 조각을 사실적으로 표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장례식이 끝났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심야에 묘지에 숨어 들어가 촛불을 켜들고 묻힌 신체를 밤새 해부하며서 근육과 뼈마디와 혈관과 장기들의 모양을 스케치하였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통문화와 민속관념을 치밀하고도 폭넓게 형상화하고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기 위하여 17년 간 혼불 같은 투신을 하였다. 봄 강물이 풀리는 소리 '소살소살 소살소살'을 찾아내기 위하여 늦은 저녁 북한강까지 달려가곤 하였고 혼불의 5권 <액막이연>장을 쓰기 위하여 손수 수십 개의 연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주인공 효원의 남편 강모가 도망친 혼불 제5권의 주무대이자 1940년대 한국인들의 거주지였던 중국 연변 심양 서탐거리를 완벽하게 재연하기 위하여 64 일 동안 답사를 하였다.

연구소로 실습을 나온 학생들에게 강의 시간에 위 두 사람을 예로 들면서 과학 기술자의 자세를 이야기하였다. 과학은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한다. 새로 쏟아져 나오는 보고서, 논문 등을 소화해야하는 정신적노동과 실험장치를 설치하고 실험하는 육체적 노동이 요구된다. 실험실을 영어로 표현하면 laboratory라 한다. 접두어가 labor로써 노동, 근로라는 뜻이고 접미어는atory로써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실험실은 노동 장소이다. 이 단어가 정말 실감이 난다. 요사이, 1주일 동안 일본 동경무사시공대의 모찌끼 교수와 공동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거의 밤낮 없이 일주일 동안 실험을 수행하면서 엄청난 노동력이 요구되는데, 54세의 일본인 교수의 정신 및 육체의 노동력을 따라 갈 수가 없다. 그 만큼 그는 노동력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미케란젤로와 최명희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력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과연 이 노동력을 누가 감당하면서 연구소의 현수막의 표어처럼 미래의 한국을 바꿀 것인가. 누가 과학을 할 것인가. 미케란젤로처럼, 최명희처럼 누가 과연 과학의 실험정신을 가지고 살아 갈 것인가. 과학경시대회 1등 수상자, 아니면, 강남학군의 아이들, 과학고등학교 영재들인가.

과학이란 낱말은 영어의 science말에서 100년전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신조어라고 한다. 따라서 과학이라는 단어의 science 어원을 따져보자면 라틴어의 scientia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는데 뜻은 “삶”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과학의 열매들은 삶 속에서 이어지는 정신적, 육체적의 노동력의 산물이다. 누가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힘을 감당하여 인류의 에너지, 식량,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을 병의 고통에서 건져 낼 것인가.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감당 할 사람은 즉 과학노동을 하는 사람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고 조각 예술품 피에타을 남긴 미케란젤로 같은 사람이요 최명희 작가처럼 스무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역사의 본질을 더듬어 ‘혼불’ 같은 작품을 남기는 사람이다. 어느 역사에나 이러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분들의 노동의 대가로 살고있는 우리들이 그 사람을 알아주고 고마워 할 때 미래는 바뀌면서 살아가는 보람과 재미가 더 해질 것이다.


출처: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best&page=9&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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